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은 칡(葛)과 등나무(藤)가 한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일까? 아니면 삼각관계로 인한 혼란일까?
갈등을 의미하는 영어 conflict는 '함께(con) 치다(fligere)'를 뜻하는 라틴어(confligere)에서 유래되었다. 칡과 등나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둘 다 주변 나무를 지지대 삼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지만 차이점이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은 덩굴손이 향하는 방향이다. 칡은 항상 반시계 방향으로 지지대를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감는다. 따라서 둘이 함께 있으면 필연적으로 서로 꼬이게 된다. 이런 모습에 비유하여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목표를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모습을 뜻하게 되었다.
한편 찰스다윈은 덩굴손을 연구하다가 덩굴손 왜곡(tendril perversion) 현상을 발견하였다(1865년의 논문 "on the movements and habits of climbing plants").
덩굴손 왜곡은 나선형 구조에서 발견되는 현상으로 덩굴손의 회전 방향이 특정 지점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현상(키랄성 chirality)을 말한다. 이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하학적 결정이지만 달리 보면, 생명유지를 위해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조절하는 식물의 의지로 볼 수 있다.
덩굴손은 가늘고 긴 실과 같은 형태로 변형된 식물의 줄기(잎 또는 잎자루)이다. 주로 적당한 숙주나 물체를 감아서 줄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며, 화학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뻗어 나가는 방향을 조절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 팔이 나긋나긋한 어린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무언가를 잡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 같다. 그런데 실제로 갈등이라는 한자 속에도 그와 같은 모습이 숨어있다.
葛(칡 갈)은 艹(풀 초)와 曷(어찌 갈)로 이루어졌다. 칡은 다년생 식물이다. 추운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매년 굵어지기 때문에 나무로 분류된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식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艹(풀 초)를 사용했다. 曷(어찌 갈)은 여기서 발음을 담당하지만 일정 부분 의미에도 관여하고 있다.
曷(어찌 갈)은 曰(가로 왈)과 匃(빌 개)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비(匃)는 말(曰)이다. 구걸을 뜻하는 것일까? 기도를 뜻하는 것일까?
그 구성요소인 匃(빌 개)를 살펴보자.
匃(빌 개)의 금문은 亡(죽을 망)과 人(사람 인)으로 이루어졌다. 亡(죽을 망)은 원래 칼(刀)의 날부위에 세로획을 그어 칼이 '부러지다'를 뜻했다. 이로부터 의미가 확장되어 '파괴되다, 멸망하다, 없어지다, 도망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따라서 匃(빌 개)의 원래의미는 '도망자(亡+人)'이다. 망민이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할 때는 대개 구걸에 의지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으므로 '구걸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그 외형적인 모습만 보면 신(神)을 찾아 복을 기원하는 제사장이나 무(巫)의 모습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빌다'라는 뜻이 나왔다.
여기에 曰(가로 왈)을 더한 글자가 曷(어찌 갈)이다. 그러므로 그 구상적인 모습은 구걸이나 기도이다. 그 의미는 부존재에 대한 안부(安否)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신 앞에 나아가(謁뵐 알) "신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혹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와 같은 원망일 수 있으며 또는 부존재에 대한 안부의 인사로서 '어찌하여 그가 보이지 않는지'등에 대한 물음에서 '어찌, 언제, 어느 때, 어찌~하지 아니한가?'등의 의문사가 나왔다.
한편 曷(어찌 갈)은 '막다, 그치다, 해치다'란 뜻도 있는데, 이는 무(巫)가 행하는 주술의 일종인 '액막이'와 '저주'에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이 의미로 쓸 때는 '알'로 발음해야 한다.
여하튼 曷(어찌 갈)의 기본의미는 '갈망(渴望)'이다. 타는 목마름에 물을 갈망하며 입을 벌리는 모습이며(渴 목마를 갈), 손에 깃대나 피켓을 들고 외치는 사람들의(揭높이 들 게) 간절한 바람이다.
曷(어찌 갈)의 원래의미를 적용하면, 葛(칡 갈)은 음식을 갈망하는 걸인처럼, 햇빛을 향해 덩굴손을 뻗는 칡을 뜻한다.
한편 藤(등나무 등)은 艹(풀 초)와 滕(물 솟을 등)으로 이루어졌다. 滕(물 솟을 등)은 원래 朕(나 짐)과 같은 글자였다.
朕(나 짐)의 갑골문은 舟(배 주)와 두 손(廾)으로 노(丨)를 잡고 있는 모습이 합해진 형태(朕 나 짐)로 원래의미는 '뱃사공'이다. 이후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세파를 헤쳐 나가는 뱃사공에 비유하면서 '나'란 뜻이 나왔다. 짐(朕)은 한 때 계급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을 칭하는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진시황이 황제의 자칭으로 삼고부터 일반인들은 감히 사용할 수 없는 극존칭이 되었다.
어쨌든 滕(물 솟을 등)과 朕(나 짐)은 원래 같은 글자로 사공이 나룻배를 젓는 모습이었는데, 후에 글자를 조금 변형하여 나룻배(月=舟)가 큰 강(泰)으로 '나아가다'를 뜻했다. 그 모습이 산기슭 샘(原)에서 분출한 물이 큰 강으로 흘러가는 모습에 비유되어 '물이 솟다, 용솟음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여기에 艹(풀 초)를 더한 것이 藤(등나무 등)이다. 따라서 藤(등나무 등)은 우물에서 분출한 물이 강으로 흘러가듯이 근본에서 줄기를 길게 뻗으며 나아가는 등나무를 가리킨다. 그 모습은 영어의 'long for(열망하다, 갈망하다)'를 연상시킨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그리움에 닿기 위해 팔을 길게 늘이는 모습 말이다.
결국 갈등(葛藤)이란, 덩굴손을 길게 뻗는 칡(葛)의 갈망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줄기를 길게 뻗어 나가는 등나무(藤)의 욕망이 충돌하며 얽히고설켜서 서로를 옥죄는 모습이다. 이 막장 드라마의 끝은 비극이다. 뜻하지 않게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가운데 나무가, 집착하는 두 나무의 진한 포옹에 숨을 헐떡이다 결국 고사해야 끝이 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덩굴손 왜곡이 가능한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