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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Aug 25. 2023

돈과 피 - Pacta sunt servanda

개관 | 민법의 기본원칙 | 계약의 성립 및 이행

 민법은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재산과 가족을 규율한다. 이번 장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돈과 피가 어떻게 흐르는 지를 간단히 알아본다.


1) 개관


민법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대원칙을 바탕으로,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룬다.


한편 민법을 공부할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계약은 왜 지켜져야 할까?"라는 질문이다.


사실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은 교과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계약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들이 그렇게 하기로 의도하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스쿨 시절 위 설명이 어쩐지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가령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두 질량 있는 물체에 서로 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것은, 실험으로 확인되는 보편적인 진리이다. 이와 비교하면 민법이 기대고 있는 대원칙의 근거가 너무 허술하게 느껴졌다. 계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소송을 하고 국가가 강제집행까지 도와주는데, 계약이 갖는 구속력의 바탕이 좀 더 대단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로스쿨을 졸업한 후에야 해당 질문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과거 사회를 지탱하였던 원칙은 신분제와 종교였다. 신분과 종교는 사람들이 꼭 따라야 하는 당위로서 여겨졌다. 사람들은 이 원칙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일하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죽었다. 신분은 세습이 되고, 종교는 신성의 영역으로 군림하였다.


오늘날 신분과 종교는 과거처럼 절대적인 원칙과 당위로서 작동하지 못한다. 그럼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당위(should)는 무엇일까?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원칙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이다. 그리고 이 원칙들이 두 주체 간 성립된 '계약'에 '꼭 지켜져야 한다'는 당위를 부여한다. 두 존엄한 주체가 서로 합의 하에 약속하였다면, 그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 현대의 당위이다.


구속력이 부여되어 계약이 더 잘 지켜지게 되고, 그 결과 사회가 촘촘하게 분업화 · 산업화 되었다. 결국 사람은 '계약'이라는 도구를 통해 분업화된 현대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교리나 신분이 아닌 자신을 이루며 산다.


그럼 민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민법의 기본원칙을 알아보자.


2) 민법의 기본 원칙


 민법의 기본 원칙 중 사적 자치의 원칙이란, 개인은 자신의 법률관계를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10조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그리고 일반적 행동의 자유가 보장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며 각자에게 소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원칙으로부터 인격 존중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 소유권 존중의 원칙, 유책성의 원칙 등이 도출된다.


 특히 계약자유의 원칙을 살펴보면, 계약은 자유롭게 체결할 수 있고 맺어진 계약은 이행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계약자유의 원칙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①계약체결 여부의 자유, ②상대방 선택의 자유, ③계약내용 형성의 자유, ④계약방식의 자유, ⑤양성평등의 원칙이 있다. 한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큼이나 형평의 가치 또한 중요시된다(헌법 제23조 제2항, 민법 제2조).


3) 법률행위 → 채권 • 물권


 사람의 행위 중에 '법률적 효과'를 의도한 행위를 '법률행위'라 한다. 법률행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계약이다. 법률행위의 결과 사람은 권리를 갖게 되는데, 민사적 권리에는 채권과 물권이 있다. 채권은 특정인을 상대로 행위를 요구할 수 있고 그 급부를 보유할 수 있는 권리이다(청구력, 급부보유력). 물권은 절대권으로서 모든 이들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며, 물권을 방해하는 자에게 물권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채권의 변동을 일으키는 법률행위를 채권행위라 하며, 계약이 가장 대표적이다. 물권의 변동을 일으키는 법률행위를 물권행위라 한다. 법률행위 이외에 상속, 공용징수, 판결 등에 의해서도 물권의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민법 제187조 참조).


 법률행위의 성립요건은 ㉠당사자, ㉡의사표시, 그리고 ㉢목적이다. 각 성립요건에 문제가 있으면 계약 등을 취소할 수 있거나, 처음부터 무효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문제의 상황’에서 살펴본다.


4) 계약의 성립, 내용 및 소멸


 법률행위 중 계약이란 서로 대립하는 2개 이상의 의사표시가 합치하는, 채권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이다(국가법령정보센터, 법령용어사전). 이는 존엄하고 합리적인 두 주체가, 법적으로 구속되려는 의사를 갖고 행한 약속이므로 구속력을 갖는다. 계약의 성립은 청약과 승낙으로 의사가 합치되면 이루어진다. 청약이란 승낙만 있으면 곧 계약이 성립하는 확정적인 의사표시이다. 한편 요즘은 많은 계약들이 약관으로 이루어지는데, 불공정을 막기 위해 약관규제법이 시행 중이다.



[자본론, 마르크스]

하나의 계약 안에 표현되는 이 법적 관계는 그 계약이 발달된 법체계의 일부를 이루는가에 상관없이 두 사람의 의사관계이며, 이 관계에는 경제적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양창수, 민법입문 제6판 에서 재인용).


