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퀭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뿌리 같은 남자의 얼굴’,
오후를 카페에서 보내고 나서는 계단쯤에서 부딪칠 것 같은 이 남자는
내내 뒤돌아서 훔쳐보고 싶은 충동질을 멈추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 마음이 그러했다.
작가는 건조한 눈물을 닦아내듯 담담히, 누군가 사랑을 할 때 그의 내부에 이는 미묘한 감정을 소설을 통해 설명하려는 듯 글을 이끈다.
만약, 글을 읽는 동안 그가 곁에 있었더라면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그를 안아주며 다독여주었을 것이다. 소설 속으로 숨어든 그를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숙주일 뿐이고, 사랑이 그 안에서 제 목숨을 이어간다는 뜻’의‘사랑의 생애’는‘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랑의 불가항력적 성격’을 설명하며 ‘사람이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 말을 한다.
사랑을 하면,‘세상에 떠도는 말대로, 용감해지거나 너그러워지거나 치사해지고, 또는 유치해지거나 우울해지며 때론 의젓 해지 기도 한다.’ 고 그 역시 겪었을만한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사랑하는 이들을 대신해 변명이라도 해주려는 듯 보였다.
1. 줄거리
소설의 이야기는 이외로 단순하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며 형배는 선희의 사랑을 거절했고, 견디지 못한 선희는 출판사에 취직을 하며 그와 연락을 끊는다.
퇴근길에 신인문학상 통보가 왔고, 공교롭게도 선희를 축하해줄 사람은 이형 문학관의 과장인 영석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와의 술자리에서 자신이 정말 축하받고 싶은 사람은 형배이며 그녀가 얼마나 형배를 사랑했는지 통곡하며 실토하고 만다.
선희와 영석이 사랑하게 된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녀를 이끈 건 그 남자의 약함, 보잘것없음이었다.
그녀가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직장동료의 결혼식장에서 형배는 이 년 십 개월 만에 선희를 다시 만났고, 낯설고 알 수 없는 여자가 된 선희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갖게 되었다.
형배는 시계를 보았다. 10시 10분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시간에도 파스타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약속을 잡는다. 주문한 홍합 파스타가 나온 것과 동시에 선희가 엔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모자를 눌러썼고 반바지 차림이었다. 반면 그는 서둘러 나오면서도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내부의 욕구로 용모에 신경을 썼다.
영석은 자주 전화했고, 자주 찾아왔다. 그날 밤, 영석은 의식하지 못한 불안과 의심을 노출시키며 지금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보내달라며 선희에게 요구를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겐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 선희는 긴 실랑이 끝에 전화를 끊고 만다.
자정이 되기 전 그녀는 영석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 맥주집 엔젤에서 형배와 파스타를 먹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다음이었다.
영석은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 묻는다.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벌써 열두 번째의 전화를 거는 중이다.
거리낄 것 없는 선희는 형배와 함께 있는 엔젤로 영석을 오게 하였고, 선희가 그렇게 사랑했던 형배와 있는 것을 본 영석은 좌절한다. 결국, 선희에게 형편없는 싸구려라 욕지거리를 하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 소리치며 울먹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의심하는 자는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유도된 것을 바라본다. 형배는 선희가 사랑하는 남자가 괴팍하고 무례하며 난폭하고 나이가 많은 남자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하여 그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악덕을 물리칠 정의의 사도가 되었다.
형배는 영석을 찾아가 선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렵거나 연민에 이끌려 만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사랑은 중심 시야는 밝게, 주변 시야를 어둡게 한다.
영석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선희에게 알린 사람은 형배 자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한 것과 달리 굳어져있던 선희의 마음을 녹여 영석에게 돌아가게 만들고 말았다.
형배는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젊은 날의 그의 어머니처럼 아플까 봐, 그런 삶을 살지 않으려고, 정말로 사랑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움츠러들고 뒷걸음질 쳤다는 것을.
