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자연 Jha Eon Haa Mar 06. 2024

직업의 자유에 대하여

정부의 의료개혁과 의사 집단사직

1. 상상 속의 유토피아


문과대학에서 교양이나 전공수업들을 듣다 보면, 유토피아의 정의를 여러 번 배우게 된다. 토머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다.


대학생 때 유토피아는 어떤 곳일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어리고 순진해서, 유토피아의 조건을 따질 때 가난과 병과 이별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며 일을 떠올린 건, 마냥 어린 생각만은 아니다. 가령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사랑과 일은 인간다움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직업은 사랑만큼이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헌법은 직업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정하여 보호한다.


2. 의대 증원과 전공의 집단사직


한편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해 의사 측이 반발하면서 직업의 자유가 최근 문제되었다. 정부는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가량 증원할 계획이다. 그리고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으로 건강보험금 고갈문제와 필수과 기피현상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레지던트 및 인턴들은 정책에 반발하며 수련하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병원을 지키는 의료진분들께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아프신 분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으시길  바란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과 인턴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을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하였다. 그리고 해당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의료법 제66조 및 제88조에 따라 면허정지처분 및 형사고발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했다(의협은 직업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침해'로 선해한다).


의료법 제59조(지도와 명령) ①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ㆍ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  

③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2항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의료개혁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직업의 자유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리고 직업의 자유의 '제한'과 '침해'는 어떻게 구분할까?


3. 직업, 그리고 직업의 자유의 의미


우선 직업이란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행하는 모든 활동을 말하며, 그러한 내용의 활동인 한 그 종류나 성질을 묻지 않는다. 그리고 직업선택의 자유란 개인이 바라는 바에 따라 어떠한 직업이라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법률용어사전). 직업의 자유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직업 수행의 자유로 나뉜다.


헌법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재판소 2002. 4. 25. 선고 2001헌마614 전원재판부 [경비업법 제7조 제8항 등 위헌확인]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규정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좁은 의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그가 선택한 직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포함하는 "직업의 자유"를 뜻한다( 헌재 1998. 3. 26. 97헌마194, 판례집 10-1, 302, 314). 이러한 직업의 선택 혹은 수행의 자유는 각자의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편이 되고, 또한 개성신장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주관적 공권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한편으로는 국민 개개인이 선택한 직업의 수행에 의하여 국가의 사회질서와 경제질서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 객관적 법질서의 구성요소이기도 하다(헌재 1997. 4. 24. 95헌마273, 판례집 9-1, 487, 496).



4. 직업의 자유 제한과 침해의 구분 - 단계이론

1) 과잉금지원칙 -  기본권의 제한과 침해

직업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기본권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동시에 기본권은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 그리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한편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과도한 경우, 이를 기본권의 침해라고 규정하고 헌법에 위반된 것으로 본다.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 필요 적절한지, 침해에 해당될 정도로 과도한지 여부는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판단한다. 즉 기본권에 대한 '제한'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만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판단해 보았을 때 그 정도가 심해서 '침해'에 해당하면 위헌이다.


헌법 제37조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여러 기본권들 중 특히 직업의 자유는, 생계유지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인격의 발현과 행복추구와도 연관된다. 따라서 직업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직업의 자유 또한 기타 다른 기본권들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것이 아니고,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헌법 제37조 제2항).


헌법재판소 2002. 4. 25. 선고 2001헌마614 전원재판부 [경비업법 제7조 제8항 등 위헌확인]

국민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종사할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에 종사하며, 이를 변경할 수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삶의 보람이요 생활의 터전인 직업을 개인의 창의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케 함으로써 다양한 인격의 발현, 행복추구에 이바지하는 것이므로, 실로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경제ㆍ사회질서의 본질적 요소가 되는 기본적 인권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직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헌법을 관류하는 이념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기본정신이다. 이러한 헌법정신에서 볼 때 설혹 이를 제한하는 경우라도 반드시 법률로써 하여야 하고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등 정당하고 중요한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적정한 수단ㆍ방법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다.


2) 단계이론

한편 직업의 자유의 경우, 과잉금지원칙에 따라 기본권 침해를 판단할 때 단계이론이라는 특별한 방식을 따른다. 단계이론은 직업의 자유를 내용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그에 대한 제한의 강도를 상이하게 평가한다. 약한 단계의 제한으로 소기의 목적 달성을 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다음 단계의 제한이 허용된다.


