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有綽綽
어느 날 맹자가 제나라(齊)의 대부(大夫) 지와(蚔蛙를 만나 잘못을 나무랐다.
"사사(士師)가 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임금에게 간언 할 수가 없었단 말입니까?"
(今旣數月矣 未可以言與)
이에 지와는 맹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왕에게 간했으나 왕이 그 말을 들어주지 않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蚳鼃諫於王而不用 致爲臣而去)
이 일을 알게 된 제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맹자가 지와를 위해서 자신의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충고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정작 맹자 자신은 스스로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所以爲蚳鼃則善矣 所以自爲則吾不知也)
이를 제자에게 전해 들은 맹자가 말하기를,
"내가 듣자 하니 관직에 있는 자가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면 마땅히 떠나야 하고, 간언의 책임을 맡은 자가 간언 할 수 없으면 응당 떠나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관직이 없으며 간언을 해야 할 책임도 없으니 내가 나아가고 물러가는 데에 어찌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曰 吾聞之也 有官守者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不得其言則去 我無官守 我無言責也 則吾進退
豈不綽綽然有餘裕哉)
<<맹자(孟子)>> <공손추하편(公孫丑下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맹자의 작작유여裕(綽綽有餘)의 도(道)는 책임질 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의 여유다. 하지만 맹자의 말대로 직책이 있는 자는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면 떠나야 하고 간언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자 역시 간언 할 수 없으면 떠나야 한다.
2025년 새해벽두 탄핵정국의 대한민국은 직책이 있음에도 책임은 지지 않고 자리 보존에만 연연하는 자들의 몰염치가 판을 친다.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린 지와가 통탄할 일이다.
맹자가 말한 '작작유여(綽綽有餘)'는 '너그럽고 침착하며 여유가 있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작작(綽綽)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綽(너그러울 작)은 糸(가는실 멱)과 卓(높을 탁)의 결합자로 코가 큰(卓) 그물을 뜻한다. 그물눈과 그물눈 사이가 촘촘하지 아니하고 넓은 그물의 모양에서 '느슨하다'는 뜻이 나왔으며, 큰 물고기를 제외한 작은 물고기들은 모두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물눈(糸) 사이를 넓게(卓) 한 어부의 관용에서 '너그럽다, 유순하다'등의 뜻이 나왔다.
결국 작작(綽綽)은 '느슨하다'의 중복으로 어떤 일에 처하여 침착하며 여유 있고 느긋한 모습'을 뜻한다.
좋게 보면 신선놀음이고, 마음이 바쁜 사람에게는 속 터지는 일이다.
여유작작도 때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혼돈이다. 두 개의 큰 강이 서로 부딪히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은 뱃사공이 없는 나룻배를 타고 혼돈의 강을 건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질 자리에 있는 자들은 책임은 방기하고 국민을 위하는 척 연기하며 권력놀음만 하고 있다. 그렇게 여유작작하고 싶으면 지와를 따르라. 그대들은 엄동설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아스팔트 위에서 눈사람이 되어 있는 청춘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 외 卓(탁)과 관련된 글자들
卓(높을 탁)의 갑골문은 匕(비수 비)와 손잡이가 달린 키 혹은 채(광석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의 일종으로 이루어졌다. 匕(비)는 여기서 나란하다(比)의 뜻으로 쓰였다. 즉, 대나무나 고리버들울 결어서 만든 도구(키(箕), 채, 어망, 사냥용 그물 등)를 가리킨다.
키(箕) 또는 뜰채로 가루나 찌꺼기를 거르기 위해서 체질하는 모양에서 '흔들다'는 뜻이 나왔으며 또 키(箕)나 뜰채를 들어 올리는 모양에서 '높다'라는 뜻이 나왔다. 이는 키(箕)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나파'가 뒷받침한다. 나파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 또는 '채(sieve)'를 의미하며 위치로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이리저리 움직이다, 흔들다'를 뜻하는 '누프'에서 유래되었다.
두려움이나 슬픔으로 마음이(心) 체질하듯이 흔들리고 떨리며, 감정이 격앙되어 심리적 파고가 높아지는(卓) 것을 悼(슬퍼할 도)라 하고, 손을(手) 높이 들어 체질하듯이(卓) 좌우 또는 상하로 흔드는 것을 掉(흔들 도)라 하며, 나무 막대기(木)를 손에 잡고 체질하듯이(卓)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棹(노 저을 도)라 한다.
그런가 하면, 키가 높은(卓) 사람을 倬(클 탁)이라 하고, 해가 높이 떠오르는 것을 晫(밝을 탁)이라 하며, 수분이 높은 것을 淖(진흙 뇨)라 한다.
한편 鋽(불리지 않은 쇠 조)는 캐낸 광석(金)의 불순물을 거르기 위해서 체질(卓)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