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증을 가질 만한 한자가 있다. '글을 짓다'를 뜻하는 지을 술(述)이다. 지을 술(述)은 비교적 간단한 글자이지만 자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네이버한자사전>>에는 지을 술(述)에 대해서 '길거리에서 손재주를 부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풀이했다.
길거리에서 손재주라면 야바위를 말하는 것일까? 또 다른 사전에는 "곡물을 팔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떠벌리며 선전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두 해석 모두 쉬엄쉬엄 갈 착(辵)에 대한 견해는 일치하지만 차조 출(朮)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인다. 전자는 야바위나 마술사의 손놀림으로 보았고, 후자는 차조를 그린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저술(著述)에서
지을 술(述)은 야바위와 장사꾼의 말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는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그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갑골문 역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획을 줄인 부호에 가까운 자형이 많아 그 본래 모습을 한눈에 알아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원에 대한 해석을 읽다 보면, 꿈해몽을 읽을 때와 같이 모호하고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필자 역시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을 술(述)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펴다, 글을 짓다, 기록하다, 말하다, 따르다, 잇다, 계승하다'등의 뜻이 있다. 이 중에서 지을 술(述)이 나타내고자 했던 원래의미는 무엇일까?
필자가 확신하는, 지을 술(述)의 원래 의미는 김홍도의 대표적 작품을 모은 <<단원풍속화첩>>에서 발견했다.
이 그림은 <<단원풍속화첩>>에 들어있는 <벼타작>이다.
넓은 마당에는 타작이 한창이다. 낟가리를 지고 나르는 일꾼도 보이고, 사방으로 흩어진 낟알들을 빗자루로 쓸어 모으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의 가운데는, 일꾼들이 타작대에 낟가리를 두들겨 이삭을 떠는데 여념이 없다. 그 뒤쪽에는 술단지를 앞에 두고 비스듬히 누워서 긴 곤방대를 물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비록 마름(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를 위임받은 관리인)의 감시를 받으면서 힘든 타작을 하고 있지만 일꾼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있다. 풍년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을 술(述)은 위의 그림과 같이 조를 타작하는 모습을 그렸다. 차조 출(术)은 타작하는 곡식(穀)의 대표로 쓰였고, 쉬엄쉬엄 갈 착(辵)은 고대에 행했던 타작 방법 중의 하나이다.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사 28:28)"
이처럼 고대에는 곡식을 타작할 때 말굽으로 밟거나 수레바퀴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는 영어 단어 드레시 'thresh'가 뒷받침하고 있다. 'thresh'는 '밟다, 짓밟다, 탈곡하다, 요동하다'를 뜻하는데, 기본 개념은 '사람이나 소가 이삭을 밟아서 터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두려워할 출(怵)은 조바심을 뜻한다. 조바심은 '조'와 '타작하다'를 뜻하는 순우리말 '바심'이 합해진 말로, 조 이삭을 털어내는 일을 말한다. 조는 낟알이 작고 이삭이 질겨서 여러 번에 걸쳐 문지르고 비벼도 낟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조바심을 할 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마음을 졸이기 일쑤다. 이로부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을 졸이다'는 뜻이 나왔다.
그래서조바심을 뜻하는 차조 출(朮)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된 출(怵)은 조바심의 다른 표현인 '두려워하다, 달리다, 분주하다'등의 뜻으로 쓰인다. 또 '술(怵)'로 발음할 때는 '꾀다, 유혹하다'를 뜻하는데, 이는 남녀가 썸을 탈 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조바심을 내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을 술(述)에서 차조 출(朮)은 '이삭을 떨다'를 의미하고, 쉬엄쉬엄 갈 착(辵)은 이삭을 발로 밟거나 문질러 탈곡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지을 술(述)이 뜻하고 있는 '글을 짓다, 말하다'라는 의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두 의미 모두 '탈곡(脫穀)'에서 나왔다. 전자는 '껍질을 벗기다'에서 의미가 확대되어 금속(金)이나 돌의 '표면을 벗겨내다(剝)'를 뜻하는 기록할 록(錄)의 의미로 쓰였고, 후자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드러내어 말하다(兌)를 뜻하는 말씀 설(說)의 의미로 쓰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어원이 있다.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신 23:25).
