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온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아이를 보러 갔다.
남편이 육아에 지쳐 아이를 나에게 맡기고 싶어 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전혀 그런 의사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아이를 붙잡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버티는 듯했다.
‘아이가 나를 기억할까?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보러 간 그날, 아이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나쁜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나를 보자 약간 들뜬 듯한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도 남편이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 것 같아 그 부분만큼은 안도할 수 있었다.
차안에서 남편은 내가 집을 나간 사실만을 문제 삼아 끊임없이 비난했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을 듣기만 하고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지속되는 비난에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자마자 그 순간 남편의 분노가 폭발했다. 뒷자석에서 내가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운전중이던 남편이 뒷자석으로 한쪽 팔을 뻗어 아이의 등쪽 상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입으로는 폭언을 내뱉었다. 나는 아이가 불안할것 같아 그만 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분노를 멈추지 못했다. 결국 또다시 나는 도망치듯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아이를 보기 위해 신혼집을 찾았다.
그날은 남편이 출근한 날이라, 나는 혼자 아이를 돌봤다.
남편은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라 착각한 듯했고, 내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분노로 반응했다.
폭력적인 상황이 반복될까 봐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다. 화장실로 가서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나가려는 나를 막아 섰다. 결국 또다시 집을 나왔고 남편의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나는 남편의 번호를 차단하고, 몇 달간 연락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아빠의 분노 폭발 상황을 보고, 아이가 더 불안해질까 두려웠다.
결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런 점이었다.
잠깐 아이를 보러 간 순간에도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더 이상 면접교섭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내가 아이를 보지 않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 같았다.
남편은 소장을 받은 지 4개월이 지나서야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모두 부정했고, 거짓 진술까지 덧붙였다.
남편이 말한 것 중 사실인 건 단 하나였다.
“내가 아이를 보지 않고 있다는 것.”
하지만 생각보다 길어지는 소송에, 나는 아이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매주 주말마다 아이를 보고 있다.
몇 달간의 공백이 있었기에 무작정 1박 2일로 데려올 수는 없었고, 아이와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남편과 함께 셋이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남편과 대면하는 순간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예전처럼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붙들기 위해.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야 안전할 것 같았다.
내가 남긴 글들 속엔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반복된다. 이 또한 나를 붙드는 하나의 방식이다.
면접교섭 때마다 남편은 협의를 제안했다.
거절을 해도 끈질기게 반복했다.
그는 ‘계속 말하면 결국 수락할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그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너는 너만 생각하고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너는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
이런 가스라이팅만 반복될 뿐,
본인의 잘못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엔 양육권은 본인이 갖고, 남편의 지역에 집을 구해줄테니 아이를 키우라는 제안이었다.
그다음엔 주말부부 제안.
또 그다음엔 본인이 집을 나갈테니 신혼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양육권을 넘기겠다는 조건.
그리고는 “아이를 자주 보게 해달라”, “홈캠을 연결해달라”는 요구까지.
면접교섭 내내 남편은 입을 쉬지 않고 협의 이야기만 했다.
그만하라고 해도, 무시해도, 멈추지 않았다.
거의 고문 수준 이었다.
나는 남편을 신뢰할 수 없기에 소송은 계속 진행하는 조건으로 신혼집에서 아이를 돌보겠다고 수락했다.
얼마간은 남편과 함께 셋이서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두렵기도 했다.
몇일만 잘 넘기면 되니 시도는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한 결정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소장에 추가할 생각도 했다.
남편은 투덜댔지만 일단은 동의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언제 신혼집으로 올 거냐”며 재촉했다.
그다음 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한 이야기는 없던 일로 하자.”
바로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이야기이다.
거절하면 똑같은 말을 무한 반복으로 들어야 하는 고문이고,
수락하면 아무렇지 않게 없던 일이 된다.
그리고 책임전가도 잊지 않았다. 말을 바꾼건 본인인데 나에게 “너의 선택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 해줄것도 해줄 말도 없다” 등등의 말들을 통화종료후 카톡으로 남겼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아니면 그 이후에도 반복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