 계약의 구분으로는 쌍무계약(계약의 각 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는 채무를 부담)과 편무계약(당사자 일방만이 급부 부담), 낙성계약(의사만으로 성립)과 요물계약(계약의 성립에 목적물이 필요), 그리고 요식계약(일정한 형식에 의해 계약 성립) 등이 있다.


 계약의 내용은 무궁무진할 수 있으나, 역사상 전형적으로 이루어진 계약의 종류는 14가지이다. 전형계약에는 증여 · 매매 · 교환 · 소비대차 · 사용대차 · 임대차 · 고용 · 도급 · 현상광고 · 위임 · 임치 · 조합 · 종신정기금 · 화해가 있다. 비전형계약이란 위의 전형계약에 속하지 않는 계약을 의미한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성립한 계약은 그 내용대로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 그리고 사회는 계약이라는 장치로써 작동된다. 한편 계약의 성립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취소할 수 있고, 계약 내용이 부당하면 무효가 된다. 계약이 완전하게 이행되면 그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가 소멸한다. 혹은 채권이 이행되지 않은 채 시간이 오래 흐르면 소멸한다. 물권의 경우 목적물이 파괴되거나 목적물을 양도하면 소멸한다.


 나아가 이중 매매란 소유자가 여러 매수인에게 중복적으로 물건이나 부동산을 파는 경우이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르면 이중 매매 또한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매도인이 제2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면 제2매수인이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자가 된다. 그리고 제1매수인의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이행이 불가능하게 된다. 제1매수인은 매도인에 대하여 이행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한편 제2매수인이 매도인의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한 경우, 이중매매는 반사회질서 행위로서 무효이다.


5) 계약의 이행

① 개관

계약이 성립되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가서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 원칙이다(지참채무 원칙). 계약의 이행이 불완전하면 완전한 이행을 청구하거나, 계약을 해제하거나, 그로 인한 손해를 채권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② 동시이행의 항변권

 계약 중에 쌍무계약은 양 의무가 서로 대가적이므로 동시에 이행되어야 한다. 쌍무계약상의 의무 이행을 요구받으면, 상대방의 의무도 이행하라고 항변하는 것을 동시이행의 항변이라 한다. 동시이행의 항변을 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쌍무계약에 의한 대가적 채무의 존재,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 도달, ㉢상대방의 이행 또는 이행의 제공이 없을 것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령 도급계약에서 완성된 물건의 인도와 수급인의 보수 지급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


민법 제536조(동시이행의 항변권)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채권의 실행 개관 및 변제

 채권이 실행되면 소멸한다. 채권의 소멸은 절대적 소멸과 상대적 소멸로 나뉜다. 절대적 소멸이란 채권 자체가 없어지는 것으로, 그 사유로는 변제 · 대물변제 · 공탁 · 상계 · 경개 · 면제 · 혼동이 있다. 상대적 소멸이란 채권의 주인이 바뀌는 것으로, 채권을 넘긴 자의 입장에서는 채권이 소멸한 것이 된다. 상대적 소멸 사유에는 채권양도가 있다.


 특히 변제는 채무자나 그 이외의 자가 채무의 내용에 따라 급부를 제공하여 채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는 민법 제460조∼제486조에서 규율한다. 한편 채무 중에서 수단채무는, 채무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아도 성의를 갖고 행위를 다하면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으로 본다.


제460조(변제제공의 방법)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채권자가 미리 변제받기를 거절하거나 채무의 이행에 채권자의 행위를 요하는 경우에는 변제준비의 완료를 통지하고 그 수령을 최고하면 된다.


제461조(변제제공의 효과) 변제의 제공은 그 때로부터 채무불이행의 책임을 면하게 한다.


[대법원 1988. 12. 13., 선고, 85다카1491, 판결]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진료채무는 질병의 치유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채무가 아니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해야 할 책무 이른바 수단채무라고 보아야 하므로 진료의 결과를 가지고 바로 진료채무불이행사실을 추정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이치는 진료를 위한 검사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④ 담보

 한편 계약의 이행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저당권 등 담보를 설정하기도 한다. 채무자는 자신의 재산이나 타인의 재산에 담보를 설정할 수 있다. 담보가 설정된 물건 • 부동산 • 채권이 제3자에게 매각되면 저당권 • 질권 등이 설정된 채로 제3자에게 넘어간다. 끝내 계약이 이행되지 않은 경우, 채권자는 담보를 실행하여 물건 등을 팔아 그 매각대금으로 채권을 충당한다. 그러면 매수인은 자신의 소유물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채무자(매도인 등)에게 그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한편 매수인은 경매를 막기 위하여 채무를 대신 갚고, 채무자에게 갚아준 돈을 돌려달라고 구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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