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결혼 한지 두 달 만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스물 하고도 아홉이나 더 먹은 사람이, 천지분간은커녕 세상물정도 모르고 엄마가 되려던 게지요. 그런 제가 그 아이를 낳고 더하여 아들까지 낳아 이때껏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올 수 있었음을, 이제야 새삼 내 주변을 감싸준 모든 사람들이 있어 그러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봄날 하루는 그렇게 저장되었습니다.
햇빛이 눈물처럼 투명한 날에
원숭이를 낳았나 싶을 정도로 털이 많았던 딸과
병원 창문너머 보이는 하얗고 노랗고 분홍빛의 꽃들,
그 꽃나무 사이를 손잡고 걸었던 사랑한 사람과
그것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을 삼신할머니의 인자함이 머물던,
그런 날로 말입니다.
그 딸이 스물여덟 번째의 봄을 맞이합니다. 그리곤 여전히 철없는 엄마를 이젠 언니처럼 이모처럼 보듬습니다. 저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는데, 자기생일을 맞은 딸이 엄마에게 선물을 하네요.
딸 덕에, 아이들이 쓰던 것을 새것으로 바꾼 후에야 내 것이 되었던 노트북을, 이젠 내 검지 끝이 닿아야 작동이 되는, 처음부터 새것인 저만의 노트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딸이야말로 처음으로 가져보는 완전한 내 것이며 미련 없이 내줘야 할 제 것입니다. 불우한 환경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지만, 어쩌다보니 이 나이를 먹도록 타인에 대한 신뢰나 관계맺음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에야 이렇게 쉽게 말을 하지만, 숱한 긍정과 부정을 오가며 내가 그렇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많이 아파했던 나로서는, 처음으로 마음에 빗장을 풀 수 있던 특별한 선물이지요.
자식을 낳아 키우며 부모마음이 이런 거구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나의 부모는 이러지 못했을까하며 스스로가 가엽다 생각돼 울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맘도 형편이 따라야 된다는 걸, 형편이 맘을 따라간다는 걸, 살면서 알게 되었네요. 내 부모도 그리 밖에 살지 못했다는 것을, 그래 그리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자식으로서 가진 감정의 찌거기야 어찌 다 비우겠습니까만, 그래도 객관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망하던 부모가, 미워하던 가족이 곁에 없었다면 어찌 이 소중한 딸을 낳아 이렇게 잘 키울 수 있었을까요? 받은 것은 생각지 못하고 맨날 못 받은 것만 아쉬우니, 들고 날 때의 사람마음이 그러한 가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소중한 딸에게 해준 것이 너무 부족합니다. 뭐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언제나 부족한 것투성인 엄마입니다. 학비마저 장학금으로 충당한 딸이 요즘은 연구실의 시약이 너무 독해 피부 여러 곳에 트러블이 생겨 고생을 합니다. 마음 끝에 칼날에 와닿는 듯합니다.
그런 딸을 가끔 혼도 내고 소리도 질러가며 키웠네요. 보기만 해도 아까운 것을, 어찌 그리 하였는지 후회를 해도 지난 일을 되돌릴 수 없고, 자책만 남게 됩니다. 마음씀씀이가 그런 딸이 무슨 잘못을 했겠습니까? 단지 보다 약한 대상이라 하여 엄마의 화풀이를 당해내야 했던 게지요. 그런 엄마가 속이라도 상해 울기라도 할라치면 가만히 동생을 데리고 나가 보살펴주던 아이가 우리 딸이랍니다.
거짓말처럼 생일선물인 듯, 딸의 논문이 십 퍼센트의 우수논문으로 통과 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철없는 엄마는 슬퍼집니다. 차근차근 준비하며 제갈 길을 찾아가는 딸과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어도 보고 싶은 그런 딸을, 일 년에 한 번, 또는 몇 년에 한 번 보며 어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이 아찔해집니다.
보통 하루에 몇 번이나 웃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딸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틈만 있으면 여기저기 쿡쿡 찔러봅니다. 사랑이란 게 이리 좋은 거지요. 딸 앞에 서면 저는 여린 계집아이가 됩니다. 어리광을 부리고, 투정을 하고, 애교도 부리며 의지를 합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옆에 있는 딸에게 화장실을 가도 되냐 묻습니다. 그럼 우리 딸은 “가라고, 얼른 가라고” 하며 눈을 흘기지요.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아 시원해, 시원해”하며 딸을 따라다니며 생글생글 웃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핍은 깊은 우물만큼이나 어두워 속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채워보지 못한 애정을, 딸을 통해 채우고 있던 것입니다. 거부와 회피를 내려놓고 부모에게 미처 받지 못한 사랑을 딸과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회복하며 건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딸은 언제나 ‘하뚱’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한참이나 웃었던 말이지요. 하체가 뚱뚱해 ‘하뚱’ 이라 한답니다. 그래도 한복을 입혀놓으면 그만한 이미지가 나오긴 힘들 정도로 참하고 예쁜 사람이 내 딸입니다. 농담 삼아 말을 하지요. 전통결혼식을 해야겠다고,
딸이 새로 산 압박 스타킹을 신어보다 발목에서 멈춤을 할 때 눈이 마주칩니다.
"조심해라 "
"왜에~~? "
"입 꼬리 올라갔다"
참던 웃음이 터집니다. 딸과는 매사가 그렇습니다. 개구쟁이 소년마냥 웃고 달아납니다.
이 딸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러니 이런 딸이 내게 찾아온 날을,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까요? 온 마음을 모아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날, 딸의 생일입니다.
생일을 맞은 우리 딸을 위해 기원하고 또 기원하게 됩니다. 항상 건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기를, 그러하기를요.
정말 사랑한다는, 수백만 번 말을 해도 모자를 그런 말입니다. 그래 그런 딸을 점지해주신 삼신 할머님께 언제나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감사하고 있음을,
아실런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