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에 자리한
크지 않은 술집이었다
그저 사람이 그리운 여자와
속셈을 숨긴 사내가 마주한다
훔쳐보듯 가슴으로 흐르는 사내의 시선과
어느 것도 마땅치 않아 건조로운 여자,
낡은 갓 등 속에 숨어 떨고 있는
30촉 전구의 불빛을 바라보다
그만큼이나 흔들거리는 기억을 만났다
취기에 멀어져 가는 소리만큼이나
세상의 것들이 겉돌고
한참이나 드러내지 못해 감춰두었던 그림자가
그 불빛 아래로 따라 눕는다
피시식, 힘 빠진 방귀처럼
제멋대로 새어 나오는 웃음에
기생하던 혈관의 멍울도
검은 핏빛의 가지를 드러내며
울컥,
날 선 신경 줄을 토해내 나자빠지고 만다
주홍빛 얼굴에 들이미는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들러붙는
익숙한 것들
괜한 말에도 헤픈 웃음이
주술사의 주문처럼
허상의 것들을 깨워 일으켰다
피할 수 없는 혼돈 속, 시간의 늪이다
그랬다
방울소리에 문이 열리고
터무니없는 그리움도 넘나들어
들고 나서는 사람 중 하나,
그대였으면 하는
철없는 계집 하나 웃고 있었다
2.
웃음이 울음이 되는 시간이 있다
쏟아지는 거짓 투성과 자문자답의 독백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위선에 위선을 걸치고
그 어떤 것을 더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
미친년,
씹다 버릴 껌만큼이나 하찮은 자아에
불면의 밤을 선고한다
정념에 사로잡힌 눈앞의 사내와
거짓으로 포장된 사랑을 나눈다면
이 밤,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뻔한 거짓에
뱉지도 삼키지도 못할 뜨거운 망상
차라리 으슥한 골목길로 달려 나가
어느 놈이고 수없이 싸질렀을,
찌린내 가득한 담벼락에 토악질을 보태는 것이
속 시원한 평안을 갖게 될지 모른다
기억이 어지럽게 나뒹구는 거리를
유령처럼 그대가 따라 걷는다
낮선이 의 얼굴에서 만나는 당연한 절망, 헛웃음
그럴 리가
우연에 우연으로도 당찮은 것들을 바라는,
취한다는 건 바람처럼
그렇게 기억을 오고 가는 것인가 보다
3.
봄이 왔다 해서
꽃이 핀다 해서
우리에게도 봄이 왔을까?
그 봄으로부터 여러 계절이 지나고
술에 취한 밤이 되어서야 꽃처럼 피어 본다
취한다는 건 잠시 일상을 멈춰
억지웃음에 괜찮은 척,
척, 척하며 사는 위선의 것들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벌거벗은 제물이 되어도 좋을, 허락된 밤일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거짓을 희망하고
허상의 것들을 꿈꾸는 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획하고 노력하던 것들을 쉽게 집어삼키는
뻔한, 그러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음이다
그대는 남쪽, 나는 북쪽
다다를 수 없다
그럼에도 걷는 걸음마다 취한 술은
불쑥,
유령 같은 그대를 헛것으로 만나게 한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이다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싶은 숱한 충동은 잊어버리고
그립고 지난 시간에 아파하는,
그러나 지금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고백
4.
어느새 그리 되었다
그리움도 사치가 되는 버거운 하루
술에 취해서야 겨우 기억도 게워내는,
돌아선 길
하고픈 말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흐르는 세월을 받아들일 뿐
그대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이 외로운 것일까?
온통 너와 함께하던 모든 것을
홀로 견뎌내고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 세상에 내가 사는 것이다
그러다
괜한것들에 마음 주는 일
그것이 그대가 없는 세상이다
술이 취한 날에야
익숙한 고독의 편리함에 젖어
시작할 내일의 이유를 찾는다
그러면 오늘 하루, 모두 무사한 것이다
이 밤,
유령처럼 그대가 따라 걷고
그렇게라도 마음을 옭아매어
이제껏 살았듯
그렇게 살아갈 모든 날들에 인사를 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