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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Oct 02. 2021

그래서 내 밥은?

“우와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이런 데에서는 식사를 어떻게 해요?”




팀 사이트(Teamsite) 모습을 보여주면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UN을 상징하는 하얀 건물 몇 채를 갖다 놓은 모습이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한 척의 배 같다고나 할까?


당연히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는 거의 없다. 인근에 현지인 마을이라도 있으면 갓 구운 빵이나 간단한 식재료라도 구할 수 있을 텐데, 내가 근무한 팀 사이트 주변에는 그럴만한 곳이 없었다.


팀 사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통해 식재료를 공급받았다. 각 팀 사이트에는 급식 장교(Food Officer)가 있는데, 이 급식 장교가 한 달에 한 번 다음 달 식재료를 신청하면, 임무단 본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식재료를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카탈로그에는 분명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가 많았는데, 신청한 식재료가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채소 같은 몇몇 신선 식품을 제외하면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이나 냉동식품이 대부분이었다.


신선한 생선이나 다양한 빵을 신청해도, 팀 사이트에 들어오는 건 항상 냉동 가자미와 돌처럼 단단한 바게트뿐이었다. 이 바게트는 신기하게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상하지 않았다. 기온은 높아도 상대적으로 습도가 낮아서 그렇겠거니 했지만, 가끔은 이 바게트에 과연 무엇이 들었을까 의아했다.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하면 본능에 충실하기 마련이다. 나름 자신의 사회에서 “엘리트” 소리를 듣다 왔을 텐데 음식 앞에선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특히 해산물처럼 귀한 음식이 메인 요리로 나왔는데 먹지 못하면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육지에 갇힌 내륙(Landlocked) 지역이다 보니, 별것 아닌 냉동 새우도 이곳에선 귀한 대접을 받는다.)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지만, 지난번에 식사가 차려지자마자 메인 요리를 잔뜩 덜어서 자기 방으로 가져가 버린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메인 요리 구경도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식자재라도 충분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는 분명 식자재가 창고에 가득했는데, 2주 만에 돌아와 보니 팀 사이트에 식자재가 부족하다고 했다. 폴리사리오 출신 요리사가 나에게 달려와 스페인어로 푸념했다. (요리사는 모로코나 폴리사리오 측이 자원봉사(Voluntary Contribution) 형태로 팀 사이트마다 제공해 줬다.)


“파스타도 부족하고, 쌀도 없고, 양념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무엇으로 요리를 해요?”


다행히, 솜씨 좋은 우리 요리사는 남은 식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 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치즈가루 파스타”였다. 원래 있던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은 파스타에 단순히 올리브오일과 파마산 치즈가루만 뿌려 내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모든 팀 사이트의 요리사가 우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요리사라 해도 공식적으로 요리 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개인마다 실력 차이는 컸다.


한 번은 비행기 환승을 위해 인근 팀 사이트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음식이 정말 볼 품 없고 맛도 별로였다. 간단한 쌀밥에 콩(Baked Bean) 요리 같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전투식량을 그대로 데워서 내었다고 했다.


각 팀 사이트마다 전투 식량 재고가 늘어나자 임무단 본부에서 팀 사이트에 식자재 공급을 줄이고, 전투 식량을 먼저 소비하게 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다.



“사막 한가운데서 뭘 더 바래? 삼시 세끼 먹는 것에 고마워해야지!”


사실, 사람들이 음식에 불만을 갖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식재료와 식사는 우리 옵서버(Observer) 돈으로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옵서버들은 UN 임무단 근무 수당(Mission Subsistence Allowance, MSA)을 받는데, UN에서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을 경우, 수당에서 일정 비율을 공제(약 50%로 기억) 하고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전체 수당의 절반가량이면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니, “내돈내산” 식사에 불만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누군가가 임무단 본부 군수 참모를 찾아가 따졌다.


“식재료 양이나 품질이 왜 이 모양입니까? UN이든 식자재 납품 업체든 임무단 본부 차원에서 공식 항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들어오는 식자재는 계약 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업체는 종류나 품질에 관계없이 계약된 칼로리만 맞춰서 납품하면 되거든요.


UN은 옵서버 한 명 당 하루 60유로 수준의 음식을 제공받기로 하고, 이탈리아 업체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탈리아 업체가 다른 업체에 하도급(Subcontract)을 줬어요. 그리고 이 업체는 다시 모로코 업체에 하도급을 줬지요.


결국 옵서버 한 명이 받는 음식 수준은 하루 60유로에서 20달러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그런데 모로코 업체는 계약에 따라 칼로리를 맞춰 공급했으니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이 상황에서 저는 누구한테 항의를 해야 할까요?”


군수 참모의 답변이었다.




오래된 조직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관료주의. UN이나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직접 피해를 보는 옵서버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게 제일 좋았겠지만, 대부분 1년 만에 귀국하는 옵서버들이 나서기도 어려웠다.


현장의 옵서버들이 열악한 식재료로 배를 채우는 동안, 제도적 맹점을 이용한 누군가는 자신의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내 밥은? 내 밥은 어디 있냐고?

"In the Middle of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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