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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Feb 28. 2024

금복의 벽돌공장에서 인부가 죽었을 때

중대재해처벌법 죄수의 문제 - 대법원 2023도12316 판결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제정, 시행, 유예가 모두 정치적으로 문제 된 법률이다.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란 무엇일까?


한편 사람의 행동은 연속적이므로, 행위를 적당히 나누고 각 행위에 대하여 불법을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형법에서 '1개의 행위'란 사람의 행동 중 얼마만큼을, 어떤 것을 의미할까?


대법원에서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판례가 선고되었다. 제철회사에서 방열판 보수 작업을 하던 중 방열판이 낙하하면서 피해자가 사망하였고, 원청회사 대표에 대한 처벌이 문제 된 사건이다. 해당 판결을 통해서 중대재해처벌법과 형법상 '1개의 행위'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자.


우선 중대재해처벌법이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 및 보건확보의무'라는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등을 처벌하는 법률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ㆍ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 호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2.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3. 중앙행정기관ㆍ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4.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제6조(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 ① 제4조 또는 제5조를 위반하여 제2조제2호가목의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가령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서, 여주인공 금복은 벽돌공장을 크게 한다. 금복은 인부들과 가마로 벽돌을 구워내고, 주방에서는 사람들을 먹일 음식을 하느라 바쁘다. 여름날 인부들이 땀 흘리며 일을 하는데,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그만 일꾼이 죽는 사고가 생긴다. 만약 이 사고가 금복이 충분한 안전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였다면, 검사는 금복을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로 기소하고 형사책임을 묻게 된다.


천명관 고래, 폭풍우가 쳤다가 생선 비린내가 났다가 신사는 하얀 양복을 고집하고 아주 이야기가 정신없이 그러나 힘 있게  흘러간다.


중대재해법의 특징으로는, 도급인이 아니라 '사업주나 대표자'를 처벌한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과정에서 회사 운영을 주로 하는 사업주에게 사망사고의 행위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 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또 법률조항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이미 산업 재해를 예방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도, 산업안전보건법과 형법에 의해 산업재해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ㆍ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1조). 나아가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의하면, 도급인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만약 도급인이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하게 되면 처벌받는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한다.


제167조(벌칙) ① 제38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제166조의2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39조제1항(제166조의2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또는 제63조(제166조의2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더하여 형법 제266조 업무상과실치사죄로도 산업 재해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ㆍ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결국 벽돌공장에서 인부가 사망한 경우, 금복에게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그리고 업무상과실치상죄라는 세 가지 범죄가 성립된다.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는 금복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서 성립된 죄이고,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금복이 벽돌 공장에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립되는 범죄이다. 나아가 금복에게 벽돌공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되면,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한편 금복의 행위를 하나로 볼 것인지, 위 세 가지 범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문제 된다.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위반', 그리고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을 각각 서로 다른 행위로 구분해서 보아야 할까? 아니면 모두 '금복이 벽돌공장의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을 표현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 대법원은 금복의 행위를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하나의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023도12316 판결에 의하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 보호법익, 행위태양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와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및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상호 간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형법 제40조의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판시했다.


