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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an 30. 2022

안부를 묻습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또 한 번의 설날을 결국, 맞이하고 마네요. 곧 끝나겠지 싶었던 코로나가 계속해 새로운 변이로 저리 심술을 부리고 있으니 달려가고픈 그리운 고향도, 자식 잘 먹는 모습만으로도 배가 불러 좋아하는 음식을 한가득 장만해 놓고 기다리실 부모님도 마음 편치 않은, 겨울 찬바람만큼이나 춥게 다가온 명절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삼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무심히 지나쳤던 말들이 피부 깊숙이 파고듭니다. 그러니 그 무엇보다 건강하게 버텨 맘껏 보듬을 수 있는 날을, 소중한 사람들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들 건강 잘 챙기고 계신가요?    


저는 한 해의 농사를 짓기 전, 외양간에 놓여 쑤어주는 쇠죽이나 먹고 늘어졌던 황소처럼 정말 게으르고 편안하게, 푸근했던 일월을 보냈네요. 그런 와중에 올해는 어떤 농사를 지어볼까 정리도 해보았습니다. 일상은 최대한 더 단순하게, 그동안은 도구로 쓰임이 더 많았던 나를, 나로서 더 쓰임이 많은 한 해를 보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동안 한번 해보고 싶다 생각만 했던 것들을,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두었던 것들을 해볼까 해, 글쓰기 수업 듣기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생각으로만 담아 두었던, 한 번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으시겠지요?”     


첫 수업에서 많이도 깨졌습니다. 독자 시선이나 이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며 지나치게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다고, 객관적이고 냉정함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훈계를 들었지요. 그래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일기처럼 푸념을 늘어놓던(노모가 부르는 서툰 아리랑 같다 스스로 생각되던) 글들이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찾게 되었고, 그 계기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 더 숙성될 수 있다면 보다 기쁜 일이 없겠지요.  

   

강물이 의미를 두고 흐르지 않아도 바다로 가듯이 모두의 하루하루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결국,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흐르는 동안 맑은 물로 흘러갔으면 하는 욕심이 나네요. 신체적 수명은 길어졌지만 건강한 수명은 더 짧아졌다는 통계가 있네요. 설 연휴, 건강 챙기시고 따스하게 보내시기를요.    

첫 과제 :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    


잠시 생각을 잃는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창밖에 잿가루가 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순간, 쌓이는 눈에 세상이 덮여 모든 것이 멈춰 서는 듯 보였다. 겨울로 접어들어 몇 번의 눈이 내렸다 하지만 대부분 집에 들어앉아 밖을 내다보지 않았으니 정작, 이리 쏟아지는 눈을 직접 대하기는 처음인 것이다.   

    

‘얼마나 될까, 이런 함박눈을 만날 수 있는 겨울날은?’

문득, 의아해진다.        


겨울로 들어서면서부터 맘속으론 이렇게 하얗게, 하얗게 눈 쏟아지는 날을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막상 눈이 내린다는 소식엔, 오랜 시간 그리워하며 애태우던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처럼 은연중 마주하기를 피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살다 보니 그런 함박눈처럼 마음 복잡해지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사는 날에 가장 슬픈 기억은? “        


가만히 내 마음속 우물 안을 들여다본다. 일렁임도 가라앉아 이젠 개 흙밭이 돼버린 마음 바닥을 다시 뒤집어 흙탕물을 출렁이게 하는 일은, 한동안 혼탁한 감정을 처리 못 해 만성적 염증을 치료하듯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높은 산을 오르거나 큰 바다에 다다른 적이 없다. 그러니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진 인생을 살지 않아도,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사고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완만한 산길을 걸어가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툭툭 발로 차며 지나치면 되는, 그런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높은 산을 오르거나 큰 바다에 다다른 사람만큼이나 나에게도 힘겹고 아팠던, 치유되지 않는 상처 하나가 아직 남아있었다.      

  

언제나 이성적인 대응과 감성적인 반응은 달랐다. 생각으론 그럴 수 있다 이해되는 일도 마음은 왈칵 눈물부터 쏟아내고 활화산처럼 들끓다 터져버리고 마는, 그런 일이다.       


가장 기쁜 날이 가장 슬픈 날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날만큼 투명하게 맑고 아름다운 날을 여즉 만나보지 못한 것을 보면, 아니 장담컨대 그런 날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유년의 어느 날이고 여느 집처럼 부모와 밥상을 마주하는 풍경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와 지금은 입맛이 없어 한 끼쯤 굶어도 좋은 그 밥 끼를 위해 엄마는 밤낮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가난에 지쳐버리고만 엄마는, 습관처럼 내뱉던 웬수 같은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났고 남은 아이들은 조모의 손에 엄마를 대신해 키워졌다.        


