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부모의 사정으로 보건소 의사인 고모에게 맡겨진 열세 살 영초롱은, 슬픔에 대해 완전히 아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했다.
문득 언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아이스크림 같은 슬픔.......
생각지 못한 슬픔이다.
정말 어쩌면 우린, 그 달콤함을 핥아먹듯 슬픔을 천천히 우려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전의 앞면 같은 달콤함을 알기에 결국 뒷면의 슬픔도 하나가 되는, 그래서 슬픔도 달콤할 수 있겠다 에 빠져들게 된다.
빨간 사과 하나에도 예뻐 못 먹겠다는 사람과 누군가를 생각하며 주머니에 담아 넣는 사람, 남보다 먼저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듯이 책을 읽다 엉뚱하게 나만의 방향을 가기도 한다.
사실 처음 접한 작가의 글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어둡고 그늘진 세상만이 그들의 세상인 양, 늪 속으로 빠져들 만한 이야기를 작가는 가볍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전학생으로 제주의 말도 알아듣기 힘든 영초롱은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복자와 친구가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첫 만남부터 영초롱을 고고리 섬의 할망당으로 데려가 완전히 망해버린 집안 사정과 그것에 뒤따른 일들을 할망신에게 고백하게 만든 복자다. 그렇게 친해진 둘은, 이혼해 섬을 떠난 엄마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휴게점 고모가, 특히 지난 일요일엔 수리공과 거기서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 달라는 복자의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멀어지게 된다.
'내가 본 것을 보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기에는 어떤 적의가 있었다. 책상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잘 안 되면 다 쏟아부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자주 상처 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였다.
세월이 흘러 섬을 떠난 영초롱은 판사가 되고 법정에서 몇 번의 욕지거리를 해, 초등학교를 제주에서 다녔다는 이유로 좌천성 부임을 하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수신하려고 해도 수신할 수 없던', 아프던 유년의 날들과 화해의 시간은 주어지고 영초롱은 복자이기도 한, 파우더링한 약제 목록 중 어느 것으로 인하여 잦은 유산과 기형아를 출산하는 간호사들의 산재 사건을 맡게 된다.
'연수원 수석 졸업과 상관없는, ‘충동적 성향이고 승진에는 무관심하다 라는 설명과 안전함’ 이란 동료의 평가는 판사로서 영초롱의 의미를 무너트린다. 결국 복자의 산재 사건도 중도 포기한 채 영초롱은 법복을 벗고, 고모의 추천으로 인권법연구소 파견직으로 파리로 떠나게 된다.
마치 윤호라는 목적지를 떠올리며 파리에 온 것처럼 낭시에는 화해하지 못한 과거가 있다. 맞은편 노인이 휠체어에 의지해 베란다에서 생존자란 단어를 들어 보일 때마다 옛사랑 윤호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상실이나 실패로부터 생존하고 싶은 영초롱은 단 한 번도 그러하지 못한다.
화분 속 식물처럼, 나름의 푸름으로 자족하지만 서른의 고모는 외롭고 단조로우며 분명하게 고립된,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며 정물처럼 덩그러니 고고리 섬에 놓여 있었다. 파리의 오래된 아파트에 머무는 영초롱도 언젠가 보내려는 편지를 복자에게 쓰고 있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작가는 책에서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했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한다.
‘어른이란 사실 자기 무게도 견디기 어려워 곧잘 무너져 내리고 마는 존재들이라는, 그 시절 복자는 이미 그걸 잘 알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씩씩하고 많이 웃고 더 진취적인 아이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속일 수 있기를 바라는 힘으로 어른이 되는 아이들’,
나의 복자만은 그러하지 않기를 바라며, 봄이 오는 이 길 어딘가에 살고 있을 나의 복자를 찾아 나서고 싶어 진다.
‘내가 과거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는 건, 다 잊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뿐이다. 어느 계절의 시간 속에 기억 어딘가에 넣어놓고 열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처럼 잠들 수가 없을 때면 밀려왔다. 모든 것들이’,
묻어두었던 감정을 다시 만나는 일은, 까마득하게 공중을 빙빙 돌며 떨어지는 구멍이 숭숭 뚫린, 에멘탈 치즈 같은 갈잎이 되는 일이었다.
‘그 무렵의 내 나날들이 누군가와의 헤어짐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건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복자를 통해 섬의 대부분의 것들을 받아들인 영초롱처럼 내게도 유년은 또 다른 복자를 통해 채워졌을 것이다.
‘복자처럼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꼿꼿이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바람이 휘몰아쳐도 야, 야, 고복자! 이렇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 춥거나 햇볕이 따갑다고 엄살떨지 않는 것’, 어쩌면 유년은 그렇게 내 삶에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날에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때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게 된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다자란 어른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크게 유년을 벗어나지 않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를 엿보는 것은 작은 기쁨이 되기도 한다.
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쁜 마음이 넘나 든다. 이러한 때, 청보리 밭으로 유명해 이삭이란 뜻의, 제주 고고리 섬의 풍광이 가득한 김금림 작가의 소설, '복자에게'는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 풋냄새 가득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는, 봄이 들고 오는 선물처럼 상쾌하게 다가왔다.
축제 같은 날!
숱하게 지나치던 말이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처럼 언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 봄은 누구에게나 축제 같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날들인 삶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