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 아래로 가 선다.
모든 것이 묽어지는, 물 빠진 면티처럼 마음도 서서히 늘어지고 있음이다.
사층에 산다는 것은 그만큼 땅에서 올라선, 하늘에 공간에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면 아주 연하게 노란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햇빛이 내려앉는 거리를 바라볼 수가 있다. 여행길을 나서기 전 화려한 머리 장식에 여념이 없는 나무도, 전깃줄에 걸터앉은 까치 몇 마리도 숨어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하늘의 공간에서,
함께할 땐 내리막길을 구르는 바퀴처럼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딸이 발레 수업을 위해 집을 비우자 아주 천천히 더디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다 홀로 되는 시간이 쓸쓸해지는, 주어진 정적에 마음마저 어쩔 줄 몰라 수선을 떨고 만다.
마시려던 커피를 텀블러에 쏟아붓고 쿠키 통에 베이글 하나를 더 담아 집 앞 놀이터로 가 자리를 잡는다. 드문드문 자리한 사람들을 구경삼아 커피를 마시기엔 햇빛 좋은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놀이터에 투명하게 허공을 가로지르던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시끄러울 정도로 놀이터를 차지했던 그 많은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주변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던 아이들이 이젠 우연히 부딪치기에도 드문 일이 된 것이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산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 짓기 위해 우린, 보통 그 사람과 함께한 이미지를 기억창고에 저장하게 된다. 놀이터를 떠나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기억창고에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결국 어느 시기가 뭉텅 잘려 나가 불안한, 디딤돌이 견고하지 않은 젊은 세대로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울 뿐이다.
빵조각에 용케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최소한의 것, 기본적인 욕구만 해결되면 살아지는 비둘기처럼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고 살아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개념이 엉뚱하게도 이 상황에 겹쳐 생각된다.
한 편으로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가만히 다가서는 것들을 감싸 안으며 살고 싶다지만, 오늘 같은 날엔 왠지 아쉽기도 한 것이다.
꿈꾸던 내게서 난 얼마나 멀어진 걸까?
예나 지금이나 현실감각이 뒤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요란스럽지 않은 작은 읍에서 살고 싶었다. 평생 면서기라도 월급날만큼은 읍내 양식집으로 가 돈가스라도 사 먹으며 별 탈 없는 삶을, 별것도 아닌 것에 웃어가며 살아가고 싶었다. 아이들도 도시에서의 배움이 끝나면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와 가끔 늙은 어미의 손을 잡고 가 그 촌스러운 돈가스를 사주었으면 했다. 모두가 일터로 향하면 난 골방으로 들어가 작은 책상에 앉아 물 흐르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고향을 예찬했으리라.
아깝다 싶게 떨어진 나뭇잎이 잔바람에 뒹굴어오듯 아무 때고 기억은 시간을 넘나들며 지난날을 되살린다. ‘너는 그 나이 먹고도 통 세상 물정을 모른다’며 잔소리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들었더라면 또 한 소리 듣고도 남을만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야박해 보이는 그녀가 특별히 잘 산다 싶지는 않았는데, 부러운 건 자만 자족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가 그녀라는 것이다.
가만, 가만히 기억 속의 사람들이 곁으로 와 앉는다. 처음으로 이게 사랑인가 싶었던 사람이, 종이봉투 속에 갇혀 전해주지 못한 열쇠고리가, 여러 기억 속의 것들과 뒤섞여 지나간다. 날 세워 돌아섰다고 씻은 듯이 잊고 사는 건 아니었다. 겨우 버틸 수 있을 때,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을 때 돌아서는 것이 사람에 마음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이렇게 아무 때고 꺼내 보거나 담아두기도 해 사는 날이 심심치 않게 지나가게 될 것이다.
가을은 물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벗어내는 일인 거지 싶다. 스모키 화장에 더 깊어진 눈빛이 말갛게 세수를 하고 선함을 내보이듯, 하늘마저 짙음을 벗어내며 옅어지고 있지 않은가?
선명하던 그림자들이 모양을 흩뜨리고 있다. 곧 나무는 모든 것을 떨구고 말 것이다. 가장 가벼운 모습으로 겨울을 버텨내 더 단단하고 야물어지기 위함인 것이다. 때론 어울림의 시간보다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사람에게도 소리 없이 익어가야 할 시간이, 마찬가지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욕심에 설익은 밤송이 가시를 짓밟고 배를 갈라 억지로 밤톨을 꺼내는 짓은 버려두어야 할, 제 스스로 입 벌려 떨어지는 밤톨을 기다려야 할 계절로 들어서는 것이다.
‘생각 버리기’의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의 기준에 끌려다닐 뿐이라며,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통해 사람은 성장한다’. 고 하였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담벼락 한쪽에서 살며시 익어가는 감처럼, 사람도 속 깊게 익어갈 것이다.
제트기가 지나간 것일까? 구름이 하늘에 길게 선을 그어놓았다. 울긋불긋 독기 빠진 잎처럼 마음도 습기가 메말라가는 이즘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주게 되는 오늘이 별다른 날이 돼버린 기분이다.
무리의 아이들이 전동 보트를 타고 놀러 나왔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해하기 힘든 장난감이지만 아이들에겐 흥미롭고 재미난 장난감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휠체어를 탈 쯤엔 제트기처럼 날아다니는 보드가 상용화될지도 모르겠다. 하늘길을 다니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썩 괜찮은 기분일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은 앞으로만 달려가던 것들을 멈추고 주변의 것을 살펴보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나무 아래로 가 서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들의 공간이 보인다. 하늘도 나뭇잎도 엷어지고 있다. 덩달아 살아가는 날도 낡은 면티에 늘어진 운동복 바지처럼 편안하고 엷어졌으면 좋겠다. 그 위로 따뜻하게 감싸줄 털 잠바 같은 친구 몇 두고 살리라.
언제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홀로 있는 시간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앓고 나면 더 단단해지는 아이처럼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더욱 단단하게 여물어질 것이다.
가을 하늘에 소식을 이렇게 전한다.
잘살고 있다고,
또 잘살아 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