식탐으로 남은 허기는 보다 큰 문제를 낳았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애정의 결핍이다. 보상을 받고자 가난해도 가정을 소중히 여길 사람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 봄날, 세상에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완벽한 나만의 것, 딸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가장 기쁜 날, 가장 그늘진 슬픔에 빠졌다. 다양한 사람들이 들고나는 산모들의 병실에서 그 들고 나는 마른 풀잎 같은 사람들 때문에 가장 큰 상처에 베인 것이다. 없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에 큰 문제를 삼지 않았던 삶이었지만 병실을 드나드는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 타 산모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나를 진한 외로움으로 둘둘 말아 구석으로 밀쳐두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한껏 멋을 내고 제 잘난 맛에 사람을 내리깔고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행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만들었지만, 친정엄마라서 가능한, 손주보다 내 새끼가 우선이라며 대자 정종병에 들기름을 하나 가득 짜 담아와 산모의 미역국에 넘치도록 부어주었던 노모나 시급하다는 농사일을 제쳐두고 역사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을 만한 한복을 차려입고 달려온 피부 빛 까맣게 타들었던 친정엄마의 걱정 가득한 눈빛은, 정말 가져보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아마 그 외로움을 알게 된 그날이 내겐 가장 슬픈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림자도 없는 응달에 쌓인 눈은, 한동안 볕이 들어 그 온기에 스스로 녹아내리기 전까지 순백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로는 벌써 녹은 눈으로 질퍽거리고 있었다. 쌓인 눈에 감탄사를 뱉어내기도 전에 모든 불안 거리를 해치우려는 듯 사정없이 뿌린 염화칼슘에 제 모습을 뺏기고 만 것이다.    


그림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빛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거였다. 뿌려지는 염화칼슘 같은 세상사에 만들어지는 그림자라면 이왕,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은 정오쯤의 시간에 내가 머물렀으면 싶었다. 그럼에도 때론 그 짧은 그림자의 색도가 지나치게 선명해 몹시 따갑고 힘겨웠다.        


주변인들이 가끔, 양가의 부모들이 보낸 촌스러움에 귀찮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언제고 그 시골스러움이 제일 부럽다는 대답이다. 흔히들 지나치게 익숙한 것에서 빛나는 것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갖은것 중에서도 분명 그러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중 자주 듣는 말이 홀가분이란 말이다.     

 

‘남들은 알까? 북적거리지 못해 가장 슬픈 사람도 있다는 것을’,    


좀 더 나에게 집중을 해야겠다. 오래오래 건강해서 사랑하는 나의 딸에겐  몇 배의 친정엄마 노릇을 하고 말 것이다.       


건조했던 날씨만큼이나

마른 감정에도 습기가 스며들었다.

너 없는 그리움의 나날

너와 함께 한 식당에서 콩국수를 사 먹고

그 거리를 홀로 걷다 미장원에 들러

댕강

그리움을 잘라냈다        


기껏 만사천 원이면 되는 것을

그리움을 그리 길게 늘였나 보다      

남보다 잘 자라지 않는 머리카락처럼

그리움도 천천히 자라났으면,

남모르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처럼

잊고 사는 것도 익숙해졌으면 한다    


어느 봄날

너는 내게 그렇게 왔었지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하는 봄처럼

그 꽃들 속에 묻혀 웃음꽃으로 나를 피어나게 해 준

소중한 나의 딸       

너는 나의 아픔을 먹고 자란 눈물 꽃

너는 나의 기대를 품고 자라는 희망의 꽃

너는 세상을 위해 피어날 빛의 꽃이다       


그런 위안으로 집으로 돌아와 바라본 거울 속엔

평생 아버지를 닮았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미웠던 울 엄마 들어앉아있다

아빠를 닮은 너도

내 나이가 되면 너의 얼굴에 엄마가 숨어들어 있을까?    

시장에 들러 구경삼아 수박 한 덩이 사고 돌아와도 한 시간의 거리를

단 한 번 찾아오지 않았던 울 엄마

씨 다른 여동생 돈만을 사랑하기에도 바빠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먼 친척보다 낫다고

인사 삼아 물어주는 이웃의 머리 자른 이유

그제야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내기 시작한다    

자질구레한 모든 이유를 불러 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 일들처럼

세상사 다 그랬을 것이다    


눈 내리던 날

댕강 그리움을 잘라내고

잘 자라지 않는 머리카락처럼

그리움도 천천히 익숙해졌으면,

그랬으면 하고

거울 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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