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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 Sep 14. 2024

代 누가 무엇을 대신할까

[한자어원일력] 2024년 9월 14일 한자

항우는 고대 중국 진나라의 장수이자 서초를 건국한 서초의 패왕이다. 그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숙부인 항량(梁) 밑에서 자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글과 검술을 배웠지만 성의가 없었다. 이에 대하여 숙부인 항량이 화를 내자, 항우는 "글은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으로 족하고, 검술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어서 배울 만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저는 만인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항량이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쳤는데, 항우는 기뻐하였지만 그 마저도 끝까지 배우려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 항우는 기골이 장대하여 키가 8척에 이르고 큰 청동 솥을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며, 검술과 각종 병장기를 잘 다루었다고 한다. 


나중에 숙부 항량은 살인을 하고 항우와 함께 달아나 오중(吳中:지금의 장쑤성 소주蘇州)에서 정착해서 살았다. 마침 시황제가 유람을 다녀오다가 그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행차를 지켜본 항우가 말하길 "저 사람의 자리를 취하여 내가 대신할 것이다)(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취이대지取而代之이다. '취(取)하여 그것을 대신(代身)하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지위나 자리를 빼앗아 자신이 대신하거나,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을 대체한다는 뜻이다.  이 고사는  《사기()》의 〈항우본기()〉편에 실려 있다. 


취이대지取而代之에서의 代'는 사람 과 주살 익으로 구성되었다. 익弋은 원래 땅에 박혀있는 말뚝을 그린 글자로 '말뚝'이 본뜻이다. 후에 끈을 묶어놓은 말뚝의 모양과 줄이 달린 화살(주살)의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주살'이란 뜻도 나왔다. 나중에 나온 뜻이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격으로 주인자리를 차지했다.

    弋 주살 익


말뚝은 여기서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말뚝은 '정착하다'를 뜻한다. 흔히 군대에서 쓰는 말로 ‘말뚝 박다’라고 할 때의 그 말뚝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말뚝 박다'라는 말에 대해서 국어사전에는, “자신이 하던 일을 장기간, 또는 계속할 때 쓰이는 말, 주로 군인 특히 병사들이 직업 군인으로 군대에 남을 때 흔히 쓰임”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는 군대에 말뚝 박은 직업군인을 뜻하는 것일까? 그 생각은 지금 우리 시대와 너무 가깝다. 왔던 길을 조금 더 되돌아가보기로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푸른 초원이 보이고,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눈에 띄는 하얀 천막이 보이고, 천막의 한쪽 귀퉁이에는 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말뚝을 박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 모습을 그린 글자가 대신할 대代이다. 유목민들의 관용적인 표현으로 '말뚝을 박다'라는 말은 곧 '정착하다, 머물다'라는 뜻이며, '말뚝을 뽑다'라는 말은 '이동하다'라는 뜻이다. 


이렇듯 代는 말뚝을 박고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으로, 원래의미는 '정착하다, 머물다'이다. 이렇게 말뚝을 박고 정착하여 한 세대世代가 지나면, 그 대(계보)를 잇는 자식이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새로운 말뚝을 박고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세대, 계보'등의 뜻이 나왔다.  


말뚝을 영어로는 stake라고 한다. 원래 텐트를 고정시키기 위해서 쐐기형태로 끝을 다듬은 나무 막대기를 뜻했다. 후에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지계표나 울타리, 어떤 것을 적은 종이를 고정시키는 막대기 등으로 쓰임새가 넓어졌다. 


한편 pull up stakes는 직역하면, '말뚝을 뽑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장소로 '거주지를 이동하다'는 뜻이다. 또 '이해 당사자'를 뜻하는 stakeholder는 말뚝을 뜻하는 ‘stake’와 잡다를 뜻하는 ‘holder’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때 말뚝은 땅과 땅을 구분하기 위해서 그 경계에 세웠던 지계표를 가리키고, 그것을 잡고 있는 사람은 주인 혹은 임대인과 같은 '이해 당사자'를 뜻한다. 


영어 stake(말뚝)의 쓰임새는 한자 代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반갑지 않은 글자, 빌릴 대貸 돈을 빌려줄 때, 대신代 말뚝을 박았던 담보물을 뜻한다. 여기서 代는 영어 stakeholder 와 같은 맥락이다. 돈을 빌릴 때 이해 당사자로서 말뚝을 잡고 있는 사람人을 가리키며, 돈을 빌리는 값으로 대신代 제공한 연대보증인이나 담보물(땅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빌릴 때는 기울어진 셈법이 적용된다. 빌리는 돈보다 값어치가 더 많이 나가는 물건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빌릴 대貸는 ‘틀리다, 어긋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자형을 달리하여 ‘빌리다’는 '대貸'로 쓰고, ‘틀리다’는 '특貣'으로 분화시켰다.     

 

담보 혹은 보증인을 세우고 돈을 빌리는 이 방식을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라와’라 불렀다. 히브리어 라와의 기본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물에 ‘연결하다, 결합하다’를 의미하는데, ‘빌리다, 돈을 꾸다’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돈을 빌리려면 가족이나 동업자 등 자신과 어떤 관계로 연결된 사람을 보증인으로 세우거나 담보물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빌리는 자는 빌려주는 자의 노예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잠 22:27).  

    

한편 ‘관대寬貸하다’에서 대는 ‘용서하다’를 뜻한다. 이는 신탁시대의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고대에는 재앙이나 질병은 인간이 죄를 지어 하늘이 심판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재앙이나 병이들면,  제사장 앞에 나아가 돈이나 물건을 대신 헌납하고 하늘에 용서를 비는 제사를 지냈다. 이때 헌납하는 헌금은 죄를 돈으로 환산한 죄의 값으로 여겨졌다. 모르긴 해도 16세기에 교황청에서 발행한 면죄부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황충 특蟘에도 빌릴 대가 들어있다. 여기서 대貸는 ‘빌리다, 담보하다’의 본래 의미인 ‘연결하다, 결합하다’를 뜻한다. 황충은 메뚜기를 말한다.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벌레 충虫 ‘연결하다, 결합하다’를 뜻하는 대를 더해, 떼를 지어貸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뜻한 것이다.   

   

어쩌면 자연에게 인간은, 펄 벅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떼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빌려貸 쓰는 지구, 이자도 내지 않는데 상처까지 주면 틀릴 특貣이 되니까 살살, 소중히, 그리고 감사하며 사용해야 한다. 비록 모습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대손손代代孫孫 이 땅에 말뚝을 박고 살, 후 세대들에게代 황충蟘이란 소리 듣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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