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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Mar 21. 2024

호의를 기대하는 마음과 '부정한 청탁'의 구분

대법원 2024. 3. 12. 선고 2020도1263 판결

1. 부탁과 청탁을 가르는 선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산다. 타인으로부터 부탁을 받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이렇게 선물과 부탁을 주고받는 상황이 죄가 된다. 직업상 함부로 선물을 받으면 안 될 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부탁은 타인으로부터 호의를 기대하는 마음을 넘어, 형법상 '부정한 청탁'으로 판단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가령 형법 제357조 배임수증재와 형법 제130조 제3자 뇌물수수죄는, 일과 관련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산상 이익을 주고받는 경우 성립되는 죄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부탁, 즉 타인의 호의를 바라는 마음과, 범죄가 되는 '부정한 청탁'을 어떻게 구분할까? 


최근 대법원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에 대하여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해외여행비를 제공받은 점을 이유로 배임수재죄 유죄 취지 판결을 선고하였다. 해당 판결을 살펴보며 형법에서 '부정한 청탁'의 의미를 살펴보자. 나아가 현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3자 뇌물수수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본죄에서도 '부정한 청탁'이 문제 되므로 함께 살펴본다.


2.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배임수재죄 사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은 2011. 9. 1.부터 2011. 9. 9. 까지 유럽 여행을 하면서,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8박 9일 동안의 유럽여행 비용(약 3,973만 원)을 제공받았다. 해당 사안에 대하여 송희영 전 주필에 대해 배임수재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1) 배임수재죄의 정의

우선 배임수재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때 성립되는 범죄이다. 즉 배임수재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 임무관련성, ㉢ 부정한 청탁, ㉣ 재산상 이득, ㉤ 고의와 불법영득의사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타인과 대내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무를 처리할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되는 자이다. 또한 임무관련성은 재산권에 관련된 임무에 국한되지 않는다.


형법 제357조(배임수증재) 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부정한 청탁'의 의미 - 호의를 기대하는 내심과 '묵시적인 청탁'의 구분

특히 배임수재죄에서 '부정한 청탁'이란, 사회상규 또는 신의칙에 반하는 내용의 행위를 의미한다. 권한 범위 내의 선처나, 사교적 의례의 범위에 속하는 청탁, 정상적인 처리범위 내에 속하는 일이나, 기존 계약관계 유지의 차원은 부정한 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아가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 의사표시뿐만 아니라,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인정된다.


<'부정한 청탁'의 의미>

배임수재죄에 있어서의 ‘부정한 청탁’이라 함은 청탁이 사회상규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청탁의 내용, 이에 관련되어 취득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종류ㆍ액수 및 형식, 재산상 이익 제공의 방법과 태양, 보호법익인 거래의 청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야 하며, 그 청탁이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묵시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무방하다(대법원 2008. 12. 24. 선고 2008도9602 판결 등 참조).


그런데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 된다. 즉 선물을 준 사람이 상대방에게 구체적이고 특정한 내용의 청탁을 전달한 적이 없을 때, 상대방의 호의를 막연히 기대한 것으로 볼지, 아니면 부정한 청탁을 '묵시적'으로 전달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위 사안에서 대우조선해양은 송희영 전 주필에게 'A라는 기사를 써 달라'라는 식의 구체적이고 특정한 내용의 청탁을 전달한 적이 없다.


이에 2심 재판부는 대우조선해양이 송희영 전 주필에게 개별 사설, 칼럼의 게재에 관하여 청탁을 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대우조선해양은 우호적인 여론 형성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내심의 기대를 갖고 송희영 전 주필에게 여행 경비를 준 것이지, 특정한 현안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을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점에 대해 다르게 판단하고 해당 판결을 파기하였다.


사진 출처 :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1296


3) 대법원 2024. 3. 12. 선고 2020도1263 판결

대법원은 비록 대우조선해양이 구체적이고 특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어도, 대우조선해양의 대표이사와 송희영 전 주필은 우호적 여론 형성에 관한 청탁의 대가라는 점에 대해 서로 인식하고 양해를 한 상황에서, 4000만 원에 달하는 유럽여행 비용을 주고받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이러한 인식과 양해가 있는 이상 대우조선해양이 막연히 내심으로만 기대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고,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청탁의 대가로 송희영 전 주필이 거액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면 배임수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릴 때 송희영 전 주필의 지위, 송희영 전 주필과 대우조선해양 간의 관계,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상황, 제공된 재산상 이익의 정도, 언론의 공정성과 불가매수성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3.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죄 재판


한편, 제3자 뇌물수수죄도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어야 성립되는 범죄이다. 현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3자 뇌물수수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해당 사건을 살펴보며 위 죄를 함께 알아본다.


