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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Aug 24. 2021

드라마 ‘슬기로운의사생활’을 보다

    

널브러진 자세를 바로잡아 앉는다. 차 한잔이 마시고 싶어서다. 딱 좋을 정도의 온기, 그 온기만큼 웃음이 피어올랐다. 은연중 차 한잔을 마시며 그 온기의 여운을 그리 잡아 두고 싶었을 것이다.     


딸과 요가 수업을 받고 돌아와 지친 몸을 소파에 던져 묻고 여느 때처럼 티브이를 켰다. 참 뻣뻣해도 이리 뻣뻣할까 싶은, 이젠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구나 싶은 여러 생각에 서글퍼지던 것도 잠시, 어느새 드라마에 빠져들어 가만히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잔잔한 물결처럼 너울대는 따스함이,

초록빛 숨결을 불어넣어 시든 풀잎처럼 주저앉은 나를 일어서게 하였다.   

 

딱 그만큼의 온도로 가식적이지 않은, 마음을 데우며 자연스레 솟아나는 미소!

문득 삶이란 이런 순간들을 만나기 위한 긴 여정이 아니었을까 싶어 졌다.   

 

살아오는 날들 중에 얼마나 많은 날에 이런 웃음을 지으며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20년 지기인 다섯 명의 의사를 중심으로 종합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들의 삶과 엮어 가며 펼쳐 내고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내 얘기일 수 있고, 그러나 내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대비 삼아 눈여겨보게 되는, 언젠가는 내게도 닥칠지 모르는 일이기에 한 번쯤 마음 다져놓기에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우리의 얘기다.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세계가 펼쳐지는 세상 속에서, 좀 근사한 내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의 삶과 현실의 나를 비교하며 때론 절망감으로, 가끔은 다행이다 싶으며 이상의 내가 되고자 꿈꾸던 세월이었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철없는 마음은 아직도 젊은 날에 머무르려 하는데, 웃음이 늘었다.   

 

제 주장을 고집하며 떼쓰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어린 연인의 서투름과 부딪쳤을 때, 투닥거리는 젊은 부부에게서 짙은 사랑이 느껴질 때,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쉽게도 그런 웃음을, 이젠 집에 들어앉아 티브이란 매체를 통해 만나고 있다.


해진 옷을 걸치고 아무 때고 찾아가도 커피 한 잔을 내미는 내 이웃이 사라져 가며, 그때부터 그랬을까?    


고만 고만한 살림을 내 보여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이웃의 자리를, 이젠 턱허니 티브이가 차지해 버렸다.

    

부산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웃집으로 들어서듯 티브이 앞에 앉는다.


허례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편안한 차림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려도 내 새 이웃은 불평이 없다.    


그러다 이웃과의 수다처럼 따뜻하게 풀어가는 허구에, 진심을 담아 훈수를 두기도, 뜻하지 않게 소중한 진리를 지각하게도 되었다.   

 

결국 사람 사는 게 똑같지 하는 보편성에 진하게 공감하며 이웃의 조언처럼 내 삶에 위로의 말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생과 사의 문제를 따뜻하게 풀어가며 늘 지나치듯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누구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시간이 찾아올 수 있음을 찬찬히. 보여주며 살며시 웃음을 짓게 만들고 있다.


그런 순간 삶이 아름답다는, 살며시 스치는 생각을 차 한잔에 담아, 그 따스함을 더 오래 가슴에 묻어두고 싶어진다.    


살아온 날이 많아 좋은 것 중 하나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웃음이 늘어난다는 것이구나 한다.    


젊은 날이고 그 무엇이고 절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애닮던 것들도 자연스레 사그라들어 사소한 것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를 하게 된다.


남은 날들은 어떠한 것들이 가슴을 데우며 그렇게 미소 짓게 할까?    


또 한 해의 여름이 지나고 있다. 뉴스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고독사, 사회적 타살, 무명 씨의 죽음 등 어두운 타인의 삶을 전해온다. 그들도 한때는 이렇게 따뜻하게 웃고 살아간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들만 기억하며 떠났기를 기도하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것에 마음이 쓰리다.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가끔은 비교대상과 힘겨루기를 하며 휘둘리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모습이 시멘트 보도블록 사이로 자란 풀 한 포기와 마주하는 것처럼 웃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쿠리에 담아 둔 태양의 조각처럼 감출 수 없는 웃음, 사실 작고 사소하다. 그 사소함을 통해 웃고 사는 날들이 쭉 이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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