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이상하리만큼 편했다.
편안함은 아니었고, 그냥 편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말이 술술 나왔고, 경계는 손쉽게 무너졌다.
그는 금세 내 안에 들어왔다.
그 누구와도 느껴보지 못한 가까움이었다.
연인이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부모 같았다.
그는 나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가르치려 했다.
그의 말투는 강압적이었고, 시선은 날카로웠다.
나는 그저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 여겼다.
“지옥에서 온 구원자”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했다.
그의 지적은 조언으로,
그의 통제는 걱정으로 바꾸어 받아들였다.
기분은 자주 상했지만, 마음은 자꾸 그를 감쌌다.
그 사람은 그냥 나를 아껴서 그런 거라고,
나는 자꾸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나 혼자만의 해석이었다.
그는 이미 그의 진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고,
나는 애써 눈을 감고 있었던 것뿐이다.
결국 그는 선을 넘었다.
폭언을 시작으로, 폭행이 이어졌고,
통제는 더욱 교묘해졌다.
내 친정과 관련된 물건들은 쓰레기 취급을 당했고,
아이마저 도구로 삼았다.
나는 점점 무너졌다.
억울했고, 화가 났고, 두려웠다.
매일이 울분이었고, 불안으로 숨이 막혔다.
그가 너무 싫었다.
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놀랍게도 그는 그걸 아는 듯 보였다.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걸
그는 알고 있었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무력해질 것 같았다.
빠져나올 힘조차 잃을까 봐, 두려웠다.
나는 살아야 했다.
아이도 있고, 가족도 있다.
내 인생에서 그 사람만 지우면, 어떻게든 살 것 같았다.
괴롭고 힘든 나날 속에서도
좋은 순간은 있었다.
어제는 지옥이었지만, 오늘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웃었고,
아이와 셋이 함께하는 순간에 평온하고 따뜻하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서 안정감과 든든함,
때로는 행복도 느꼈다.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안정감이 아니라, 잠깐의 안도감 정도 였다.
'오늘만 같으면 어떻게든 살겠다.'
그럼에도 아직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폭력적인 성향만 없었다면,
우리는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미움도, 안정감도, 아쉬움도 모두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그 어떤 감정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쉬움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사람의 끝을 직면했지만, 그 사이의 공간에서 놓지 못한 감정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울림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