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3
살인자ㅇ난감에는 조선의 왕자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죄와 벌에 대해 말한다.
한 개인이 죽어 마땅한자를 죽이는 것은 정의인가? 사적복수는 정의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한 개인이 정의와 불의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은 불완전하고 유한하므로 정의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의 판단에 따라 타인을 단죄할 수도 없다.
또 범죄자를 찾고 처벌하는 과정에는 유형력이 사용된다. 벌은 정의를 위한 것이지만, 이에 수반되는 폭력에는 부정적인 속성이 있다. 따라서 '벌'은 신중해야 하며 한 개인이 소신껏 할 수 없다. 이탕도 본인의 행위가 지닌 폭력성 때문에 무척 힘들어한다. 송촌은 처벌에 내재된 폭력을 마구 휘두르다가 가죽장갑을 낀 괴물이 되었다.
벌이 본질적으로 갖는 폭력성은 제도 내의 처벌에서도 유지된다. 가령 사형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지만, 사형 역시 그 본질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를 위한다는 목적은 사형의 부정적인 속성을 완전히 정화하지 못한다. 이를 이유로 사형제 폐지에 대한 논란이 18세기부터 지속되고 있다.
즉 개인은 유한한 존재라서 정의를 판단하기 힘들고, 처벌은 폭력성을 내재한다. 따라서 죄와 벌은 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합의해서 법으로 정해야 한다. 그리고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폭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차와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범죄자는 절차 속에서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피고인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변호하고,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고인에게 죄가 인정된다면 비로소 공권력을 통해 죄의 무게만큼 벌하게 된다.
그런데 사법제도가 부패하면 영웅을 기다리는 것 외에 어쩔 도리가 없다. 노빈은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 정의에 그나마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한데, 부패한 시스템은 오히려 살인자의 장난감이 된다. 그래서 장난감은 난감하다.
[사진출처]
https://www.imdb.com/title/tt28642796/mediaviewer/rm240796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