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온 후, 나는 집 근처 모텔에서 사흘을 보냈다.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돌아가면 같은 삶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눈에 밟혀 쉽게 그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수입을 만들지 였다. 하지만 막막했다. 결혼 전까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 적이 없었고, 내세울 만한 경력도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
이게 현실이었다. 내가 이렇게 불안정하니, 남편도 내가 떠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아이까지 책임져야 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내가 데려오는 게 맞을까?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어떤 선택이 아이에게 최선일까?
남편의 환경은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경제적 능력도 있었고,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 덕분에 출퇴근이 자유로웠다. 시부모님도 일을 하지 않아 보조 양육자로 나설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남편이 키우는 것이 안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남편의 나르시시스트적인 성향은 아이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는 타인을 통제하려 들고, 분노를 참지 못하며,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상황을 자기 뜻대로 바꾸려는 사람이다.
혹시라도 남편이 아이에게 나에게 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도(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는 아마 1~2년 내에 다시 결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혼 생활에서도 갈등과 폭력이 반복될 가능성이 컸다. 새엄마가 생긴다면, 아이는 오히려 더 힘든 상황에 놓일 것이다. 남편이 만드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새엄마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거나, 소외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아이는 정서적으로 더 큰 불안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 정리가 명확하게 되지 않았다. 막연하게 ‘아이는 내가 데려와야 한다’는 결론을 마음속에 품었지만, 계속 갈팡질팡이었다. 그 상태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그동안 내가 당했던 끔찍한 일들을 하나하나 카카오톡 ‘나에게 쓰기’ 창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무작정 내쪽이 유리하다는 변호사가 아닌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변호사를 선택했다.
진술서을 작성하는 내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직면하기 괴로워 애써 잊으려 했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상세히 기록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자잘한 일들은 굳이 쓸 필요도 없었다.
내 진술서를 확인한 변호사는 믿기 힘들다는 듯 ‘아니, 이게 진짜 사실이에요? 그 사람 대체 뭐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계속 고민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위해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라도 버티는 게 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일까? 하지만 결국,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참는다고 아이가 안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도 나처럼 숨죽이며 살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더 두려웠던건 아이도 아빠처럼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어른이 되어 타인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스스로도 불행한 삶을 반복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결혼을 끝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남편 몰래 집을 나올 용기는 없었다. 결국 폭력적인 상황에서의 극한 감정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가끔은 내가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되묻곤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그에게서 벗어났고 더 건강한 삶을 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