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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ee lee Mar 21. 2019

환자 곁을 지키는 우리.

 For our patients, day and night.

2019년 2월 6일


어젯밤 일하면서 최근 들어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을 느꼈어요.

간호사로써 5년, 그리고 지난 1년 가까이 중환자실에 일하면서 많은 걸 보고 겪었는데,

대부분 보호자들에게 피로를 느끼거나 아니면 환자분께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누군가를 위해 

‘full steam ahead’로 계속 밟고 나가곤 해서,

간호사로써 patience가 바닥나는 일들이 잦았어요.

그러므로 일에 대한 confusion도 생기고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자주 나곤 했어요.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 밤새며 각자 우리 자리를 지키면서

간호사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의 중요성 대해 remind가 되는 밤이 되었어요.


대부분 저희들의 근무는 바쁘고 정신없고 그래요

하루에 해야 할 task들만 하려고 신경 써도 바쁜데

그 와중에 우린 보호자들을 위한 emotional support도 되어 드려야 하고

응급상황이 터지면 모든 걸 내려두고 서로 돕고, 나중엔 밀린 일 다 해야 하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우리가 간호하는 환자분께서는 우리에겐 그저 ‘아픈 사람’일 뿐,

누구에게는 어머니고, 또 누구에겐 자녀라는 걸 잠시 잊게 돼요.


지난 이틀 동안 저희 아이씨유로 연달아 입원하신 두 분께서

하루 간격으로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인 입원실에서 똑같이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셨어요. 

두 분 다 갓 성인이 된 자녀분들은 둔 어머니였고

한때는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고, 보살펴주는 존재였지만

암이라는 미운 병 때문에

진단 소식을 들은 지 한 달도 안되셔서 critical 한 상태가 되셨어요.


어젯밤,

23:30시쯤 OR에서 급히 수술을 중단하고 

Crashing 중이신 분이 입원하신다는 말을 듣고

다들 하던 일을 그만하고 입원실 세팅을 돕고,

환자가 transfer 되면 거의 code blue 상태임을 짐작해서

각자 맡을 역할을 정하고 plan을 짰어요.

누구는 med pass, 누구는 recorder, 누구는 CPR대기, 누구는 runner 등등.


준비하고 입원실 밖에서 7-8명이 되는 간호사, 전공의 등등 숨 죽이며 기다리는 중,

복도 저 멀리 cardiac monitor의 알람이 울리며

Anesthesiologist, OR nurse, surgeon 등 모두 stretcher를 힘껏 밀며 달려오셨어요.


재빨리 monitor hookup 하고, 라인 정리하고

벌써부터 떨어지는 혈압에 epi push, norepinephrine max infusion 하고

Vasopressin, epinephrine infusion에

연이은 bicarb push, blood transfusion, fluid bolus, IV abx 등등 도움이 될만한 약은 다 투여했어요.


우리가 이분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랬을까요,

짐작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코드블루와 달리,

다들 집중하고 조용히 목소리도 올리지 않으며

빠른 손돌 림과 발걸음으로 intensivist가 내리는 오더를 척척 해내갔어요.


입원실을 꽉 채운,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간호사들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고요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우리 힘을 다 써봐도 환자 상태는 갈수록 나빠지셔서

의사 선생님께서 자녀 세분이랑 앉아서 이야기를 했어요.


이때는 새벽 2시.


온 세상이 잠들었을 시간,

한 가족은 생의 가장 두려운 순간 중 하나를 겪고 있었어요.

아버지도 없는 세 자매는 입원실에 몰라보게 다른 모습의 엄마를 보자

울음을 터트렸어요.

조용히 우는 언니, 그리고 옆에 믿기지 않아 소리 내며 우는 막내.


이때 복도에서 창문 너머 세 자매를 바라보고 있던 모든 의료진들은

하나둘씩 표정이 어두워지고 가슴이 내려앉았어요.

비록 우리에겐 또 한 분의 환자이지만,

그를 위해 우는 자녀분들을 보니

마치 우리 엄마를 잃는듯한 아픔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저도 저 몰래 눈물이 났어요.


이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입원실 밖에서 서성이는 우리들을 보며

저는 간호사라는 일을 힘들어도 하는 이유가 딱 여기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싸워주지 못할 때 우리가 나서 주고

밤낮 가리지 않으며 환자를 지키고

있는 힘 다 써서 누구에게는 loved one일 사람 위해 싸우는

우리.

간호사들. 의사들. RT들.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

그리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

바쁘고 힘들어서 우릴 쉽게 피곤하게 하고 싫증 나게 할 때가 있지만

이렇게 한 번씩 다시 가르쳐주곤 해요.


모든 걸 떠나, 우린 환자를 지키는 간호사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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