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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요술램프 호리병박

탕후루, 박혁거세, 여와 복희의 공통점

by 정한


탕후루, 꼬치에 끼운 산사나무 열매를 물엿에 퐁당 빠뜨려서 얼음처럼 굳힌 과자. 중국 북경에서 건너온 탕후루는 한자로는 糖葫蘆(당호로)다. 糖(당)은 설탕, 호로(葫蘆)는 표주박을 뜻한다.


표주박은 호리병박 등의 작고 둥근 박을 톱으로 켜서 만든 작은 바가지를 가리킨다. 표주박을 뜻하는 한자로는 瓢(바가지 표)와 瓠(표주박 호)가 있다.

瓢(바가지 표)는 표주박을 뜻하는 瓜(오이 과)와 발음을 나타내는 票(표)로 이루어졌다. 票(표)는 두 손으로 향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제사장이 향로를 흔들어 연기를 피우는 모습인데, 향로의 모양이 호리병박과 유사하여 차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瓢(표)는 호리병박으로 만든 바가지(조롱박)를 뜻한다.


瓠(표주박 호)는 夸(자랑할 과)와 瓜(오이 과)로 이루어졌다. 夸(과)의 금문은 활 만드는 장인(大)이 두 발을 크게 벌리고 도지개(于)에 고정시킨 활(弓)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瓠(표주박 호)는 그 모양이 활(夸)을 닮은 덩굴식물(瓜) 즉, 호리병박을 뜻한다. 같은 자원에서 나온 활 호(弧)에서 보듯이 호리병박 또는 조롱박의 측면 모양은 영락없는 활이다.


한편 중국신화에서 호리병박은 중국판 노아의 방주로 등장한다. 한족을 비롯한 중국의 소수민족 신화에서 호리병박은 그 옛날 대홍수가 났을 때 여와와 복희 남매를 구한 방주로 등장한다. 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와 복희는 훗날 부부가 되어 중국민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는 호리병박이 배(舟)와 동일시되며,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곤도 세이쿄(権藤成卿)가 편찬한『팔린 통빙고』에 "옛날에는 표주박(瓠)을 배(舟)에 비유하였다(古以瓠喩舟)."라고 하였다. 이런 배를 표주(瓢舟)라 하는데, 표주박처럼 물에 뜨는 작은 배를 뜻한다.

한편 표주박은 전통 혼례에서 신랑과 신부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혼인 서약을 하는 절차에서 신랑신부가 합환주(신랑・신부가 서로 잔을 바꾸어 마시는 술.)를 마시는 데 사용했다. 합환주는 대개 신랑신부가 세 번 술잔을 바꾸어 마시는데, 셋째 잔은 한 쌍의 표주박잔을 사용한다.


박은 속에 씨앗을 많이 품고 있어 예로부터 다산을 상징했다. 특히 호리병박은 가슴이 부풀고 배가 불룩 나온 모습의 임신한 여성을 닮았다. 또한 생명의 근원으로서 새의 알 · 태양의 상징으로 여겨 신성시했다.


이러한 상징성을 담아서 조형한 호리병이 壹(한 일)이다.

壹(한 일)은 병의 가운데에 吉(길할 길)이 새겨진 호리병이다. 호리병은 호리병박의 속을 파내고 껍질만 쪄서 말린 후에 만든다. 주로 물이나 술을 담는 병으로 사용하는데, 옛 그림에서 신선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술병이 바로 호리병박(壹)이다.


壹(한 일)은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전문 壹(일)의 윗부분 士(사)는 가운데에 돌출된 손잡이가 있는 뚜껑의 변형이며, 그 아래 覀(덮을 아)는 둥글다를 뜻하는 동그라미의 변형이며, 맨 아래 豆(두)는 허리는 잘록하고 배가 불룩한 호리병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豆(두)의 가운데에 있는 吉(길할 길)은 원래 남성 생식기를 본떠 만든 달구(吉)의 상형으로 여기서는 혼례(結맺을 결)를 통해 남녀가 하나 됨을 뜻한다.


이러한 사유의 표현으로 신랑신부가 한 쌍의 표주박 잔에 술을 나누어 마시는 것은 그 옛날 호리병 속에서 하나 된 여와와 복희처럼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살겠다는 맹세이다.


