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사랑,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사랑과 철학

by 잰이

"사랑한다." 이 말에 대응하는 세계의 사태는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쓰던 시기에 이런 말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세계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책상과 같은 사물은 세계의 구성요소로서 존재한다. 반면에 사랑은 사물처럼 세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사랑과 같은 것이 "無"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오히려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문학가와 그들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비엔나 학파의 검증주의자들과 대립한 일화는 유명하다. 검증주의자는 사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은 인식의 차원에서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라는 글귀를 보고 그가 자신들의 편이라 여겼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들의 모임에 가서 시를 읽었다. 그들이 가치 없다 말하는 그런 시를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을 알아가는 길은 실천과 체험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미 부모님과, 연인과, 스승과, 친구와 많은 사랑을 나눠왔다. 그러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나라는 개별자에게 주어진 그 사랑일 테니까.


나는 논리철학논고에서 쓰인 비트겐슈타인의 부정에도, 사랑을 포함한 수많은 글귀와 말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한 말들은 정말로 세계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의미는 마치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표지판과 같은 상징체로서 의미만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뜻이 왜곡됨을 감수하고도 그 길로 안내하기 위한 인도자의 애틋한 바람과 같다. 그러한 마음까지도 사랑일터이니, 나는 사랑에 대한 말들을 듣고 들여다본다. 그 과정에서 본래 사랑의 의미에 닿는 데에 끝없이 미끄러져 방황하게 될지라도, 그것을 감수하며 사랑을 알아가는 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이자 태도이다.


오늘의 사랑에 대한 단상은 이렇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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