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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Aug 13. 2021

숲길을 걸으며

숲으로 들어서자

나뭇잎 사이로 내리 비추는 햇빛에 반사된, 아름다운 풍경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듯 다가섰다.    


다시 잔잔한,

흔들거리던 시간이 지나고 평화로움으로 둘러싸인, 단조로움만큼이나 기분 좋게 달리던 바람이 와 부딪친다.    

시원했다.

'여름 바람이 이랬었지'

어쩌다 이 시원함을 다 잊고 살았을까? 무작정 냉기를 쏘아대는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스치는 바람만으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맑은 하늘엔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길가엔 강아지 풀이고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간들거려, 곁에 들꽃으로 피어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그런 엄마를 재촉하듯 앞서던 딸이 걸음을 멈춰 바라본다. 천 번도 넘게 홀로 걸었을 이 길을 오늘은 딸이 따라나선 것이다.    


다가서면 손을 잡을 수 있는,

자기보다 작은 포유류만 귀엽다며 모든 곤충류는, 나비가 무섭다며 호들갑을 떠는 딸이 가까이 서 있다.    


산다는 게,

대부분 흐르는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바삐 살아가게  되지만 어느 순간 뻔히 보이는, 흐르는 시간에 가슴 아파 힘겨워지는 경우가 있다.    


웃으며 딸 옆으로 다가가 걸음을 함께 하지만 가슴으론 안쓰러움이 가득 밀려들었다. 미루고 미루었지만 시월로 들어 서면 이 딸은 더 이상 내 곁에 머물러있지 않는 것이다. 목표를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노력해 오던 딸이 다음 단계로 들어서기 위해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 어미로서 해주지 못한 것들이, 부족했던 것들에 대해 마음이 아파진다. 지원한 몇 개의 대학에 낙방하며 대행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는 사람들은 편하겠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던 딸에게, 빈자인 어미는 겨우 기도하듯 간절한 마음과 달달한 것으로 입맛을 채워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딸은 원하던 곳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 몇 분의 교수에겐 자신의 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을 받게도 되었다.    


가끔 지식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 생각을 하게 된다. 현명한 판단이나 분별력을 갖게 되면 보다 나은 삶을 보장받기는 하겠지만 행복한 마음마저 보장받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을 하게도 된다. 그러면서도 매일매일이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니 또한 그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삶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새소리마저 집어삼킨, 온 숲을 가득 채운 매미의 울음소리가 유년의 뜰로 생각을 이끌고 들어간다.


지금쯤이면 뼈대만 겨우 유지했을 고향집은, 덜렁거리는 낡은 문짝과 들쑥날쑥 제멋대로 자란 들풀이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했을 것이다. 삭아 닳아진 쪽마루에 가만히 엉덩이를 걸쳐 앉히듯 생각을 얹는다.    


대략 7 킬로미터의 거리, 연습이 되어 걸음이 가볍던 엄마와 달리 딸은 힘겨워했다. 가야 할 곳도 낯설어 그만큼 힘이 들 텐데, 걱정이다.    


여름이면 문 열린 방으로 날아 들어와 펼쳐진 모기장에 자리를 잡았던 풀벌레처럼, 상상만으로 접어두었던 내 유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무난하게, 무난하게 살기를 바라는 조모의 바람이 내 것이 되었으리라.   


뒤돌아보니, 그만하면 완만했지 싶었다. 낮은 둔덕에도 얕은 골에도 휘청거리며 살아온 날들이지만, 그랬기에 더한 욕심은 내지 않으며 살아온 날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이니 곁에 두고 싶다고 딸이 꿈꾸는 세상을 막을 순 없다.    


고향집 벽에 걸린 고장 난 시계처럼 오래된 생각,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또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인생길도 숲길을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인데, 부디 딸의 인생길은 봄꽃 구경 가듯 기쁜 마음으로 걸어가는 아름다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단 욕심을 품게 된다.    


매미의 울음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생 대부분을 땅속에서 살다 겨우 탈피해 알을 낳고, 이 여름 생을 마감하게 되어 저리 간절하게 울어대는 것인지? 아님 세상모르고 살던 어미처럼 새끼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저리 울어대는 것인지, 통 짐작이 되지 않는다.    


쪽마루에 누워 뭉게구름으로 그리운 모습들을 그리던 날들이 있었다.


몇 년 후,

오늘도 여전히 그리운 날이 되어 그리게 될 것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했다는 것일 테니 너무 힘겨워 말자며 스스로를 달래 본다.


더위가 수그러들듯 걱정도 수그러 들것이고, 더 좋은 날들을 위해 오늘을 곱게 포장해 마음의 방에 곱게 넣어두어야 겠다.


남은 시간,  

더 많은 날들을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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