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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나무
Nov 4. 2020
오후를 접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한번 만나야 하는 병원을 들러
돌아오는 길에 중고서점에 들렀다.
어느 집 책상에 놓였고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읽혔을지도 모를
오다가다 우연히 스치고 지나도 평생 모를
누군가의 손길이 남은
책 몇 권을 산다.
불빛이 내려앉은 그 골목을 지난다
그러고 보니 서른이 되기 전
곱창에 맥주를 마시며
너와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다.
바람 속에 겨울이 숨었나 보다
무뎌진 마음에도 차갑다
아직 가을도 버거운데,
내일은 옷장 깊숙이 밀어두었던 코트를 꺼내
너의 기억처럼 따스하게
걸쳐 입어야겠다.
어제든 오늘이든
이미 정해진 듯한 약속 장소가
너와 나의 인연만큼 나이를 먹은
계집아이들을 서둘러 삼킨다.
그러고 보니 젊은 날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나이를
그대 없이 살고 있다.
사는 게
이렇게 우연찮게
기억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미련하게 다 읽은 책은
책장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
오래도록 잊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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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어느 구석, 햇빛 드는 창가에서 냥이와 전깃줄에 앉은 새들을 훔쳐보며 살아갑니다. 가끔 그 짓도 지루할 때, 마음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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