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들어서자 코끝으로 진한 향기가 허락도 없이 훅 치밀고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만치에서 보랏빛 라일락꽃이, 자만자족하고 있었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곱고 예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포기가 빨라졌다. 조금 덜 상처 받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조금 더 잘 보이고 싶고, 조금 더 인정받고 싶고, 조금 더 사랑하고 싶고, 조금 더, 더, 더 등, 그래서 짜증나고, 우울하고, 속이 뒤틀린다. 그러면서 누군가 그런 속내를 얘기하면 “다 그래”하며 잘도 던진다. 지속도 감당 못하면서,
그래도 어쩌랴? 일상이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지가 무슨 시라소니도 아니면서, 난 독고다이야한다. 사실 그건 원만하지 못한 대인관계에 대한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조금 편한 면도 있지만 불편을 감당할 만큼 친밀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하 호호하는 친구가 부럽다 하면서도 사실그러하긴 싫은 게 속내다.
성격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성장환경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 면으로만 그 사람을 나타낼 수 없다. 참 다양한 것도 성격이다. 내가 수다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마 몇 안될 것 같다. 내 나름의 온기를 느끼면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조잘거린다. 사실 내 속에는 푼수 하나 더 살고 있다.
골목길을 벗어날 때 쯤 향내도 사라지고 있었다. 저 도도한 라일락 향내는 사람을 가리지도 않는다. 누가 향에 취하든 취하지 않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람이 저러하면 참 얄밉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관계는 상호적이다. 주는 것만큼 받고, 받는 것만큼 되돌려준다. 문제시, 받고는 싶지만 주는건 몰라서 이며, 슬프게도 주고받고를 경험치 못해 인식하지 못하는 병리적 양육일 경우가 더 크다. 그네의 탓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밴드를 통해 소통을 한다. 친밀도가 높은 사람은 공감적으로 반응도가 좋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공격적인 성향을 내보이는 이도 있으며, 유난히 내게 다가오는 것에만 반응을 하는 이도 있다, 또는 습관적으로 적당히에서 머물며 외면이나 탓을 하는 이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일까? 지금의 나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한걸음 뒤로 물러서 나를 보아도 좋을 밴활동이다.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응원을 해준 적이 있을까? 또한 누군가의 진심이 내게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는지? 아침부터 그놈의 라일락 향기에 빠져 생각해보고 싶은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