즉 형법에서 '1개의 행위'란, 법적 평가를 떠나서 사회관념상 행위가 사물자연의 상태로서 1개로 평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위 사례에서 금복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그리고 형법을 각각 위반한 사정이 있지만, 이러한 법적 평가를 떠나 '금복이 벽돌공장을 운영하며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잘못'을 '사회관념상 행위 1개로 평가'하여 파악한다. 그리고 이러한 금복의 '1개의 행위'에 위 3가지 죄가 동시에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이를 상상적 경합이라고 한다. 상상적 경합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실체적 경합이 있다. 실체적 경합이란 수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법원은 왜 금복의 행위를 1개의 행위로 보고, 3가지 죄를 상상적 경합으로 처리하였을까? 우선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목적(산업 재해 예방)과 보호법익(생명 신체의 보호)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행위태양도 매우 유사하다. 금복에게 여러 법이 적용되어 죄가 3개나 성립되긴 했지만, '벽돌공장에서 여름에 인부가 일을 하다가 죽었고, 금복이 공장의 안전관리에 소홀한 잘못이 있다'는 점은 사회관념상 하나이다. 즉 '같은 일시 · 장소에서 같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을 방지하지 못한 부작위에 의한 범행에 해당하여, 각 그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와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는, 법 해석 전에 언어적 표현만을 보더라도 매우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는 모두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주의의무'에 포함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는 모두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죄라는 원형이 되는 죄가, 산업 현장에서 특수하게 처리되는 경우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도 모두 금복이 업무상 잘못을 하여 사람을 죽게 만든 상황이다. 그래서 세 법률이 금복에게 요구하는 의무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위 세 범죄를 상상적 경합으로 본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판례처럼 위 세 범죄를 상상적 경합으로 처리하면 피고인의 형량이 줄어들 수 있다. 실체적 경합으로 처리하면 가장 무거운 죄에서 1/2의 가중이 가능한데, 상상적 경합은 가장 무거운 죄의 형으로만 처벌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40조(상상적 경합) 한 개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하여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제38조(경합범과 처벌례) ① 경합범을 동시에 판결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하여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인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하여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2. 각 죄에 대하여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외의 같은 종류의 형인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하여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多額)에 그 2분의 1까지 가중하되 각 죄에 대하여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한 형기 또는 액수를 초과할 수 없다. 다만, 과료와 과료, 몰수와 몰수는 병과(倂科)할 수 있다.

3. 각 죄에 대하여 정한 형이 무기징역, 무기금고 외의 다른 종류의 형인 경우에는 병과한다.

② 제1항 각 호의 경우에 징역과 금고는 같은 종류의 형으로 보아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23도12316 판결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업무상과실치사,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산업재해치사)]


1. 공소사실의 요지

1)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의 점

피고인 A은 사업주인 피고인 B 주식회사(이하 '피고인 B'이라 한다)의 대표이사이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관계수급인인 C 소속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하도록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2022. 3. 16. 근로자인 피해자 D이 방열판 보수 작업을 하던 중 방열판이 낙하하면서 피해자를 덮쳐 피해자의 왼쪽 다리가 방열판과 바닥 사이에 협착되도록 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함과 동시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2)「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라 한다)위반(산업재해치사)의 점

피고인 A은 사업주인 피고인 B의 대표이사이자 경영책임자로서 피고인 B이 실질적으로 지배 · 운영 ·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거나, 도급 등을 받는 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기준 · 절차를 마련하는 등 종사자의 안전 · 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위와 같이 종사자 D이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하였다.


2. 죄수에 대한 판단

가. 상상적 경합은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형법 제40조). 여기에서 1개의 행위라 함은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행위가 사물자연의 상태로서 1개로 평가되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 1987. 2. 24. 선고 86도2731 판결, 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7도11687 판결 등 참조).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 보호법익, 행위태양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와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및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상호간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형법 제40조의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 그 구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 · 증진함'을 목적으로 하고(제1조),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 · 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위 각 법의 목적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산업재해 또는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또는 종사자의 안전을 유지 · 증진하거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 · 신체의 보전을 그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사람의 생명 · 신체의 보전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도 마찬가지이다.


2) 이 사건에서 피고인 A이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작업계획서 작성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산업안전보건법위반행위와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위반행위는 모두 같은 일시 · 장소에서 같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을 방지하지 못 한 부작위에 의한 범행에 해당하여 각 그 법적 평가를 떠나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와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


3)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는 그 업무상 주의의무가 일치하여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도2642 판결, 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5도5545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피고인 A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 따라 부과된 안전 확보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따라 부과된 안전 조치의무와 마찬가지로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주의의무를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 역시 행위의 동일성이 인정되어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


나. 결국 원심이 피고인들에 대한 쟁점 공소사실 부분을 상상적 경합 관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죄수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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