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위헌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마담 D는, 유언으로 그림 '사과를 든 소년'을 친구 무슈 구스타브에게 남긴다. 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는 어머니의 재산 중 가장 값진 것이 일개 호텔리어에게 넘겨진 사실에 분노한다(아래 멋진 애끼반지를 낀 애드리안 브로디). 그리고 무시무시한 조플링을 보내 그림을 되찾아오도록 한다(아래 무시무시한 반지를 낀 윌렘 데포. 우리나라 권해효 배우님과 닮지 않았나요?).
한편 위와 같은 상황에서 드미트리는 구스타브에게 소송을 제기하여 그림을 되찾아올 수 있는데, 이를 유류분반환청구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장남에게 상속재산의 대부분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나머지 상속인들에게도 최소한의 몫을 지켜주어, 상속재산의 공정한 분배를 도모하고 가족생활의 안정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유류분제도가 도입되었다. 우리나라 입법자들은 조플링처럼 충직하고 잔인한 부하가 없더라도 상속분의 일부를 지킬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최근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제1112조 및 제1118조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왜 유류분 제도가 도입된 지 근 50년 만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을까? 해당 결정을 살펴보면서 유류분 제도에 대하여 알아보고, 관련 조항 중 어떤 부분이 위헌으로 판단되었는지 알아보자.
유류분제도란, 피상속인(사망으로써 상속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자)이 자유롭게 증여 또는 유증 하는 것을 제한하여 법정상속인 중 일정 범위의 근친자에게 법정상속분의 일부가 귀속되도록 보장하는 민법상 제도를 말한다(민법 제1112조 ~ 제1118조). 유류분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입법자의 의도는, 공동상속인 사이의 공평한 이익이 피상속인의 증여나 유증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아가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 거래의 안전과 가족생활의 안정, 상속재산의 공정한 분배라는 대립되는 이익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구조가 변하고 가족제도의 모습 등이 크게 달라지면서, 유류분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이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리고 유류분 제도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도 및 헌법소원이 여러 번 제기되었고, 여태까지 기각 결정이 거듭 선고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헌법재판소가 유류분 제도에 대하여 위헌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유류분제도는 민법 제1112조에 따라 상속인의 법정상속분 중 2분의 1 혹은 3분의 1 까지를 보장해 주는 제도이다. 상속인은 민법 제1000조에 따라 정하고, 법정상속분은 민법 제1009조에 의하여 정한다. 그리고 민법 제1112조와 함께 위헌으로 결정된 민법 제1118조는 대습상속이나 특별수익자의 규정들을 유류분에 준용하는 규정이다.
제1000조(상속의 순위) ①상속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3.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
②전항의 경우에 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친등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공동상속인이 된다.
③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제1001조(대습상속) 전조제1항제1호와 제3호의 규정에 의하여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가 상속개시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에 그 직계비속이 있는 때에는 그 직계비속이 사망하거나 결격된 자의 순위에 갈음하여 상속인이 된다.
제1009조(법정상속분) ①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그 상속분은 균분으로 한다.
②피상속인의 배우자의 상속분은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비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존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③ 삭제
민법 제1112조(유류분의 권리자와 유류분) 상속인의 유류분은 다음 각호에 의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2.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3.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4.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제1118조(준용규정) 제1001조(대습상속), 제1008조(특별수익자의 상속분), 제1010조(대습상속분)의 규정은 유류분에 이를 준용한다.
유류분제도의 위헌성과 관련하여 재산권이 문제 되었다. 재산권이란 사적유용성 및 그에 대한 원칙적 처분권을 내포하는 재산가치 있는 구체적 권리이며(헌법재판소 1996. 8. 29. 선고 95헌바36), 헌법 제23조에 의해 보장된다. 유류분제도는 피상속인의 증여나 유증에 의한 자유로운 재산처분을 제한하고,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나 유증을 받았다는 이유로 유류분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되는 자의 재산권을 역시 제한한다(헌재 2010. 4. 29. 2007헌바144; 헌재 2013. 12. 26. 2012헌바467 참조).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유류분 제도를 규정하는 조항들 중에서, 제1112조 및 제1118조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기본권제한의 입법한계를 일탈하여 재산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헌법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ㆍ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계기가 되었다. 우선 피상속인이 배우자와 딸에게 재산을 증여하자 그 아들이 유류분의 반환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이 직권으로 위헌제청을 하였다(2020헌가4, 위헌제청이란 법원이 문제 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에게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또 미혼인 피상속인이 자신의 재산을 공익법인들에게 유증 하자,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등이 공익법인을 상대로 유류분의 반환을 청구한 사건에서,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되었다(2021헌바91). 위 두 사건을 포함하여 총 45개의 사건들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24년 4월 25일 재판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①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제1112조 제4호를 단순위헌으로 결정하고, ② 유류분상실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아니한 민법 제1112조 제1호부터 제3호 및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2를 준용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한 민법 제1118조는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2025. 12. 31. 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위헌 및 헌법불합치]. 그리고 유류분 제도에 대한 나머지 민법 제1113조, 제1114조, 제1115조, 제1116조는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였다.
먼저 민법 제1112조 제4호가 단순 위헌이 선고된 이유를 살펴보면, 헌법재판소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상속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위의 2021헌바91 사건에서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들은 공익법인들에게 유류분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되었다.
나아가 민법 제1112조 제1호~제3호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할 것이므로, 민법 제1112조에서 유류분상실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1112조 제1호~제3호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배우자 및 직계존속에게 유류분을 인정한 것은 합리적이나, 유류분상실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해당 부분의 보완을 요청하였다.
마지막으로 민법 제1118조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2를 준용하지 않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기여분이란 공동상속인 중 일부가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경우, 이러한 사정을 상속분을 정할 때 고려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민법 제1118조는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2를 유류분에 준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 피상속인을 오랜 기간 부양하거나 상속재산형성에 기여한 기여상속인이 그 보답으로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더라도, 유류분청구에 달리 취급되지 않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대법원 1994. 10. 14. 선고 94다8334 판결 참조).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며 2025. 12. 31. 까지 보완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우리나라 가족 제도가 지난 50년간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과거에는 가족끼리 더 긴밀한 교류를 하며 생활하였지만, 현재 가족제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그 결과 미혼인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이 형제자매에게 남겨진다는 민법 제1112조 제4호에 대하여 단순 위헌이 선고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그럼 돈이 피보다 더 진한 것일까?
참고자료 : https://www.ccourt.go.kr/site/kor/ex/bbs/View.do?cbIdx=1195&bcIdx=1007479
사진출처 : https://m.imdb.com/title/tt2278388/mediaviewer/rm2395839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