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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Feb 08. 2024

​살인의 처벌에 응보적 정의를 고려하는 것은 야만인가

사형제 2


1. 사형의 개념과 역사


    사형이란 수형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다. 사형제도는 BC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최초로 성문화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시대의 '8조 법금'에 사형이 있었다. 18세기 이후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사형제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현재까지도 그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2022년 기준 87개국에서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다.


2. 사형제 운영의 현황


    우리나라는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20개의 법률에서 155개의 범죄에 대해 사형을 법정형으로 정하고 있다. 이 중 사형만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는 범죄는 형법 제93조의 여적죄와 군형법 제5조 군사반란죄이며, 나머지는 상대적 법정형으로 되어 있다. 작량감경 등을 고려하면, 반드시 사형이 선고되어야 하는 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법  제41조(형의 종류) 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사형  2. 징역  3. 금고  4. 자격상실  5. 자격정지  6. 벌금  7. 구류  8. 과료  9. 몰수


형법 제93조(여적)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3. 사형존폐론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사형존치론과 사형폐지론이 대립한다. 우선 사형존치론의 주요 논거로는 다음 네 가지가 있다. ①절대적 응보형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생명을 박탈한 범죄자에 대해서는 생명박탈로써 처벌하는 것이 정의롭다. ②인간은 생에 대한 애착과 의지를 지니므로 사형의 예고는 범죄예방을 위한 강력한 위하력을 갖는다. ③국민들도 극악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사형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④사형의 폐지는 정치문화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고, 현실적으로 사형의 폐지는 시기상조이다.


    한편 사형폐지론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사형은 복수심과 같은 본능에 근거하는 야만적인 형벌이며, 범죄자를 처벌하는 명목으로 제도적 살인을 하는 셈이다. ②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전제인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반한다. ③오판에 의하여 사형이 집행된 경우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 ④사형이 위하적 효과 및 예방적 효과가 있다는 점에 대한 자료가 없다. 사형존치국가의 중죄 발생빈도가 사형폐지국가의 것보다 현저하게 낮은 것이 아니다. ⑤사형은 범죄인에게 교화와 개선의 기회자체를 박탈하므로 형벌의 진정한 의미가 없다.

 

4. 사형에 대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


    대법원은 90도2906 판결에서 헌법 제12조 제1항이 처벌의 종류를 제한한 바 없고, 형사정책적으로 사형을 처벌로 규정하여도 헌법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2008헌가23 결정에서 ①헌법 제110조 제4항에서 사형이 언급되고, ②생명권 또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기본권이며, ③사형제도는 헌법 제37조 제2항을 위반하여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고, ④사형제도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지와 사형제가 위헌인지 여부는 구분해야 하며, 사형제 폐지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논의할 문제라고 밝혔다.


대법원 1991. 2. 26. 선고 90도2906 판결

헌법 제12조 제1항에 의하면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이 법률에 위임되어 있을 뿐 그 처벌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과 국민의 도덕적감정 등을 고려하여 국가의 형사정책으로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형법 등에 사형이라는 처벌의 종류를 규정하였다 하여 이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 2010. 2. 25. 선고 2008헌가23 전원재판부 [형법제41조등위헌제청]

〇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심사의 범위

 사형제도가 위헌인지 여부의 문제는 성문 헌법을 비롯한 헌법의 법원을 토대로 헌법규범의 내용을 밝혀 사형제도가 그러한 헌법규범에 위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서 헌법재판소에 최종적인 결정권한이 있는 반면, 사형제도를 법률상 존치시킬 것인지 또는 폐지할 것인지의 문제는 사형제도의 존치가 필요하거나 유용한지 또는 바람직한지에 관한 평가를 통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입법부가 결정할 입법정책적 문제이지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극악한 범죄 중 극히 일부에 대하여서라도 헌법질서내에서 사형이 허용될 수 있다고 한다면 사형제도 자체를 위헌이라고 할 수는 없고, 사형제도 자체의 합헌성을 전제로 사형이 허용되는 범죄유형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될 뿐이며, 이는 개별 형벌조항의 위헌성 여부의 판단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〇 사형제도의 헌법적 근거

 헌법 제110조 제4항은 법률에 의하여 사형이 형벌로서 규정되고 그 형벌조항의 적용으로 사형이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이라도 단심으로 할 수 없고 사법절차를 통한 불복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으로, 우리 헌법은 문언의 해석상 사형제도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


헌법 제110조 ④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〇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및 생명권의 제한이 곧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침해인지 여부(소극)

 헌법은 절대적 기본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아니하며,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비록 생명이 이념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생명권의 경우, 다른 일반적인 기본권 제한의 구조와는 달리, 생명의 일부 박탈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권에 대한 제한은 필연적으로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하게 되는바, 위와 같이 생명권의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생명권의 박탈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〇 사형제도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하여 생명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1) 사형은 일반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하를 통하여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며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통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당해 범죄인의 재범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함으로써 사회를 방어하려는 것으로 그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은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

(2) 사형은 무기징역형이나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보다도 범죄자에 대한 법익침해의 정도가 큰 형벌로서, 인간의 생존본능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까지 고려하면, 무기징역형 등 자유형보다 더 큰 위하력을 발휘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범죄억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극악한 범죄의 경우에는 무기징역형 등 자유형의 선고만으로는 범죄자의 책임에 미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가족 및 일반국민의 정의관념에도 부합하지 못하며, 입법목적의 달성에 있어서 사형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사형보다 범죄자에 대한 법익침해 정도가 작은 다른 형벌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사형제도가 침해최소성원칙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오판가능성은 사법제도의 숙명적 한계이지 사형이라는 형벌제도 자체의 문제로 볼 수 없으며 심급제도, 재심제도 등의 제도적 장치 및 그에 대한 개선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오판가능성을 이유로 사형이라는 형벌의 부과 자체가 위헌이라고 할 수는 없다.

