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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Feb 06. 2022

여백

  빈틈을 보이지 않던 도시의 풍경이 여백을 드러냈다. 밤사이 내린 눈은 방치된 살림살이(제각기 사연을 갖고 있어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가 차지했던 지붕들을 흰 눈으로 덧입히고도 모자라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보이는 길마다 하얗게 덧칠을 해놓은 것이다. 사층에서 바라보는 그 도시의 여백이 사람을 한층 더 여유롭게 만들고 있었다. 문득, 마음도 세월이 쌓이면 어느 날 저렇게 여백을 드러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졌다.    


  모처럼 하얗게 변한 세상 때문일까? 마음이 일렁였다. 잠든 바람 대신 어디로든 불어 가는 바람이 되고 싶은 심정을, 때마침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미적거리고 있던 일이 기다렸다는 듯 떠올렸다.

  화계사로 향하는 길은 앞선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어야 하는 눈 쌓인 산길이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눈 덮인 고요한 숲 속에 들어서고 싶어 걷기를 택한 것이다. 마른 풀섭에 눈이 쌓여 그러할까? 수다스럽게 날아다녔을 참새들도 모습을 감춰 보이지 않았다.

  살금살금 걸어가 발돋움을 하고 쭉 뻗은 손이 닿을락 말락 한, 그러다 운 좋게 뻗은 손 끝에 쏟아진 바구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깨물어 먹으면, 그런 맛일까? 불현듯, 누군가 던져 깨어놓은 연탄재를 밟아가며 오르던 그 언덕 윗 자락 단칸방에 살았던 젊은 날의 추억이 눈 덮인 날의 아침처럼 포근히 깨어났다.    

  그를 만난 건 노량진에 있는 어느 학원에 근무할 때였다. 처음부터 그와 인연을 맺을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좋아한다 고백해오는 동료와 함께한 자리에 그가 합석을 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시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나를 좋아한다는 친구보다 털털해 보이는 그에게 신뢰가 가는 건 평생 집안을 등한시한 아버지에게 받은 반감이 나도 모르게 작용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보통 누구나 그렇게 얘기를 하듯 지금에서야 그리 생각되는, 모자람 만큼이나 용감하게 살아내던 때도 그 젊은 날이었고 투닥거려도 가장 아름답고 달콤했던 순간이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펜데믹 시대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들어서기에 앞서 먼저 체온을 체크해 허락을 받아내야 했다. 절도 예외를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체온의 이상 유무보다 제 모습을 잃어가며 확장공사를 멈추지 않는, 거대해져 가는 절의 모습이 코로나 감염만큼이나 두려움으로 밀려드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찰나에 떠오르는 생각이 오만가지라 했던가? 산책 삼아 절을 찾은 가족의 모습이 생각을 부추겼다. 그를 닮은 첫 딸을 낳았다. 부른 배를 보고 주변인들은 딸 같다 예측을 했지만 속으론 아들일 거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결국 아들 같은 딸을 낳았다. 그 딸은 약했던 엄마의 비위를 똥 기저귀를 갈아 치우면서 밥을 삼켜도 멀쩡히 웃음을 쏟아놓게 만들었고, 삼 년 터울로 얻은 아들은 기저귀를 가는 순간 벌린 입속으로 분수처럼 오줌을 쏘아 올려 아들임을 분명하게 증명하였으나 딸같이 고운 아들로 성장을 하였다.    


  얼마 전, 사는 날에 가장 행복한 기억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받았다. 가장 슬픈 기억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이어진 물음이었다. 이상하게도 가장 슬픈 기억은 이거다 하며 곧 하나를 뽑을 수 있었는데 행복한 순간은 슬픔과 달리 하나를 꼭 집어낼 수가 없었다. 렘브란트의 많은 자화상처럼 행복한 순간은 매 순간, 상황을 바꿔가며 그보다 더한 순간은 없을 것처럼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눈 쌓인 숲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 바람이 불어도, 꽃이 피어도, 매 순간 행복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좀 더 실존적인 행복을 찾으라면 엄마의 조바심을 내려놓아도 좋은 요즘처럼 가볍게 행복한 날은 없을 것이다. 여리던 자식들이 성장해 단단히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웃음 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더하여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를 남발해도 좋은 고양이 한 마리가 곁을 지켜주니 더 바랄 것 없는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물론 달리 마음을 먹으면 걷기 힘든 눈길에 먹이를 챙기고 똥을 치워줘야 하는 고양이에 귀찮은 집안일들은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쭈뼛거리며 종무소로 들어선다. 딱히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입춘기도를 접수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동반하는 어색함과 매사 고개를 들고 보는 삐닥거림으로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어느새 내가 수그러들고 있었다. 코로나도 살아남기 위해 변종을 만들어가는 판에 나라고 변하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어이없는 비유에 웃음이 도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듯 행복에 대한 믿음도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감사한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진리를 터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앞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내게도 눈처럼 쌓여 조금씩 허물을 덮고 마음의 여백을 드러내 주지 않을까 싶어 진다. 그 여백이 어떤 화염으로든 녹지 않는 눈밭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면이야 어떻든 눈 덮인 세상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여백 널널한 마음 밭에 다다르기를 기다리며 아름다운 날들로 살아낼 희망을 놓치지 않고 꼭 끌어안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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