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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연 Jha Eon Haa Apr 17. 2024

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얼마나 존중되어야 할까

대법원 2024. 4. 4. 선고 2022두56661 판결


1. 법은 신이 존재하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신은 존재하는지, 종교는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답을 영원히 알 수 없다. 법은 신이 존재하는지, 종교는 사회에 유익한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교를 정하지 않으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아가 종교를 이유로 국민을 차별하지 않는다.


헌법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헌법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한편 종교의 자유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 자유를 보장하는 정도를 다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얼마나, 어떻게 존중되고 있을까? 가령 토요일을 안식일로 정하는 재림교 신자가, 토요일 오전으로 지정된 면접시험을 일몰 후인 마지막 순서로 바꿔달라고 대학원에 요청할 수 있을까?


최근 대법원에서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총장이 위와 같은 요청을 거부하고, 결국 면접에 불참한 재림교 신자에게 불합격을 통보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해당 판결을 살펴보면서 종교의 자유 및 평등 원칙에 대해 알아보자.


2. 종교의 자유, 평등원칙, 비례의 원칙

우선 종교적 자유는 크게 신앙을 형성하고 믿음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내심적 자유(forum internum)와, 이를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하는 자유(forum externum)로 나뉜다. 내심적 자유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 실현의 자유는 타인의 기본권이나 다른 헌법적 질서와 저촉되는 경우,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이다(헌법재판소 1998. 7. 16. 선고 96헌바35 전원재판부).


나아가 종교적 신념(양심) 실현의 자유는 형성된 종교적 신념(양심)을 외부로 표명하고 종교적 신념(양심)에 따라 삶을 형성할 자유, 구체적으로는 종교적 신념(양심)을 표명하거나 또는 종교적 신념(양심)을 표명하도록 강요받지 아니할 자유[종교적 신념(양심) 표명의 자유], 종교적 신념(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지 아니할 자유[부작위에 의한 종교적 신념(양심) 실현의 자유], 종교적 신념(양심)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작위에 의한 종교적 신념(양심) 실현의 자유]를 모두 포함한다(헌법재판소 2011. 8. 30. 선고 2008헌가22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특히 헌법 제11조 제1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종교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은 형식적 의미의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의미의 평등을 의미한다. 실질적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을 무조건 일률적으로 동일한 취급을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여야 평등원칙에 따른 결정이 된다.


한편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헌법은 최고법이므로, 국가처럼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헌법에 따라서 행위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작용은 비례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비례의 원칙이란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되는 헌법상의 기본원리이다(대법원 2019. 9. 9. 선고 2018두48298 판결). 구체적으로 국가는 공권력을 행사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효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고, 공권력을 최소한도로만 사용하고, 행정 작용으로써 국민이 입는 피해가 의도하는 공익보다 적어야 한다(행정기본법 제10조). 만약 국가의 처분이 평등원칙 및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공권력의 행사는 인정될 수 없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취소된다.


위와 같은 법리를 토대로 전북대학교 사안을 다시 살펴보자.


3. 대법원 2024. 4. 4. 선고 2022두56661 판결

재림교 신자가 안식일인 토요일 오전에 면접일자를 지정받자, 전북대학교 로스쿨에 일몰 후로 면접시간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총장은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였고, 결국 면접시험을 응시하지 못한 원고에게 불합격처분을 하였다. 그 후 원고는 불합격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의 처분이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며, 해당 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재림교 신자의 요청대로 토요일 일몰 후로 면접시간을 변경하지 않고, 면접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자에게 불합격처분을 한 것이, 종교로 인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국립대학교 총장인 피고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이자 기본권의 수범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피고는 헌법상 평등원칙의 직접적인 구속을 받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한다(헌법재판소 2006. 2. 23. 선고 2004헌바50 결정 참조). 따라서 피고가 하는 차별처우의 위법성은 사인이 차별처우를 하는 경우보다 폭넓게 인정된다.


또한 전북대학교 로스쿨 입시에서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공익을 다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의 정도가 재림교 신자들이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인정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의무를 부담하는 피고로서는 재림교 신자들의 신청에 따라 그들이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편 원고는 원고가 안식일로 삼는 토요일 오전에 면접시간을 배정받았고, 피고는 면접시간을 변경해 달라는 원고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로 인해 원고는 면접에 참석할 수 없어 로스쿨에 입학할 수 없게 되는 큰 불이익을 입었다. 한편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는 원고의 요청대로 원고의 면접시간을 토요일 마지막 순서로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지필고사와는 다르게 다른 모든 학생들의 시험시간까지 바꿀 필요가 없다. 또한 면접시험이 시작하면 모든 수험생들이 소지품을 제출하고 본인의 순번을 대기해야 하는 전북대 로스쿨 규정상, 원고의 면접시간을 바꾸더라도 원고가 면접시험을 더 많이 준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 따라 조치를 취하더라도, 피고나 제3자(기타 수험생들)가 받는 피해는 원고가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고는 원고를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기 위해 원고의 면접시간을 바꾸어주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럼에도 피고는 원고의 면접시간을 변경하는 데에 불편이 다소 증가한다는 이유만으로 원고의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원고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받게 된 중대한 불이익을 방치하였다. 이와 같은 피고의 행위는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 따라서 이 사건 불합격처분은 이처럼 위법하게 지정된 면접일정에 원고가 응시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한 처분이므로 적법한 처분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어 취소되어야 한다.


결국 법원은 면접 시간을 맨 마지막으로 옮겨주는 수고는,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총장이 재림교 신자에 대한 존중으로써, 평등 원칙을 따르는 기본권 수범자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4. 베일을 쓴 소녀

베일을 쓴 소녀는 2013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이다(한국은 2014년에 개봉했다). 대학생 때 이 영화의 포스터가 너무 아름다워서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상영관을 못 찾았는지 개봉시기를 놓쳤는지 결국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는 이후에도 가끔씩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간이 한 참 흘러 로스쿨을 졸업하고 베일을 쓴 소녀를 마침내 보게 되었다.


베일을 쓴 소녀. 2014. 프랑스


18세기 프랑스, 수잔은 가족들의 강요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수잔은 수녀가 되기를 원치 않았고, 신 앞에 헌신할 것을 서약해야 하는 순간 정신을 잃는다. 이렇듯 종교적 신념은 억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개인이 종교적 신념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어떤 유불리나 선호의 차원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며, 합리적인 설명을 넘은 믿음의 영역이다.


수녀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수잔


따라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하여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최대한 종교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한다. 즉 재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판단으로, 재림교 신자들이 로스쿨 면접일 하루 정도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우선 시험을 보아야 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특히 헌법에 따라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해야 하는 국가는, 더욱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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