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의 첫 획처럼 어둡고 두텁게 또는 종잡을 수 없지만 그제야 숨이 트이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오후 일곱 시쯤이 그런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어찌 되었든 복작거리던 낮은 저물고 낡은 스웨터의 실을 풀어헤치듯 사나움도 다 빠진, 앓이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힘들었던 하루를 어떻게든 풀어내려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하려 하기도, 없던 날개도 펼쳐 최대한 빠르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기도 한, 그도 저도 아닌 사람에겐 외로움의 시간이 되겠지요.
명절 연휴 전이라 모두가 서둘러 퇴근한 빈 사무실에서 보던 시집을 다 읽고, 지독한 시인의 사랑 때문에 숨 가빴던 지난 며칠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아 써걱거리며 가슴으로 들고나는 바람문을 닫아걸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 보내야 할 우편물을 집어 듭니다.
이십여 년을 그렇게 기억되던 자리, 문방구 옆으로 가면 언제나 묵묵히 서 있어 보내야 할 우편물들을 집어삼켜주던 빨간 우체통이 보이지 않습니다. 멍하니, 무언가 잃어버린 것은 분명한데 허탈함은 엄살 한 번 부리려 하지 않네요.
웬걸,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가 어쩔 줄 몰라 선택하는 길이 직선이듯, 길을 이어갑니다
지나는 길에 마주친, 낮은 담 넘어 반평도 되지 않는 빈터에 널린 몇 벌의 빨래가 히죽 웃습니다. 꽤 늦은 시간이 되어야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케 하지만, 명절을 맞이해 고향으로 가는 기차 시간에 늦어 잊힌 빨래였음 해 지네요.
삼키려다 목에 걸린 알약 같은 골목길입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지난 시간은 미화되어 미움은 잊히고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다지요. 가난해도 참 행복했던, 다 지난 시절이 거기 있네요.
주체 못 할 여유가 뒷짐 진 노인처럼 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기웃기웃하는 비닐장판에 쌓인 평상도, 담 넘는 꽃향기도 정겹습니다. 어디든 모여들어 사람 속에 스며들 수 있겠지만 어째 여럿의 불편함보다 점 점 홀로의 이런 시간이 익숙하고 편안해집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자주 찾는 헌책방에서의 커피 한 잔에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겠네요. 노란 조명 불빛 아래 작은 탁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왜 그리 행복한지,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 떠난 빈센트 반 고흐가 생각날 때도 이 시간입니다. 압생트의 중독 때문에 그러하다지만 그의 노란색에만 들어있는 슬프도록 푸른빛은 꼭 이때 마시는 커피의 맛과 같을 거라 상상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도 따사로움이 그리워 노란색을 좋아하지만 또 불편함은 거북했던 사람인가 봅니다.
헌책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마음이 닿았던 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는 사람과 커피 한 잔 마시는 착각이 들기도 하지요. 오늘은 책의 첫 장에 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