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이 뒤섞인 거리를 걷는 건 스산한 바람이 되는 일이었다.
드러난 목으로 쓸쓸함이 들어서는 것 같아 여밀 스카프를 꺼내 곱게 다림질을 해두고,
지난해 사용하던 브로치들을 찾지 못해 백화점에 들렀다 가는 길이다.
모처럼 휴일의 거리엔,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수선거렸다.
다들 그러할까?
쓸쓸함을 대체할 뭔가가 필요해 집을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그 거리에 문득, 혼자였다.
지하철 입구로 가 쏟아지는 사람들을 다잡고 물어본들, 어느 한때고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 한때를 거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어울림에서 오는 불편함을 참아내는 것보다야 약간의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게 속 편다 싶어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지만, 그냥 그런 사람도 있다 생각하면 또 위안이 되는 터였다.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이라고 해야 할까?
건물 외벽 창으로 비추는 하늘에 구름이, 떠도는 섬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누구나 저렇게 도시를 떠다니는, 홀로 섬이지 않을까 싶었다.
홀로 섬,
그 섬에 그대 일 수 있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섬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린, 타인에 삶을 직접적으로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보다 이야기를 통하거나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접해가는, 조금은 이기적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섬에서 우린, 사는 데 필요한 순서를 배우고 영악스러운 계산법을 알아가며, 때론 지쳐 쓰러져 눕기도 하는 것이다.
기다리던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서자 모여있던 나뭇잎들이 새 떼처럼 달아났다. 삶에 열기를 잃어가는 우리네와 영혼까지 메말라 보이는 낙엽이 많이도 닮아 보인다. 버스가 한적한 거리를, 몇 되지 않는 승객을 태우고 이어달리기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대단하다 싶은, 늦가을을 머금은 가로수들이 자비롭게도 멀리 나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짙은 가을 색을 듬뿍 뿜어내고 있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진흙 속에 핀 연꽃을 칭송하지만, 온갖 대기오염과 소음공해를 줄여주며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가로수의 노고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래 가로수는 그 많은 수고에도,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자리를 지키며, 충실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소시민의 삶과 많이 닮았다 여겨질 뿐이다.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문에는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기를!’이란 구절이 있다. 뜻밖에도 무심한 듯 버스 안에 흐르는 노래를 따라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오래전 잠든 기억이 깨어나 내게로 걸어왔다. 왜 그렇게 지나간 것들은 모두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해묵은 기억은 웃음을 짓게도 또 마음 아리게 떠올랐다. 하긴 가보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이런 감정에 빠지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나이쯤이면 살짝 넘어갈 만도 한 사내, 그가 그랬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흐르는 노래를 불러 휴대폰으로 전송해주던 그는, 언젠가 모임의 밥자리에서 생선 살을 발라 내 밥숟가락에 얹어 주었었다. 사랑에도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면 선택의 우선 조건으로 삼게 될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게 그렇다. 살아가는데 무엇이 소중한지, 치장을 걷어내면 무엇이 남는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젠 둘러맨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아이처럼 기대고픈 귀소본능을 사랑이라 말해도 좋을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 대부분은 선택 앞에 서는 거였다. 남의 일에는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 객관적 판단을 하면서도 막상 내가 해야 할 선택 앞에선 머뭇머뭇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하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버려진 선택에 미련을 두는 게 사람에 욕심일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라도 인생 대부분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 그 작은 세계에서 산과 나무로, 바위와 꽃으로 가득 찬 풍요로운 계절을 보내기도, 삭풍 지나는 한겨울을 맞이하기도 하였지만, 정작 아쉬운 건 살아가는 그 많은 날들 중에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날들이 몇 날이나 되었을까 하는, 헤아려보지 않은 날들이다.
바람 불어 지나는 듯 모든 것이 지났다. 버스를 내리자 소녀처럼 볼 빨간 추억도 사라지고 길가 나무에선 건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봄나무가 노래하듯 꽃을 피웠다면 가을 나무는 마른 풀냄새로 지나는 사람에 마음을 잡는다. 그것이 곧 떨굴 잎들과 이별을 앞둔 나무의 눈물일지 모른다 생각하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함께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계절과 함께 세월이 흐른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과한 기대로 절망에 빠지지 않게 되었으며 허상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조금 느리긴 하지만 되살아나는 욕심에 한 발 물러서 낮잠에 빠지듯 고요해지는, 나른한 오후를 맞이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서는 일만큼 힘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 젊은 날엔 젊어서,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드는 대로 서툴고 버겁다. 매일같이 많은 말들을 주고받지만 진정으로 말을 나누어 가졌구나 싶은 말은 드물어졌고, 마음에 말을 하지 못해 헛소리가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그런 내게 떠밀려 귀양살이를 가듯 침묵에 섬으로 걸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린 각자의 섬에서 살게 되었는지도 모를,
바람이 목 뒤를 스쳐 지나간다. 서둘러 나의 섬으로 돌아가야겠다. 언제나 출발점이 되어주는 나의 섬, 남은 오늘은 하얀 갈매기가 되어 여유롭게 섬 주변을 날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