그래서 호리병을 상형한 壹(일)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수 一(한 일)과 동일시되며, 남녀 일심동체의 상징으로서 통일과 전일을 뜻한다. 그렇다면 호리병 속의 물은 아직 음양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서 소용돌이치는 '혼돈'이다. 그리하여 壹(일)은 '혼돈'이란 뜻도 가졌다.

중국의 양사오 문화유적지에서 인류의 탄생 신화를 모티브로 조형한 특이한 호리병이 발견되었다. 호리병들 중의 하나는 윗부분이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다. 여와, 복희의 자손일까? 혹은 표주박, 아니 탕후루를 닮은 새의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일지도.




그 외 瓜(오이 과)가 들어간 글자들


孤(외로울 고)

子(아들 자)와 瓜(오이 과)의 결합자이다. 오이는 같은 덩굴식물인 포도나 머루와 달리 한 꼭지에 하나의 열매가 열린다. 그 모습에서 '홀로, 하나, 외따로'등의 뜻이 나왔다. 그러므로 孤(고)는 덩굴에 홀로 매달려 있는 오이(瓜)처럼 부모 형제가 없는 고아(子)를 뜻한다.


한편 오이 과(瓜)는 부수로서 박과의 덩굴식물을 대표한다.

조롱박이나 둥근 박은 절반으로 쪼개어 씨를 파내고 바가지나 물통 등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히브리어 '파쿠아'는 씨를 꺼내기 위해서 쪼개는 박의 의미에서 '쪼개다, 파열하다'를 뜻하는 '페카'에서 유래되었다. 이 어원이 적용된 한자가 瓣(외씨 판), 呱(울 고)이다.


瓣(외씨 판)은 '변호하다, 조사하다'를 뜻하는 辡(따질 변)과 그 가운데 刀(칼 도)로 구성되었다. 辡(따질 변)은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가 잘잘못을 따지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刀(칼 도)를 더한 것이 瓣(외씨 판)이다. 따라서 瓣(외씨 판)은 판사가 잘잘못을 따져서 죄를 분별(刀)하듯이, 박을 둘로 쪼개고 속을 파헤쳐 씨를 발라내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呱(울 고)는 박을 쪼개어 그 내용물을 끄집어내듯이 입을 열어 소리를 토해낸다는 뜻이다.


한편 구미호(九尾狐)라고 할 때의 狐(여우 호)는 여우를 뜻하는 犭(견)과 瓜(오이 과)의 결합자이다. 여기서 犭(견)은 굴을 잘 파는 여우를 뜻하고 瓜(과)는 속을 파낸 호리병박을 뜻한다. 이는 여우를 뜻하는 히브리어 '슈알'이 뒷받침한다. 슈알은 '굴을 잘 파는 여우'의 의미로 '텅 비게 하다'는 뜻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어근(쇼알)에서 유래되었다.


觚(술잔 고)는 호리병박처럼 짐승의 뿔 속을 파내어 만든 술잔을 뜻한다. 끝이 뾰족한 술잔의 모양에서 '모나다'라는 뜻이 나왔으며, 또 덩굴에 달랑 외로이 매달려 있는 오이에 비유하여 짝이 없는 술잔을 뜻하기도 한다. 한 쌍의 술잔은 오랫동안 술을 함께 마시는 벗에 비유되어 舊(예 구/친구 구)라 하고, 짝이 없는 술잔을 觚(술잔 고/외로울 고)라 한다.


瓞(북치 질)은 그루갈이로 열린 작은 오이를 뜻한다. 失(잃을 실)은 迭(갈마들 질)의 의미로 처음 심은 작물을 갈아엎고 오이를 심는다는 뜻이다. 그루갈이로 심은 오이는 열매가 작다. 그래서 과질(瓜瓞)은, 큰 오이(瓜)와 작은 오이(瓞)라는 뜻으로 자손이 번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한편 혼기에 이른 여자의 나이를 과년(瓜年)이라 한다. 과년은 16세를 말한다. 이는 瓜(오이 과)를 파자하면 八八이 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한편 과년을 남자에 적용할 때는 벼슬의 임기가 다한 해를 뜻하며, 나이는 예순네 살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八八을 곱한 나이다. 현재는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는 과년의 의미는 사라지고 혼기에 접어든 여자의 나이를 뜻하는 말로 일반화되었다.





참고 논문: ‘한자고고학’ 방법론 구축과 한자연구의 영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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