1) 제3자 뇌물수수죄의 정의

제3자뇌물수수죄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하여 상대방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상대방이 자신이 아닌 제3자에게 뇌물을 주도록 하면 성립되는 범죄이다. 즉 제3자뇌물수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 공무원 또는 중재인, ㉡ 직무관련성, ㉢ 부정한 청탁, ㉣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 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제130조(제삼자뇌물제공)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한편 공무원과 제3자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있을 것을 요하지 않는다. 또 제3자는 행위자와 공동정범자 이외의 사람이어야 하며, 교사범이나 종범도 제3자가 될 수 있다. 만약 제3자가 공무원의 사자이거나, 공무원이 생활비를 부담하던 사람이거나, 공무원의 채권자인 경우 등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면, 해당 범죄는 제3자뇌물수수죄가 아닌 단순수뢰죄(간접수뢰)에 해당한다.


2)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8도2738 전원합의체 판결 -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나아가 제3자뇌물수수죄에서도 '부정한 청탁'의 의미가 중요하며, 그 의미는 배임수재죄에서의 '부정한 청탁'과 의미가 유사하다. 특히 해당 범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롯데기업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롯데가 제3자인 K 스포츠재단에게 뇌물을 주게끔 한 사실에 대하여 제3자 뇌물수수죄가 성립된 것이다. 아래의 판결을 살펴보면, 제3자뇌물수수죄에서 '뇌물'과 '부정한 청탁'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뇌물의 의미]

 형법 제130조 제3자뇌물수수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는 행위를 구성요건으로 한다. 여기에서 뇌물이란 공무원의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매개로 제3자에게 교부되는 위법·부당한 이익을 말하고, 형법 제129조 뇌물죄와 마찬가지로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인정된다.


[부정한 청탁의 의미]

‘부정한 청탁’이란 청탁이 위법·부당한 직무집행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는 물론, 청탁의 대상이 된 직무집행 그 자체는 위법·부당하지 않더라도 직무집행을 어떤 대가관계와 연결시켜 직무집행에 관한 대가의 교부를 내용으로 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청탁의 대상인 직무행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도 없다. 부정한 청탁의 내용은 공무원의 직무와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 사이의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하면 충분하고, 이미 발생한 현안뿐만 아니라 장래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도 위와 같은 정도로 특정되면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다.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하여 당사자 사이에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는 경우에는 묵시적 의사표시로 가능하다.


[뇌물과 부정한 청탁의 판단]

제3자뇌물수수죄에서 직무와 관련된 뇌물에 해당하는지 또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직무와 청탁의 내용, 공무원과 이익 제공자의 관계, 이익의 다과, 수수 경위와 시기 등의 여러 사정과 아울러 직무집행의 공정, 이에 대한 사회의 신뢰와 직무수행의 불가매수성이라고 하는 뇌물죄의 보호법익에 비추어 이익의 수수로 말미암아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등이 기준이 된다.


3) 이재명 대표 측의 "실제로 이 대표에게 돈이 흘러간 사실이 없다"는 해명

이재명 대표는 두산, 네이버 등의 기업들로부터 직무와 관련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광고비 등을 제3자인 성남 FC에게 지급하도록 한 사실에 대하여 제3자 뇌물수수죄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2023. 2.경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이재명 대표는 반박문을 낭독하였다.


이재명 대표는 18페이지 분량의 반박문에서 "모든 혐의사실에서 이 대표에게 흘러간 돈의 흐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 대표에게 돈이 흘러간 사실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에 '제3자 뇌물죄'란 특이한 형태의 죄명이 들어갔다"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제3자뇌물수수죄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제3자에게 돈이 흘러가야 하고, 이재명 대표에게는 돈이 흘러간 사실이 없어야 성립는 범죄이다. 그리고 제3자 뇌물수수죄는 특이한 형태의 죄명이라 할 수 없고, 1953년에 제정되어 현재까지 적용되는 범죄이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같은 죄목이 적용되어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사진 출처 : https://www.dailian.co.kr/news/view/1272186


이재명 대표의 반박문은 마치 '이 대표는 돈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뇌물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이에 검찰은 이재명 대표를 단죄하고자 생소한 제3자 뇌물수수죄라는 죄로 처벌하려 한다'라고 읽힌다. 만약 이재명 대표가 반박문으로써 무죄를 주장하고자 하였다면, 위와 같은 말 대신 '기업들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 '직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없다' 등의 입장 표명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4. 정당한 부탁과 부정한 청탁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없고, 서로 간에 마음을 나누는 일은 아름답다. 다만 특정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이에 응해주는 과정에서 이윤을 누리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부당한 결정이 내려지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이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의 공공성, 정치인의 청렴성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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