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따진다는 것은 집합에서 공통점을 추출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인간의 본질을 따진다고 해보자. 인간이라는 종에 해당하는 대상들로부터 공통점을 추출한다. 인간에게는 선의지가 있다든지, 인간에게는 공통된 진화과정이 있다든지,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예시가 된다.
그것들은 다시 그런 고유하고 희소한 속성에 걸맞게 좋은 가치가 부여된다. 선의지는 그 자체로 선하다든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두뇌를 중심으로 독특한 신경계 구조가 나타났다든지, 인간의 사회적 능력은 언어와 믿음체계라는 다른 종과 구별되는 우월한 특징이 있다는 말들이 그렇다.
사랑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 또한 그렇다. 다른 종류의 감정들과 구분되는 사랑들 사이의 공통점, 그리고 그 공통점이 얼마 큼이나 특별한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 눈에 사랑을 그렇게 본질을 찾아 규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패하는 길처럼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저마다의 사랑은 유사하지만 너무나 다양해서 그 공통점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사랑의 대표 격인 아가페나 에로스, 우정 이 세 가지의 사랑만 봐도 그렇다. 이를 깊이 생각해서 각각의 우정이나 연인들 사이의 사랑을 따지면, 아무리 비슷해도 같은 사랑은 없다.
이 다양한 것들을 하나의 사랑이라는 범주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은 유사성을 갖기 때문이다. 마치 한 가족이 서로를 닮을 수는 있지만 모두가 같다고는 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 정도의 유사성을 가지고 약간은 촘촘하지 않은 관계들로 엮어 있는 것이 저마다의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든 싫든 어떠한 사랑의 관계에 속해있으면서도, 추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는 다 알거나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저 다양한 방식의 사랑을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훑어보거나,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들어 이해해 볼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우리는 어떠한 방식이든 사랑과 엮이는 삶을 살기에 사랑이라는 말을 내뱉고 거칠게라도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을 터이다.
사랑의 이러한 성질은 본질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필연적인 한계를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삶과 체험으로서 저마다의 이해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저 언어로는 다른 세계의 대상처럼 다룰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변양으로서 사랑의 끝이 그저 개별화되고 수많은 파편들로 귀결되는지, 혹은 프랙털처럼 세분화되는 과정에도 질서가 생기는지는 난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알 수 있고, 또 필요한 건 본질 없는 사랑이 여전히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