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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 높은 놈, 오만한 놈

者者者

by 정한

'나쁜 놈'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나쁜 놈'의 본딧말은 '나뿐인 놈'이다. 따라서 '나쁜 놈'은 남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말 '나쁜 놈'과 비슷한 뉘앙스의 영어 단어로 스캔더럴(Scoundrel)이 있다. 이 단어의 어원으로 추정되는 중세 프랑스어 에스꼰드레(escondre:숨기다)는, 공동체(com)가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 몰래 숨겨 놓은(dere) 것(곡식 등)을 특정 개인이 혼자 빼돌리는 것(ex)을 뜻한다. 미드나 영화에서 "you scoundrel(나쁜 놈)"이라는 대사가 나온다면 대개 그런 상황이다.


이처럼 남들은 죽든지 말든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따르는 나쁜 사람을 비하할 때 쓰는 한자가 者(놈 자)이다. 하지만 이 글자의 원래 형태를 보면 그런 뜻과는 무관해 보인다.

者(놈 자)의 금문은 솥(口)에 채소가 담겨있고, 채소 주변에는 작은 점들이 찍혀있다. 이것에 대해서 콩이라거나 사탕수수라는 등의 해석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火(불 화)를 더하면 煮(삶을 자)가 된다. 이를 근거하면, 작은 점들은 음식이 끓을 때 기포가 일어나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의 '놈'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 어원을 찾아 떠난 실크로드 여행에서 뜻밖에 두 인물을 만났다. 두 인물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먼저 나가려고 다툼을 벌였던 에서와 야곱이다. 에서와 야곱은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전혀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형 에서는 온몸이 털로 덮인 야성적인 사나이였고, 동생 야곱은 성품이 조용하고 장막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에서는 성품에 걸맞게 사냥을 좋아했고 야곱은 집안에서 하는 일을 더 좋아했다.

야곱과 에서.JPG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그날따라 피곤하고 배도 많이 고팠다. 마침 동생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는데, 이를 본 에서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야곱에게 죽 한 그릇을 청했다. 하지만 꾀가 많았던 야곱은 에서와 흥정을 벌였다. 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같은 무게 추로 저울질한 세기의 흥정이었다. 하지만 에서는 이성보다 밥통이 큰 사람이었다. 야곱의 제안을 한갓 동생의 장난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허기가 이성을 삼켰는지, 에서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붉은 죽과 장자권을 맞바꾸었다.


예부터 유명했던 이 이야기에서 야곱이 끓인 붉은 죽을 히브리어로 '나지드'라고 한다. 나지드는 성서에서 '죽' 또는 나물을 넣고 끓인 '국'에 대해서 사용되었는데, 그 어원은 '끓어오르다, 거만하다'를 뜻하는 '주드'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주드의 기본의미는 '끓다(boil)'인데, 비유적으로 분에 넘치는 사람을 뜻한다. 즉 솥 안의 물이 끓어 넘치듯이(boil over) 감정이 끓어(boil up) 쉽게 흥분하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욱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로부터 '교만하거나, 주제넘거나, 건방지게 행동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이는 "야곱이 에서를 유혹한 미끼가 하필이면 붉은 죽이었을까?"라고 묻는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 대신 성서가 넌지시 보여주는 그림이다. 공교롭게도 이 그림은 갑골문에도 등장한다. '사치하다, 분에 넘치다, 오만하다'를 뜻하는 奢(사치할 사)이다.

금문은 大(큰 대)와 者(끓어오를 자)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大(큰 대)는 행동이나 씀씀이가 크다는 뜻이며, 者(끓일 자)는 물이 끓어 넘치듯이 행동하는 것, 즉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가리킨다. 교만하며, 사치스럽고 방탕한 사람을 일컫는 교사음일(驕奢淫佚)이 바로 이 글자의 원래의미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奢(사치할 사)가 성서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민족, 지역, 언어, 문자 등 피상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소박한 삶의 철학은 서로 유사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한 해석이다.


여하튼 者(놈 자)의 원래의미는 '끓이다'이며, 솥에 나물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요리하는 모습에서 '이것저것, 여럿, 모두'라는 뜻이 나왔다. 이후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이름을 알 수 없는 뭇사람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고, 비유적으로 감정이 끓어 넘치는 에서와 같은 사람을 뜻하게 되면서 이런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놈'의 의미도 나왔다.


