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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ug 08. 2022

커다란 기쁨

나는 왜 쓰는가...?

차일드 해썸(Childe Hassam)이 그린 세실 댁스터, 정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와 함께. 





커다란 기쁨 


by 파블로 네루다


내가 과거에 탐구했던 그림자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돛대의 항구적인 기쁨이 있다, 

숲의 유산, 길가의 바람

그리고 대지의 빛 아래서 결의했던 어느 날의 기쁨이.


나는 다른 책들이 나를 투옥하도록 쓰는 것도

피에 굶주린 백합꽃의 견습생들을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쓴다, 물과 달을, 변치 않는 질서의

요소들을, 학교를, 빵과 포도주를, 

기타와 연장을 필요로 하는 소박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


나는 민중을 위해 쓴다, 설령 그들의

투박한 눈이 나의 시를 읽을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 내 시의 한 구절이, 내 삶을 휘저었던 대기가,

그들의 귓가에 닿을 날이 오리라,

그러면 농부들은 눈을 들 것이다,

광부는 웃음 띤 얼굴로 바위를 깨고, 

제동수는 이마의 땀을 닦고, 

어부는 팔딱거리며 그의 손을 불태우는 물고기의

반짝거림을 더욱 선명하게 보게 될 것이고, 

갓 씻은 깨끗한 몸에 비누 향기 가득한 

기계공은 나의 시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말할 것이다, "그는 동지였다"고.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것이 내가 바라는 월계관이다.


공장이나 탄광을 나설 때 나의 시가

대지에, 대기에, 학대받은 사람의 승리에

들러붙었으면 좋겠다.

내가 쇳덩이로 천천히 빚어낸

견고함 속에서 한 젊은이가 상자를 열듯

그것을 열었을 때, 삶을 마주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폭풍우 몰아치는 산정에 영혼을 찔러 넣을 때

내게 기쁨을 준 그 돌풍을 만졌으면 좋겠다.



파블로 네루다. 

그는 후안이라는 대지에서 빵 만드는 이와, 그의 아내, 

그가 반죽하는 밀가루와 아직 가루가 되기도 전의 밀에게도 평화를 빈다. 

시도 음악도 글도, 모두 삶을 더 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 

그것이 가장 큰 월계관임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에 누릴 수 있는 영광임을. 


나는 요즘. 밤 폭우 속에 비상등을 켠 앞 차를 따라가듯, 

그렇게, 겨우 겨우 몇 걸음 씩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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