형배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휘정거리는 걸 느꼈다. 사랑은 밝고 강하고 충만한, 상승하는 것이었다. 어둠과 결핍과 하락은 사랑과 반대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생각지도 않았다. 형배는 자신이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아주 잘못 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소수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어색한 듯 몸을빼는영석을 붙잡아 셔츠 위에 검은색 넥타이를 야무지게 매주는 선희의 모습이 보였다.
2.‘사랑이 대체 뭐예요?’
‘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심하게 외로움을 느낀다면, 허전하고 안타깝다면 그것이 사랑에 들렸다는 증거다.’ 작가는 묻고 답한다. 어쩌면 작가의 사랑이 그러했을지 모르겠다.
연애소설이다 생각하며 접근한 ‘사랑의 생애’는 식어버린 국처럼 이제 뭐 사랑은 대수롭지도 않아하며 써 내려가는 작가의 덤덤함이 유독 와 닿는, 함께 속앓이를 하는 자들의 묵은 상처라도 들여다보는 듯 마음을 저려오게 하는 소설이었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특별하다. 그러나 유독 사랑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고슴도치처럼 누군가 안으려 하는 순간 몸에난 가시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마는’그런 사람들이다.
형배는 약해지고 비참해지고 어둠 속에서 술에 취해 울고 마는 사랑을 할까 봐 쉽게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못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보냈던 힘들고 절망스러운 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처음으로 사랑하고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라 말했고, 그런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말하며 떠났다. 사랑은 그처럼 불완전하고 모순된 것이었다. 적어도 그에겐,
영석은 늘 자기가 혼자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의지할 상대가 없다는 뜻에서, 그러니까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네 살 이전에 부모는 죽고 천덕꾸러기로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자랐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그를 눈치 빠르고 과묵하고 독한 아이로 만들었고, 누구도 그를 진정으로 보살펴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누구에게도 진정으로 의지하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의 삶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구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의 삶이다. 대개의 경우 무엇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과 무엇을 달라고 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동일인이다.
선희를 만나면서 그가 정말로 원한 것은 사랑한다고 해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험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심리적 상처 때문에,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지금은 변하고 단단해졌지만 여전히 사랑 앞에선 암울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 여린 아이로, 상처에 아파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사랑은 성장하기 위한 탈각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단단한 껍데기를 벗어 내고 핏빛 어린 실핏줄과 선혈이 묻은 연한 살점들을 내보이게 되는, 사랑은 그들에게 다시 더 단단한 껍데기를 입히기 위해 순례자가 걸어야 할 고행에 가시밭길을 펼쳤는지도 모르겠다.
3. 한 가지 표현
누구나 ‘사랑한다.’는 한 가지 표현을 쓴다. 사랑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한다 말하면서 제각기 다르게 사랑을 한다. 제각각 살아온 방식대로 경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사랑이지만, 어느 사랑이 더 절박하다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4.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뱀이 허물을 벗는 이유는 생명의 연장이다. 뱀의 피부는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자라지 않아 허물을 벗지 못하면 결국 죽고 만다.
사랑도 사람에겐 생명유지를 위한 허물과 같다. 사랑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때론 달콤하게, 때로 쓰디쓰게, 아쉬운 건지, 천만다행인지 뱀과 달리 사랑은 숙주를 골라가며 선택할 수 있다.
- 해외 번역가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승우 작가님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대하는 작가님이기도 하다. 분명 한국 작가님인 것을 알고 읽기 시작한 책이 번역서인가 착각을 일으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걸치기도 하였다. 너무 늦게 작가님의 작품을 만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더하여 미련이 남는다면 좋은 말에 대한 이야기다. 한때는 일본에서 실험 결과를 보여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과학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사항이다. 마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실험처럼,
작가는 가설을 조작화하여 검증을 하거나 주제를 선정하고 관찰한 다음 결론에 이르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심리를 논리적으로 전개해, ‘우리가 왜 사랑하기 전의 자신과 그토록 달라질 수밖에 없는지 증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도저히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하였다.
만약 코로나 19가 사랑의 전염병이었다면, 별 생각을 다한다. 분명한 건 한우 급 숙주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것이다. ㅎ ㅎ 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