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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Mar 12. 2024

‘종북’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할까?

대법원 2024. 1. 4. 선고 2022다284513 판결

1. 분단국가의 현실과 주홍 글씨

 한국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분단국가라는 점이다. 이념이 자본보다 한 없이 작아진 오늘, 한반도는 여전히 이념으로(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반 갈라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추종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하에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주류와 다른 의견들을 맹목적으로 종북, 빨갱이 등으로 비난한다면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 특히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북한과 관련된 특정 표현들은, 마치 주홍 글씨처럼 낙인 효과를 갖는다.


그렇다면 법의 영역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을까?


2.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그리고 '종북'의 의미

 우선 명예란 객관적인 사회적 평판이다. 그리고 표현행위로 인한 명예훼손책임이 인정되려면 ①사실을 적시함으로써, ②타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표현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사용된 표현뿐만 아니라 발언자와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 표현을 한 맥락을 등을 아울러 고려한다. 특히 정치적 표현의 경우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


 한편 타인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표현행위가 모욕적 ·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타인의 신상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는 등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 이념적 논쟁 과정에서 수사학적인 과장이나 비유적인 표현이라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종북'이라는 표현은 그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해당 용어는 시대적 ·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개념과 포함범위가 가변적이기 때문이다('종북'은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태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사회 세력', ㉢'북한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쓰인다). 또한 '종북'이라고 지칭된 사람이 해당 용어에 대해 느끼는 감수성도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북'이라는 정치적 표현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기보다 의견 표명에 가깝다.


3.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과 손해배상청구 사건(2022다284513)

 국정원은 2009년부터 2012년 대선 직전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악플을 다는 등의 방법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특히 국정원은 오늘의 유머를 주요 진보 커뮤니티로 보아 여론 조작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그 후 해당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 문제가 되었는데, 당시 국정원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종북사이트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오늘의 유머가) 종북세력이나 북한과 연계된 인물들이 활동할 가능성이 많이 있는 공간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에 오늘의 유머 운영진은 해당 종북 관련 발언이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그에 따른 재산적 ·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였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1) 국정원 대변인이 종북 관련 발언을 한 경위 및 내용은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고, 언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유보적 · 잠정적인 판단 내지 의견표명이다. 2) '종북'이라는 표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에 포함되는 범위가 유동적이며, 그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사이트에 대한 광의의 정치적 평가 내지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가 많다. 3) 설사 국정원 대변인이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보더라도, 해당 발언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특정인(오늘의 유머 운영진, 원고)의 평판이나 명성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4. 배우 문성근, 이정희 전 의원 부부를 '종북' 등으로 비난한 사건

 한편 대법원은 2018년에 탈북자 영화감독 정 모 씨 등이 배우 문성근에 대하여 종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에 대하여 명예훼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적이 있다(2016다23489). 문성근 배우는 2010년에 민주진보정부 수립을 목표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결성하였는데, 탈북자 정 모 씨 등은 그 캐치프레이즈에 ‘민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점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온라인에 ‘좌익혁명을 부추기는 골수 종북 좌익분자’, ‘골수 종북좌파 문익환(문 씨의 아버지)의 아들’, ‘종북의 노예’, ‘종북문화잔챙이’ 등의 글을 게시했다.


 대법원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특정인이 주사파로 지목될 경우 그는 반사회세력으로 몰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이므로, 이로 인하여 명예가 훼손된다고 보아야 한다. 종북(從北)이란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으로서 주사파와 같은 계열에 둘 수 있고...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다는 종북으로 지목될 경우 그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서 반사회세력으로 몰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이므로, 이로 인하여 명예가 훼손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위법성조각사유도 없으므로 피고들은 각 100만 원~500만 원 상당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이와 비교하여 보수논객 변희재 씨가 이정희 전 의원 부부를 ‘종북’, ‘주사파’라며 비난한 사건에서는, 해당 발언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2014다61654). 당시 대법원은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언론에서 공직자 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정치적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사실의 적시가 일부 포함된 경우에도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행위는 의견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 제기에 불과해 불법행위가 되지 않거나 원고들(이 전 대표 부부)이 공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분단 국가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옹호한다는 표현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5. 결론

 결국 위 세 판례를 종합하여 판단해 보면, '종북'이라는 표현으로 상대방을 공격한 경우, 무조건 명예훼손이 성립하거나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대신 '종북' 등의 표현이 언급된 맥락(언론 인터뷰였는지, 단순한 온라인에 게시글인지, 정치 논평이었는지), 해당 표현의 대상자가 지닌 지위(국정원 대변인, 배우, 국회의원), 표현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식('종북'이나 '주사파'보다, '종북의 노예' 혹은 '종북문화잔챙이'가 더 명예훼손적이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명예훼손 손해배상책임 여부를 결정한다.


 위와 같은 문제는 우리나라가 분단 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국가를 옹호한다는 표현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 이념적 단어도 다소 조심스럽게 사용된다.


판례 전문: 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2022%EB%8B%A428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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