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고 있었다.
주홍빛 불빛 하나가 야금야금 주변의 어둠을 삼키며 밤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문득 담배를 태울 수 있다면, 무턱대고 갑작스레 밀고 들어서는 이 쓸쓸한 감정을 뻘겋게 태워 희뿌연 연기로 뿜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본다.
새벽녘으로 가는 길에 언뜻 잠에서 깨어 도시에서는 낯선, 개 짖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뭘 그리 지킬게 많다고, 말도 못 하는 짐승이 잠 못 들고 저리 신경에 날을 세우는 걸 보니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보았다.
꿈을 꾸었던 거였다. 잠결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지만 잠시 예가 어딘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 혼란함에 빠지고 만다. 넋 빠진 정신 줄을 되잡고서야 창문을 흔들며 지나는 바람소리에 그만,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만 것을 알아챈다.
뜬금없이 손가락 끝을 세워 유리창 너머 불빛을 따라 그려 본다, 이제 남은 삶은 불빛 밖으로 둘러앉아 무대를 지켜보며 추임새를 거들뿐, 속도를 줄이며 살아가도 좋을 날들이란 생각이 따라 들어섰다.
당연함에도 털어낼 수 없는 씁쓸함은 요망스럽게도 가뜩이나 메마른 혓바닥을 입천장으로 달라붙게 만들고 만다. 슬프게도 더 이상 칠흑 같이 까만, 깊은 잠은 허락되지 않는 대부분의 날이 되고 말 것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둘씩 열어두었던 창문들을 닫기 시작했다. 여름 이불을 빨아 갓 시작된 가을빛에 말려 장롱 속에 개어두고, 새로 산 밍크담요를 덮자 기분 좋은 따스함이 몰려왔다. 점점 복잡하고 단계를 거치는 것들이 귀찮아져 세탁기에 돌려쓰고 말, 화려한 꽃무늬의 밍크담요를 산 것이 새삼 흡족 해진다.
그럴 때가 있었나? 긴가민가 싶은, 군불 땐 아랫목에 누워 밍크담요를 덮고 라디오를 듣던 유년의 기억이 웃음 끝으로 씁쓸함을 몰고 온다. 울음을 들키지 않으려 뒤집어썼던, 집어삼킨 눈물만큼이나 무거웠던 목화솜에 비하면 새털처럼 가볍고 포근한 것이 더할 것 없이 바랄 것 없는, 이만하면 좋다 싶은 여유로움으로 찾아든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누구에게나 밍크담요 같은, 그게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포근한 사람이 아쉬운 계절임은 분명할 것이다.
정말 잠깐 사이, 제법 차가워진 날씨다. 짐작할만하지만 어째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수상스럽다. 한여름의 열기에 지쳐 나도 모르게 숙여졌던 고개가 괜스레 그리움으로 젖어들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겹도록 맑은 하늘을 뒤져, 먼지처럼 사라진 추억이라도 찾아 끄집어내어 풀어헤치고 싶어진다. 그만큼 허공에 퍼붓는 시간이 많아질 계절로 들어 선 것이다.
꽃이 지고 나서야 그 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떠나고 나서야 아무렇지도 않았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만큼 소중한 행복이었는지, 그렇게 알게 되는 것들이 아무리 자연의 섭리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라며 원망하고 푸념할 수 있는 계절 또한 가을이 아닌가 싶다.
말이야 사는 게 다 그렇다며 치부하고, 이치가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산다지만, 왜 가을로 들어서면 해마다 묵은 상처를 꺼내 몸살로 앓아눕듯, 가슴이 메어지는 걸까? 어쩌면 그만한 고통을 감내하며 한 번쯤 처절한 기도를 드려야 할, 잉태의 앞선 계절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서히 가을은 더 짙게 물들어갈 것이다. 물 빠진 나뭇잎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감빛이, 빨갛고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가, 꽃 지고 남을 검은 씨앗이, 그리고 자연스레 거두어지지 못한 것들은 겹겹의 쌓인 부엽토 위로 떨어져 씨앗을 품게 될 것이다.
겨울이 되어 지난여름을 뜨겁게 그리워하듯,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 올 그대가 있었더라면, 이 가을 조금 더 따스한 날이 될 수 있을까?
흡족함이 많아지는 시간을 살고 있다. 좋아하는 천을 골라 손바느질로 대충 꿰매단 커튼이, 낡은 것들을 버리고 새로 산 작은 소품이, 허드레 바지를 입고 걷는 가을길이, 더위가 가셔 입기 좋은 롱스커트가, 편한 신발 하나까지, 모든 것들이 흡족함이 묻어나는 시간 속으로 나를 들어서게 하고 있다. 그래 약간의 찬바람은 오히려 마음을 맑게 할 영혼의 속삭임으로 전달될지 모른다.
때론 아문 상처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살아지는 날들이 더 상처가 되는 날도 있음을 문득 알아채기도 하지만, 그러나 모든 날들이 다 괜찮을 수 없음을 누구나 알아가며 살아가지 않는가? 그만하면 됐다 싶은 것이다.
새벽이 아침으로 물들고 있다. 시간의 변화 속에서 가지마다 매달려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사람도 그렇게 영글어가는 것임이 당연한 것일 게다.
그만하면 됐다, 허울뿐인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신경에 날을 세우지 않아도 좋을 날 들이다. 아직 따지 않은 포도주 몇 병과 캔 맥주 몇 개를 갖고 있고, “사랑해”를 남발하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비빌 수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옆에 있다. 한잔의 붉은 와인은 황홀한 잠 속으로 나를 던져 넣어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만하면 행복한 것이다. 그만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