위 구절에서 '이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멜릴라'는 수확의 의미로, '잘라낸 이삭' 또는 '타작한 이삭'을 말하는데, '말하다'를 뜻하는 '말랄'에서 유래되었다. 이때의 말은, 지을 술(述)과 마찬가지로, 입 밖으로 드러내는 말의 의미에서 '표현하다 발언하다'를 뜻한다.
정리해 보면, 술述은 맨 처음 '조를 떨다(바심)'를 뜻했고, 낟알이 탈곡되는 모습에서 '벗기다'란 뜻이 나왔으며,이로부터 '새기다, 기록하다, 말하다'라는 뜻이 나왔다. 저술(著述), 서술(敍述), 진술(陳述), 기술(記述), 논술(論述) 등에 그 뜻이 담겼다.
한편 저술(著述)은 나타날 저著와 지을 술(述)로 구성되었다. 나타날 저(著)는 풀 초(艹)에 이것저것을 뜻하는 놈 자(者)를 더해 모든 풀을 뜻했다. 여기서 풀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사물을 상징함과 동시에 사물을 이름하는 말을 뜻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는 언어라는 집에서 태어났다. 이를 김춘수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편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우주와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 혹은 질서와 법칙을 '로고스(logos)라 했다.
로고스는 '말하다'에서 유래되었다.
마찬가지로 나타날 저(著)는,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눈 밝은 현자들이 이미 밝혀 놓았으므로, 공자는 자신의 저술을 낮추어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했다. 옛사람들의 "말을 전할 뿐 새로 창작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결국 술술(述述) 읽히는 글을 저술하려면 독서와 더불어 사물과 친해져야 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술술(述述)은 어디로 가버리고, 배만 출출(朮朮)하다. 헛심 쓰느라 뱃속에 든 곡식이 다 타작(朮) 되었나 보다.
말 나온 김에 차조 출朮을 조바심하여 한 꺼풀 더 벗겨보자.
차조 출朮의 갑골문은, 뚫어져라 쳐다봐도 차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손(又)을 그렸다. 손목에는 여덟 팔八을 더해 손을 좌우로 벌리다 즉 '떨다, 요동하다'를 뜻했다. 한편 금문에서는 손가락 사이에 차조 낟알을 그려 넣어 차조를 비비거나 훑는 모습을 나타냈는데 이를 소전에서는 깍지낄 차叉로 썼다.
이를 보듯이, 차조 출朮의 원래의미는 '떨다(thresh)'이다. 후에 벼 화(禾)를 더해 이삭을 털어서(朮) 먹는
곡식(禾)의 대표로서 차조 출(秫)을 만들었는데, 이후 본뜻을 잃고 차조를 뜻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격이다.
한편 재주 술(術)은 원래 차조 출(朮)과 같은 글자였다. 이후 전문(위의 3번째 그림)에서부터 갈 행(行)이 더해져 재주 술(術)이 되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선진시기에 성행한 도(道)의 개념을 나타낸 것이다.
도(道)의 처음의미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갈 행(行)의 갑골문은 네거리를 그려 대로를 뜻했다.
이후 의미가 확대되어, 사람이 가고자 하는 '행위의 길(道)'로 발전하여, 어떤 일을 행할 때 그것을 행하는 '방법, 방식, 과정, 학문'등의 뜻이 나왔다. 그렇다면 재주 술(術)에서 차조 출(朮)은 무엇을 뜻할까?
조바심할 때의 숙련된 손재주를 뜻한다. 이를 영어로 skill이라 한다. 스킬은 경험을 통한 숙련된 기술을 뜻하는데, 원뜻은 탈곡(朮)과 같은개념의 '분리'에서 유래되었다. 즉 일반 사람과 차별된 사람이란 뜻이다.
따라서 재주 술(術)은 어떤 일을 행할 때(行) 그 방법이나 기교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朮) 숙련된 일꾼의 손재주 또는 이론을 뜻한다. 한마디로 '달인의 기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