송나라 때 손목이 지은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고왈나분(高曰那奔)"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려 사람들은) '高'를 일러(曰) '나쁜(那奔)'이라 한다고 적었다. 여기에 '者'를 더하면 '높은 자(高者)를 일러 나쁜 놈(那奔者)이라 한다'라는 말이 된다. 당시 백성들에게 권력자들은 남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오로지 자신만 아는 '나뿐인 놈'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권력자의 오만과 욕망을 보면 고왈나분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한편 者(놈 자)는 '끓다'를 뜻하는 영단어 boil과 궤(軌)를 같이한다. boil은 중세 영어에서 '거품이 일다, 특히 열로 인해 끓는 상태에 있다'는 의미로, 구 프랑스어 bolir(끓다, 거품이 일다, 발효하다, 솟구치다'에서 유래하였다. boil의 원조상인 인도유럽조어(PIE)는 '부풀다(beu)'이며, 비유적으로 '감정이나 열정 등이 동요하는 상태에 있다(seethe)'를 뜻한다.


관련문자를 통해 者의 쓰임새를 살펴보자.


屠(죽일 도)는 尸(주검시)와 者(삶을 자)의 결합자이다.

尸금문-1.jpg

尸는 원래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으로 '구부리다'가 본뜻이다. 그러므로 屠(죽일 도)는 솥 안에 사람을 집어넣고 삶아 죽이는 모습으로, 고대 형벌 중의 하나인 팽형(烹刑)을 뜻한다. 하지만 尸(시)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구부러진 사물을 뜻하기도 하므로 희생제물을 솥에 넣어 삶고 있는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暑(더울 서)는 태양(日)과 者(끓일 자)의 결합으로, 태양이 지상의 모든 것을 끓이는 여름 더위를 뜻한다.


諸(모두 제)는 사람이 언어(言)로 여러 사물이나 사람(者)을 가리킬 때 이름 대신 지칭하는 '이것, 저것' 또는 '이 사람, 저 사람'등 두루 지시하는 말을 뜻한다. '여러분'을 의미하는 제군(諸君), 여러 가지를 뜻하는 제반(諸般) 등에 그 뜻이 담겼다.


都(도읍 도)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者) 언덕(阝)을 뜻한다. 여기서 언덕은 사람들이 터전으로 삼는 낮은 언덕을 뜻하기도 하지만 언덕으로 상징되는 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언덕을 텔과 제벨로 구분하여 불렀다. 텔(Tel)은 오늘날 숙박시설의 한 형태인 호텔(Hotel)과 그 뿌리가 같으며,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지막한 언덕을 가리킨다. 한편 텔과는 별개로 자연의 힘으로 형성된 언덕을 '제벨'이라고 부른다.


이를 따르면, 都(도읍 도)는 나지막한 언덕에 성벽을 쌓아 공동체 사회를 이루었던 도시국가를 뜻하며, 그 성을 두르는 토벽을 堵(담 도)라 한다. 도시(都市)나 도회(都會)에 그 뜻이 담겼다.


마찬가지로 署(관청 서)는 여러(者) 부서들이 그물망(网)처럼 조직되어 있는 관청을 뜻하는데, 그 기원은 고대에 국가나 도시의 수호신을 모시고 희생제물(者)을 드렸던 신전이다. 고대에 신전은 단순히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아닌 조세 혹은 공물을 거두고 관리하는 등의 나라를 다스리는 관청의 기능을 겸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緖(실마리 서)는 삶은(者) 누에고치에서 실(糸)을 자아내는 일을 뜻한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는 과정을 길쌈 용어로 '실잣기'라고 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누에고치를 준비한다. 그다음 솥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者). 물이 끓기 시작하면 누에고치를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누에고치가 익어 표면의 세리신(sericin)이 연화하면 실이 분리되어 실머리(糸)가 물에 뜨게 되는데, 이때 실머리를 당겨 올려 한 손에 모아 쥐고 광주리에 사려 놓는다. 이 실을 '묵지실'이라고 한다. 이 묵지실의 중간을 끊고 자새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실을 꼬고 다시 합사 하면 타래실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뜻하는 글자가 緖(실마리 서)이다. 실머리를 잡고 차례를 세워 실을 꼬아 나가는 모습에서 '실머리, 차례, 순서, 계통'등의 뜻이 나왔다. 또 실머리에서 어떤 일의 첫머리나 시초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일의 실마리를 뜻하는 단서(端緖)나 '두서가 없다'라고 할 때의 두서(頭緖), 사물이 유래한 단서나 내력을 뜻하는 유서(由緖)등이 그 뜻으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정서(情緖)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기분이 실마리가(糸) 되어 끓어오르는(者) 강렬한 감정상태를 뜻한다.



著(나타날 저)는 艹(풀 초)와 者(삶을 자)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者(자)는 물이 끓어 올라 절정에 다다른 모습에서 나온 '바아흐로(이제 한창)'를 뜻한다. 즉 초목의 싹이 나고 자라서 그 절정(꽃)에 도달함을 뜻한다. 뚜렷이 드러남을 의미하는 현저(顯著)에 그 뜻이 담겼다.


싹트고, 꽃피는 것을 著(나타날 저)라고 하고, 조를 수확하는 것을 述(지을 술)이라 한다. 따라서 저술은 자기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그 열매를 수확하는 글농사 또는 글짓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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