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에게 지금까지 간호 해온 환자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꼭 한두 명은 있다. 한 3년 전 캐나다 비씨주 한 병원의 심장내과에서 일하면서 만난 청년이 있었다. 나랑 동갑이어서 너무나 놀랐고 안타까웠다. 갑작스레 발생한 Endocarditis 때문에 뇌졸중이 왔고, 그로 인해 몸의 왼쪽이 마비가 되었었다. 한 달 동안 우리 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며 억울한 병 때문에 순했던 성격도 다혈질로 바뀌며 쉽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걷는 것조차 다시 배워야 했던 그 친구에게는, 그 나이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고 창피했었다. 난 그를 한 달 동안 띄엄띄엄 간호를 하며 무엇보다 재활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꾼이 되으려고 노력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 여자가 자기를 도와야 한다는 것에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에, 간호사라는 존재 보단 마음에 도움이 되기를 원하면서 잠시나마 친구가 되어 주어주기를 노력했다. 재활치료 병동으로 이동을 하는 날 난 그를 휠체어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오기 전에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며 꼭 나아져서 우리 병동으로 인사하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3-4개월 후 근무 도중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니 그와 그의 어머니가 복도에 서 계셨다. 지팡이의 도움이 아직 필요했지만 서있는 환자 모습을 보는 순간 난 울기 시작했고, 그와 그의 어머님도 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복도 한 복판에서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와 어머니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힘내서 잘 살아 보겠다고 하였다.
예전 직장 동기에게서 온 메세지.
난 종종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날 때가 있었다. 비씨주에서 온타리오로 이사를 하고 몇 년 동안 잊고 있다가 어젯밤 심장내과에서 함께 근무한 동기의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놀았다. 동기는 집수리를 하며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았는데, 그걸 사러 온 사람이 한때 우리의 간호를 받았던 환자였다는 것. 그의 어머니도 도우러 아들을 따라왔다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의 병원 경험 얘기가 나와서 나에 대해 물었다고 하였다.
그는 긴 재활치료 끝에 이제 환자가 아닌 다시 20대 청년의 삶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운전도 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하였다. 나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혹시나 절망에 빠져 회복이 안되었는지 궁금했었는데 말이다.
간호사로써 일은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준다는 것은 정말 하늘에게 감사할 일이다. 정작 사람들을 삶의 한 지점에서 잠시 만나 금방 헤어지지만 그때 그들에게 주는 우리의 영향과, 또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가르침은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하고 중요한 레슨이다. 함께 울고 웃어 줄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