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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Sep 16. 2024

憂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숨은 그림 찾기


추석입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명절인데, 오히려 추석이 지나면 명절증후군으로 우울한 사람이 많아진다고 하지요.

 

우울憂鬱 어떤 모습일까요?   



위 그림은 근심할 우憂의 금문입니다. 우선 머리 부위를 보면 뿔이 달린 짐승의 머리입니다. 외계인은 아닐 테니 머리에 탈을 쓴 사람입니다. 뿔의 모양을 보면 산양입니다. 뿔강조된 것은 무리를 이끄는 수놈이란 뜻이지요. 산양은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바위를 사뿐히 뛰어오르지요. 산양의 탈을 쓴 것은 높이 올라가는 산양의 영적인 힘을 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요. 


이제 제사장의 손을 보세요. 세 그림 모두 머리를 향하고 있거나 감싸고 있네요. 첫 번째 그림의 발을 보면 

천천히 걸을 쇠夊를 더했습니다. 이제 이 그림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감이 오시나요? 


제사장이 머리에 산양의 탈을 쓰고, 손으로는 머리를 감싸고 천천히 걷고 있는 이 모습, 어디서 많이 본모습 아닌가요? 이 모습은 무언가를 근심하거나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이제 두 번째 그림을 볼까요. 이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것이 없나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판박이지 않나요?  쪼그리고 앉은 자세하며, 왼손은 무릎에 걸치고 다른 손은 턱을 고인 자세하며, 싱크로율 100%잖아요. 턱 앞에 있는 손이 왜 분리되어 있냐구요. 위에 예시된 세 번째 그림을 보면 손이 붙어있지요. 그림과 글자의 차이입니다. 


오히려 예술성은 한자가 승입니다. 


산양의 수컷은 번식기 외에는 암컷과 분리된 독립된 영역에 머물거든요. 


제사장은 어떤 근심으로, 절벽에 홀로 앉은 산양이 되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가뭄이 들어서, 아니면 누군가 병이 들어서, 그것도 아니면 전쟁 때문일까요. 한자 사전에 이러한 뜻이 다 나열된 것을 보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근심을 표현했나 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참사인가요? 춘추전국시대에 이르자 문자개혁을 한답시고 글자를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전문은 위로부터 머리 혈頁, 그 아래는 사랑 애愛의 생략체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마 어떤 근심이나 연민 때문에속을 끓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 이제 막힐 울鬱자를 보겠습니다. 우울한 사람의 마음속도 이 글자처럼 복잡할까요. 글자가 많이 울창하지요. 헤집고 들어가면 무언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그림입니다.

위 그림은 막힐 울鬱의 금문입니다(갑골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자형보다는 많이 단순화된 그림이지요. 그럼에도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쉽지 않지요.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있네요. 수풀 림林자가 보이지요. 그 가운데는 큰 대大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큰 사람의 발바닥 밑에 사람이 엎어져 있습니다. 알고 보니 무자비한 폭행의 현장입니다. 더군다나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여기서 수풀 림林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울타리가 될 수도 있고, 폭력에 동조하며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될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런다고 폭력에 맞설 힘도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지요. 이럴 때는 어떤 감정일까요. 가슴에 바위를 얹어 놓은 듯 숨이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겠지요. 그래서 '막히다, 답답하다'라는 뜻이 나왔습니다. 나아가 이 상황이 지속되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따라오지요. 기분이 침울해지고 무력해져서 의욕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이를 현대의학에서는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 보고 있지요. 


그 치료법을 제시한 것일까요? 금문 이후에 나온 전문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대신 기존의 글자를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를 나타낸 것입니다.


전문은 마치 드라마에서 사건을 조작하듯이, 폭행 장면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질그릇 부缶를 넣었습니다.  부缶는 방앗공이를 그린 오午와 그 아래는 절구통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울창한 숲에서 채취한 향초를 절구에 넣고 찧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들었지요. 이만하면 완벽한 조작입니다.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요. 


그 아래는 뚜겅을 의미하는 덮을 멱冖 이 있습니다.  그 왼쪽 아래는 울창주 창鬯입니다.  울창주는 울금이라는 한약재로 담은 향기 나는 술을 뜻합니다. 


    鬯 울창주 창


창鬯의 원래 모양은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술그릇을 그린 것인데 전문에서 창鬯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술그릇 옆에 터럭 삼 술 향기가 퍼져나가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글자가 조작되면서 막힐 울鬱은 처음 의미인, '울창하다, 막히다, 답답하다, 우울하다'라는 의미와 함께 두 번째 의미인, '향기롭다, 화려하다, 그윽하다'등의 의미가 혼재되었습니다. 


결국 우울憂鬱이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폭행을 당하는 사람의 모습이 합해진 것으로,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폭행이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빠져나올 길이 없어서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사람의 답답한 마음과 우울한 감정을 뜻합니다.  


추석이 지나면, 고생한 어머니와 아내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고 좋은 향기 더해 발마사지라도 해드리면 좋겠지요^^. 모두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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