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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Dec 03. 2024

담배를 끊어야 하나 봐

내가 나쁜 놈이 될게

나는 담배를 좋아한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그저 '친구들이 피우니까.'라는 단순하고 철없는 이유로 담배를 손에 든 지 벌써 12년가량 지나고, 나는 담배를 너무 좋아하는 애연가이자,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태우는 소위 '끽연자'가 되었다.


스물 하나에 한국에 돌아오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때에만 담배를 피웠으나, 일을 시작하고 나서 담배는 나의 일상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바쁜 오전을 보내던 중, 근무지 선임자의

"담배 하나 피우고 하자."

라는 말이 나에게는 좋았다. 숨 돌릴 틈 없이 몸을 움직이다가, 추운 겨울 몸을 난로 앞에서 녹이며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을 했을 때에도 밤을 지새우며 작업을 하다 잠시 숨을 돌려야 할 때 (공황 증세도 심했었고), 안정제 두 알과 커피 한 잔, 그리고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잠시 휴식하는 것이 나는 좋았다. 


담배는 솔직했다. 술을 못하는 나에게는 담배가 가장 솔직했다. 갈등이 있거나, 잠시 감정의 반목이 있는 상대와 대화를 시도할 때, "담배 한 대 피우자"라고 이야기하고, 둘이서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동안 나누었던 대화들은 이전의 그 어떤 대화보다 더욱 진솔했고, 솔직했다. 


담배는 친절했다. 생각이 많고, 사유하는 것이 많으며, 이루어진 사랑보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더 많은 내가 잠시 담배 한 대를 입술에 물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을 시작할 때, 담배는 나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을 도와줬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직전에 담배를 한 대 태우는 것이 그 어떠한 의식처럼 나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4,500원으로 나의 하루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홍대에서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처음 가졌을 때, 생활이 너무 빈곤했다. 작업실 임대료, 월세, 휴대폰 요금 및 공과금을 내면 사실 괜찮은 밥 한 끼 먹기도 어려웠다. 그때가 코로나가 시작된 때여서 더 그랬으리라. 그래도 나는 밥은 컵라면을 먹더라도, 하루 한 갑 담배는 끊지 못했다. 우울증과 공황, 여러 질병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내게, 사람들이 어울리기 싫어하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에게 담배는 너무 좋은 친구였다.


그렇게 담배는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담배와 이별을 말해야 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다른 여러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집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집은 나에게는 불편과 불안함이 가득한 곳이었다. 나의 부모님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48평짜리 아파트에는 내가 쉴 공간은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여섯 평 방 안은, 남기기 싫었던 일상의 때가 가득하다. 눈물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나에게는 집이 없었다.


그러나 집이 생겼다.

내가 가장 망가져 있을 때, 가장 볼품없고, 삶의 악취가 나의 몸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모든 이들이 도망치기 바빴던 그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누군가 나의 망가진 곳을 고치기 시작했다. 내가 무너져서 홀로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나의 어깨를 안고, 누군가 나의 귀에 속삭였다. 사랑을 속삭였다. 나의 몸 깊은 곳, 어쩌면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손을 넣고, 그 손에 어떤 더러운 것이 묻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더듬고 더듬어서 결국 악취의 근원이 나는 무엇인가를 빼었다. 누군가 나의 눈을 만졌을 때 그동안 내가 보았던 나와는 다른 내가 거울 안에 서 있었다. 볼품없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 나의 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나의 집이 되었다. 남이 아닌 내가 되었다. 몸을 누인 여섯 평 방에서 곳곳이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 찾을 수 있는 집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책임을 느낀다. 나의 집을 이제 깨끗이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담배연기와 이 집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진한 향수를 덮어도 새어 나오는 담배냄새는 그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담배냄새는 나는 모르겠지만 그대가 편히 쉴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책임을 느낀다. 


마침, 이 마침이라는 단어를 쓰기 참 싫었지만, 딱 마침. 나에게는 돈이 없다.

현금이 없는 것을 넘어서 신용카드 한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며칠 밖에 나가면 이제 그 한도도 없고, 나는 그 아무런 소비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컵반을 억지로 먹고 담배를 사 피웠으나, 지극히 모순이며, 지극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요새 느낀다. 한 갑에 4,500원, 하루에 한 갑, 꽤 큰 금액이라는 것이 이제 체감된다.


그래서 이제는 진지하게 금연에 대한 생각을 하기로 한다. 이 정도 피웠으면 오래 피웠으니, 이제 진지하게 담배와 단 둘이 앉아 서로 아쉬웠던 점들을 이야기하며, 다시는 뒤 돌아보지 않고 손 흔들며 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 원래 이별은 냉정하고, 차갑게 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이별이라고 했다. 담배는 항상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 보려 한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담배보다 더 좋은 집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이별을 말하려 한다. 그가 뺨 한 두대 친다면 감사하게 맞고 뒤돌아 서리라.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안녕.

이 이별의 말을 준비하려 나는 마음속으로 잠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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