(3) 사형제도에 의하여 달성되는 범죄예방을 통한 무고한 일반국민의 생명 보호 등 중대한 공익의 보호와 정의의 실현 및 사회방위라는 공익은 사형제도로 발생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권이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인명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등의 극악한 범죄에 대하여 한정적으로 부과되는 사형이 그 범죄의 잔혹함에 비하여 과도한 형벌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형제도는 법익균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〇 사형제도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반되는지 여부(소극)

 사형제도는 우리 헌법이 적어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일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가 생명권 제한에 있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헌법적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볼 수 없는 이상, 범죄자의 생명권 박탈을 내용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으며, 사형제도는 형벌의 경고기능을 무시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그 중한 불법 정도와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으로서 범죄자가 스스로 선택한 잔악무도한 범죄행위의 결과인바, 범죄자를 오로지 사회방위라는 공익 추구를 위한 객체로만 취급함으로써 범죄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한편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하는 법관 및 교도관 등이 인간적 자책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제도가 법관 및 교도관 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형벌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〇 형법 제250조 제1항 중 ‘사형, 무기의 징역에 처한다’는 부분이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소극)

 형법 제250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살인의 죄는 인간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의 전형이고, 이러한 범죄에는 행위의 태양이나 결과의 중대성으로 보아 반인륜적 범죄라고 할 수 있는 극악한 유형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에 대하여 5년 이상의 징역 외에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규정한 것은 하나의 혹은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의 선택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5. 살인죄의 처벌에 응보적 정의를 고려하는 것은 야만인가


    위 결정에 따르면, 생명권도 다른 기본권처럼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는 권리이고, 사형을 처벌 중 하나로 정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또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위하적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극악무도한 죄에 대해서는 그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써 사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결정이므로, 헌법재판소가 이번 헌법소원 결정에서는 다른 입장을 낼 수 있다.


    한편 형벌은 범죄자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정의를 지키는 일이지만, 범죄자를 교화하고 개선시키는 것 도 형벌의 중요한 목적이다. 그런데 사형을 집행하면 범죄자의 존재가 사라지게 되고, 교화와 개선의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 나아가 오판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이것은 사법제도의 숙명적인 과제이지 사형제도의 문제점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판의 결과 사형이 선고되어 집행될 경우, 억울한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즉 징역이나 벌금과 같은 다른 형벌과는 달리 사형은 그 피해가 치명적이고 불가역적이다. 따라서 오판의 문제가 사법제도의 과제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법정형에 사형을 포함시키는 것이 합헌적인지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현재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들이 더 많다. 또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현재 검찰이 사형을 구형해도 법원은 대부분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위의 점들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형제는 생명권을 침해하는 제도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생명은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치이며 최선을 다해 보호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형은 그런 생명을 무참히 파괴한 자들에게 제한적으로 내려지는 벌이다. 특히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의 무게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형벌은 죄의 책임에 비례하여 결정되어야 하는데, 살인이 아니었으면 피해자가 누렸을 생과 희노애락의 가치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남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겪는 슬픔을 헤아릴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함무라비 법전이 쓰여진 옛날보다도 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침해한 법익이 가늠할 수 없이 크고, 징역 등의 방법으로도 그 죄의 책임을 다할 수 없을 때 사형이 선고된다.


    또한 사형제를 공포심과 복수심에 기댄 야만적인 제도라고 볼 수 없다. 죽음은 원시적인 공포이고, '죄를 지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범죄자들에게 기타 형벌과는 다른 수준의 경고가 된다. 또한 응보적 정의는 형벌의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피해자들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는 것만으로도 정의롭다고 느낀다. '죄인을 왜 살려두나'라며 우는 피해자들의 부모를 두고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다. 사형을 두고 '제도적 살인'이라고 하지만, 사형은 사회 제도가 완성되기 전부터 작동되던 가장 오래된 벌이다. 이는 사형이 주는 공포심과 응보적 효능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으로도 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밝혔듯이, 사형은 사형이 형벌로 정해져있음을 알고도 범죄자가 스스로 선택한 범죄행위의 결과이다. 피해자의 죽음은 그저 억울하고 슬픈 것이지만, 사형수는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과 존엄을 위해 죽는다. 결국 사형제를 야만으로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헌법 제110조 제④항에 사형이 언급되고 헌법 조항 간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형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 95헌바3 결정에 의하면, 헌법 규정상호간에 효력상의 차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사형제가 헌법 제10조 및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면, 헌법 제110조 제4항도 위헌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헌법은 하나의 통일된 가치 체계를 이루고 있는 최고법이므로, 헌법의 일부가 위헌일 수는 없다. 따라서 사형제가 현행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단,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사형을 폐지하거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입법해 운영하는 것은 입법정책적으로 가능한 시도이다. 또 사형폐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면, 헌법개정을 통해 헌법 제110조 제4항이나 헌법 제12조 제1항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형법총론 제6판, 김성돈 지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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