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철학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닿지 못한다는 것의 의미를 보다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일은 상호 간의 사랑에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마음은 무의식에서 스스로에게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신은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그 깊이는 마치 심연과 같다. 사랑이라는 왠지 끌리고, 또 아파서 생각하게 되는 이 감정은 신화 속의 사이렌 같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감정을 깊이 생각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에 푹 빠지다 못해 깊이 가라앉은 채로 잠기게 된다. 온 몸이 사랑의 감정에 잠식된 이후에는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누구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감정에 잠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괴로움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잠기고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있다면 한번 잘 생각해보자. 당신의 매료, 괴로움, 그리움, 비통과 같이 추상적인 이 감정이 묘하게만 느껴질 뿐, 그 마음과 감정이 정의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것은 아닌가? 그 모호함을 정의하고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이라는 언어를 가져다 붙인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 속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의식이라는 기저에서 애매하고 알 수 없는 상태로 끊임없이 소용돌이 칠 뿐이다.
그러한 마음을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내뱉거나, 심지어 독백으로 읊조린다고 해도 그 마음 속의 의미가 이 표현에 달라붙지 않는다. 라캉은 이렇게 우리의 언어와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의 결합이 결코 단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생각에 연장선에서 지금 사랑을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상호 간의 사랑은 사랑한다고 내뱉은 말과 그에 대한 사랑한다는 표현이 쉬이 오간다. 그럼으로 자신의 사랑을 깊이 파헤치지 않아도 사랑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전하지 못하거나 내뱉지 못한 사랑은 다시금 내부에서 곱씹지 않는 이상 그 사랑은 확인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곱씹음이 반복될 수록 나의 무의식 깊이 자리한 사랑을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기저에서 소용돌이 치는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어로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제한된 사유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이는 재앙과 같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매몰된 채로 그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심지어 헤어 나오기도 어려운 곳까지 몸을 담궜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생각 자체를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이러한 무의식에서 소용돌이 치는 사랑은 나도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한 채로 내뱉어진다. 어쩌면 내가 내뱉는 말은 우리의 사랑을 쉬이 확인하기 위한 단순한 표현일 뿐일 수도 있겠다. 그 복잡함을 고민하는 진짜 사랑한다는 말은 머리에서 맴돌고 있을 뿐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무거운 의미의 사랑과 그 안에 담긴 내 복잡한 속내는 여전히 나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우리의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미끄러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 알아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신화를 품고 살기 쉽다. 의사소통이라는 마음과 생각이 막힘없이 전달된다는 표현만 봐도, 우리에게 대화는 그 의도와 뜻을 전달하고 이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실한 마음은 상대에게 닿지도 자신에게 떠오르지도 않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알고자 깊이 들여다 보는 것도 많은 심력과 주의를 요구한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찬찬히 그 속을 들여다볼 힘을 길러내며, 계속해서 나의 내면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수많은 자책과 괴로움까지 받아들이면서 사랑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