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역시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과 고민을 안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평범하고 해맑아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이 바라보는 타인의 표본일 뿐이다. 당장 내 할 일을 하기 위해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타인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나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고 아프고 어리석다고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비관적으로 지내오다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며 펑펑 운 적도 있다. 그 순간에는 나의 가슴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렇게 내 아픔을 타인에게 공개하며 '지금의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쳤어!'라고 소리쳐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늘 한결같았다.
"나도 그 마음 알아."
어떻게 네가 내 마음을 안다는 거야?
가까운 지인에게, 또는 내 가족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좋은 행동임은 틀림없지만, 그 이상의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가진 고민을 털어놓고자 타인의 귀를 빌려 온갖 말들을 쏟아 놓지만, 그럼에도 타인은 나의 온전한 마음, 심리를 알 수는 없다. 그런데도, 왜 다른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안다고들 말할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나의 아픔을 안다는 걸까.
고민을 털어놓고 난 뒤 머릿속이 새하얘졌을 때, 나의 머릿속이 비관적인 분노로 가득 찼을 때, 내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사연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고민이 들려왔다. 그 고민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과 같은 내용이었다. 표현과 목소리와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내용에는 어떠한 차이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 그랬다.
그 고통은 나만이 가진 고통이 아니었다. 나 홀로 이 세상과 싸우며 온갖 불행과 절망의 순간을 겪고 있는 비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가 1년 전에 겪었던 아픔을 저 사람은 어제 경험했고, 내가 한 달 전에 경험한 실패를, 저 사람은 몇십 년 전에 경험했다. 나는, 그저 지금의 내가 싫고, 지금의 내 처지가 힘들었던 것뿐이다.
그 순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이전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을 가지게 됐다. 타인의 고통을 저울질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고통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서 그렇다. 내가 그동안 가졌던 마음은 나 스스로를 비난하려 하는 나의 나약함이었다. 나의 곁에서 있는 사람들이 "나도 그 마음 알아."라고 답했던 건 그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이 전부라는 세상에게. 자신의 삶이 비참하다는 자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누구나 사연은 존재하니, 그것을 꼭 직시하고, 깨달은 뒤에 저 멀리 던져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또다시 그 순간이 오겠지만, 지금의 자신은 한없이 아프겠지만, 그때마다 또다시 과감하게 던져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내일의 나에게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