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말했습니다.
<알쓸신잡>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땐, 늘 놀라게 됩니다.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을 두고도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니요! 그리고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는 대화의 희열에 빠져들게 됩니다.
무대 위 네 명의 현악기 연주자가 주고받는 현악사중주를 들은 괴테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현악사중주는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와 같다."
바이올린 둘, 비올라, 첼로로 현악사중주가 구성됩니다.
고음의 선율을 맡는 제1바이올린이 리더격, 보통 첼로가 저음을 맡고,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내성(inner voice)를 채우는 역할을 해요. 지금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현악사중주를 객석에서 듣곤 하지만, 사실 현악사중주 초기에는 직접 연주하며 재미를 느끼는 장르였어요. 그러니까 전문 연주자가 아니어도 연주하며 즐기는, 쉽고 간단한 장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종종, 19세기에 만들어진 앤틱 보면대 중에는, 현악사중주 연주를 위해, 하나의 기둥에 동서남북 사면으로 악보를 놓는 곳이 마주보고 있는. 일명 현악사중주용 보면대가 보이기도 합니다.
하이든을 거쳐 정식 연주장르로 자리 잡은 현악사중주, 베토벤을 거치며 무척 진지하고, 학구적이며, 그래서 다소 딱딱한 장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지요. 현악사중주와 친해지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길은, 연주를 직접 본다는 겁니다. 그러면 복잡, 어려움, 그 모든 선입견을 떠나, 누구와 누가 대화하거나 싸우고, 주고받고, 편들고 맞장구치는지, 알 수 있게 될 거예요.
아, 그리고... 무척 아름다운 현악사중주 작품을 마음 한켠에 들여놓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1876년 12월, 톨스토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한 뒤 ‘러시아의 호메로스’로 칭송받던 이 위대한 작가를 환영하고자,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는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1번이 연주되었어요.
늘 초연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던 차이콥스키였지만, 이곡은 첫 연주에서부터 좋은 반응을 얻던 곡이었으니, 작곡가로서는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곡을 내놓은 셈이었지요.
산뜻하고 밝은 1악장을 지나, 느리고 고요한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연주되던 때, 톨스토이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차이콥스키 앞으로 톨스토이의 편지가 도착했는데요,
“그저 듣기만 해서 미안했습니다.
그 날은, 근래 내가 모스크바에 머물렀던 시간 중,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군요.
나는 내가 평생 쓴 글에 대해서, 그 날 그 곡보다 더 아름다운 보답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작곡가 차이콥스키에게는 더없는 격려였을 겁니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어요.
“내 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거장을 보다니,
그 때만큼 기쁘고 작곡가로서 자랑스러웠던 일은 아마 내 생애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를 감격시킨,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1번은,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악 오케스트라의 풍성하고 포근한 음색으로 연주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지휘자 한스 폰 뵐로우가 이 곡을 피아노 편곡으로 연주해 큰 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Tchaikovsky, 현악사중주 1번 D장조 Op. 11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느리게, 노래하듯이)
작가 톨스토이를 감격시킨 이 곡은,
오늘 우리에게, 지나온 날에 대한 보람으로,
살아갈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응원으로,
다가올 겨울을 이길 따스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