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소리(口)에 귀(耳) 기울이는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이 네 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분들을 칭하는 聖(성스러울 성)은 '거룩하다, 구별되다'를 뜻한다. 그런데 문자학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구별되는 성인들의 위대함을 귀 밝은 사냥꾼에서 찾는다.
聖(성)의 갑골문은 사람이(人) 언덕(土) 위에 서서 귀(耳)를 쫑긋 세우고 어떤 소리(口)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문자 학자들은 사냥꾼이 언덕 위에서 짐승의 울음소리나 발자국소리를 듣는 모습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이 구절을 그림으로 바꾸면 聖(성스러울 성)이 된다. 귀는 외부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첫 관문으로 경청과 순종을 상징한다. 특히 늘 깨어서 경계하며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파수꾼의 모습은 말씀을 경청하고 신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깨우치는 인자(성직자)의 본보기로 부족함이 없다.
파수꾼을 히브리어로 '차파'라고 한다. '몸을 구부려 먼 곳을 바라보다'가 원래의미다. 이 단어에서 망대(watch tower)를 의미하는 '마차파'가 나왔다. 이 두 단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면 壬(빼어날 정)이 된다.
土(흙 토)는 토단을 쌍아 올린 망대를 뜻하고, 그 위에 서서 몸을 구부리고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壬)은 파수꾼이다. 높은 곳에 서있는 파수꾼의 모습에서 '빼어나다(秀), 밝히다(감찰의 의미에서)'라는 뜻이 나왔다.
望
한편 壬(빼어날 정)의 얼굴 부위에 부릅뜬 눈(臣)을 그려 '주의하여 보다'라는 뜻을 나타낸 글자가 望(바랄 망)이다. 파수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차파의 용례에 따르면, 이 모습은 하나님이 높은 곳에서 세상을 감찰하시는 모습이며(잠 15:3), 악인이 의인을 해치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는 모습이며(시 37:32), 소식을 기다리며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다(삼상 4:13).
후에 금문에서 亡月이 더해져서 지금의 望(망)이 되었다. 亡月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직역하면 '달의 죽음'이다. 그 의미를 가만히 헤아려보면 옛 전설이 보인다. 보름이 지나면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는(亡) 달(月)을 살리기 위해서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사약을 찧고 있는 토끼의 전설 말이다.
여하튼 望(망)의 본의는 '보다'이다. 이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하여, 바라(보)다, 기다리다, 그리워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한편 望(바랄 망)은 기독교의 관점으로 보면 믿음의 대상을 바라보는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다(히 11:1). 실상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이다. '~의 아래'를 뜻하는 휘포와 '확고하게 서다'를 뜻하는 히스테미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실상(휘포스타시스)은 '확고한 토대 위에 서있는 것'을 뜻한다. 그 구상적인 모습이 갑골문 望(망)이다. 확고한 토대(壬)는 견고한 믿음을, 늘 깨어서 먼 곳을 바라보는 파수꾼의 모습은 장차 올 인자를 기다리는 신앙인의 본보기다.
望(망)이 믿음의 표상이라면 淫(음란할 음)은 욕망의 표상이다.
淫(음란할 음)은 水(물 수)와 㸒(다가가 바랄 음)의 결합자이다. 㸒(다가가 바랄 음)은 파수꾼(壬)이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 잡으려는(爪) 모습이다. 여기에 水(물 수)를 더했으니 淫(음란할 음)의 원래의미는 갈망이다. 그 본래 모습은 길 잃은 나그네가 사막을 헤매다가 저 멀리 있는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손을 뻗어 움켜 잡으려는 모습이다.
그와 같은 갈망으로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손을 뻗는 모습이 淫(음란할 음)이다.
<성경>에서는 우상을 섬기며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엑스터시 상태에서 여사제들과 음란한 행위를 하는 이방 사제에 대해서 사용했다.
한편 '음란하다'를 뜻하는 영어 'lewd'는 '비성직자'를 뜻하는 고대 영어(laewede)에서 나온 말이다.
결국 聖(성)은 신의 말씀을 경청하며 율법을 파수하는 성직자를 뜻하고, 淫(음)은 타락한 성직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