우선 단계이론에 따라 직업의 자유는 ①직업 수행의 자유, ②주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 선택의 자유, 그리고 ③객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 선택의 자유로 구분된다. 그리고 직업의 자유 단계별로 각 과잉금지원칙의 세부 기준을 달리 적용한다.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비교적 쉽게 허용하고, 세 번째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완화된 과잉금지원칙에 의해 기본권침해를 판단한다. 직업 수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경우, 공익을 고려할 때 합목적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입법자에게 폭넓은 사회/경제정책적 형성의 여지를 인정한다.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는 영업지의 제한, 영업시간의 제한, 광고의 제한, 영업방법의 규제, 영업정지명령 등이 있다.


주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제한이란, 개인의 능력, 자격, 자질, 신체적 속성을 기준으로 한 제한이다. 각종 자격제도가 그 예이다. 해당 제한에 대한 심사는 엄격 과잉금지원칙이 적용된다. 그러한 "주관적 요건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그 직업에 종사하도록 방임함으로써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공공의 손실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고, 그 직업을 희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주관적 요건 자체가 그 제한목적과 합리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헌재 1995. 6. 29. 90헌바43). 한편 전문분야 자격제도에 관한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은, 그 직업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현저히 자의적인 경우에만 헌법 위반이다.


[자격제도에 관한 위헌심사기준]

과잉금지원칙을 적용함에 있어, 어떠한 직업분야에 관한 자격제도를 만들면서 그 자격요건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국가에게 폭넓은 입법재량권이 부여되어 있으므로, 다른 방법으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에 비하여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심사가 필요하다(헌재 2008. 9. 25. 2007헌마419).


마지막으로 객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제한이란, 객관적인 사정에 따라 직업의 선택을 불가능하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가령 직업의 수요를 심사하여 더 이상 진입을 금지하는 수요심사조항이나 정원제, 경비업자의 겸영금지 등이 그 예이다. 객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 선택의 자유제한은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 가장 그 자유 침해의 정도가 크다. 따라서 월등하게 중요한 공익을 위하여 명백하고 확실한 위험 방지 위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5. 업무개시명령의 위헌 여부


의사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일까?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님에 의하면, 업무개시명령은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고, 해당 제한에 대해서는 완화된 과잉금지원칙이 적용되므로 기본권 침해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해당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생명권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을 위한 조치였으므로, 더더욱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하셨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상희 교수님께서는 업무개시명령의 행사할만한 상황이었는지, 행사범위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따져볼 수 있다고 말하셨다(뉴시스 기사 참고).


한편 업무개시명령을 정하는 의료법 제59조에 대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된 적이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중에 정부가 공공의대를 추진하였는데, 전공의들이 이에 반대하며 파업을 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포괄적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의사 중 한 분이 의료법 제59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의료법 제59조가 '보건복지부 장관은 ...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이는 법률 자체로 업무개시명령이 발령되도록 정한 것이 아니라(보건복지부 장관은 ... 업무개시명령을 한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재량껏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의료법 제59조가 직접적으로 의사들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보건복지부장관의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처분이 의사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위 헌법소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지 않고, 의료법 제59조 제2항, 제3항을 그 대상으로 하여 각하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2021. 9. 7.자 2021헌마937 결정 [업무개시 명령 결정 등 위헌확인]

나. 의료법 제59조 제2항 중 ‘의료인’에 관한 부분에 대한 청구

법령에 근거한 구체적인 집행행위가 재량행위인 경우에는 법령은 집행기관에게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만 부여할 뿐, 법령 스스로가 기본권의 침해행위를 규정하고 행정청이 이에 따르도록 구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때의 기본권의 침해는 집행기관의 의사에 따른 집행행위, 즉 재량권의 행사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지고 현실화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인정될 여지가 없다(헌재 1998. 4. 30. 97헌마141; 헌재 2009. 3. 26. 2007헌마988등 참조).

의료법 제59조 제2항 중 ‘의료인’에 관한 부분은 ‘보건복지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행정청에게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 결국 의료법 제59조 제2항 중 ‘의료인’에 관한 부분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집행기관의 재량권 행사에 의하여 비로소 발생하는 것일 뿐 위 법령 자체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부분 심판청구는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인정할 수 없다.


[참고문헌]

의사 업무개시명령…'직업 선택 자유 침해' 위헌?[리얼팩트]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305_0002649209&cID=10201&pID=10200


전공의 1만명 사직했는데···정부-의료계 ‘대화창구’가 안 보인다

https://m.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402271604001


헌법강의, 김하열, 박영사


이전 05화 금복의 벽돌공장에서 인부가 죽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