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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Oct 31. 2017

방울방울 추억을 소환하는 식물

초록 엄지 외할머니 화단의 추억, 소철




요즘은 그린 인테리어니 어반 정글이니 해서 식물 키우는 것이 꽤나 세련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멋진 트렌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 식물은 무언가 좀.. 할머니... 스러운... 트렌드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모랄까... 좀 어르신의 취미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나쁜 느낌은 결코 아닌 다정하고 편안한 느낌이지만 확실히 지금 가지고 있는 관심과 경이로움은 전혀 없었지요.


저의 식물 키우는 솜씨는 식물 킬러급이지만 저희 외할머니는 식물계의 마더 테레사, 식물계의 마사 스튜어트 셨습니다. 키우는 식물마다 쑥쑥 자라 할머니의 작은 화단은 울창한 정글 같았습니다. 그 솜씨를 물려받아 저희 어머니도 식물들을 꽤 잘 키우십니다. 저희 집에서 비리비리하며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인 아이들을 엄마가 데려가시면 그 어떤 신비한 초능력을 발휘하시는지, 나중에 엄마 집에 가보면 몰라보게 생생한 모습으로 저를 놀라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걔네들은 절 보고 행여나 다시 데려갈까 봐 식겁했겠지요. 아니야.. 얘들아... 나쁜 사람아니야.. 니네 여기서 계속 살아....라고 말해줍니다. 식물 잘 키우는 초록 엄지의 유전자는 이렇게 저의 대에서 소멸되고 마나 봅니다. 아숩...


식물뿐 아니라 제가 외할머니께 못 받은 중요 능력은 여러 가지가 됩니다. 외할머니는 뜨개질을 엄청 잘 하셔서 어린 시절 겨울이면 항상 할머니가 직접 떠주신 스웨터를 입고 다녔지요. 외할머니네 집은 늘 알록달록한 털실들이 가득했었어요. 제가 머리가 좀 자라 할머니가 떠주신 홈메이트 스웨터는 슬슬 안 입고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함께 그 당시 유행하는 스웨터를 사 입곤 하던 어느 날 그 스웨터를 가져다 실을 다 풀으셔서 할머니 st. 의 장갑이나 조끼들을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저는 스웨터는커녕 목도리도 뜨지 못하는.... 그런 자입니다. 요리도 엄청 잘 하셨었는데 그것 또한 저에게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능력입니다.




©JeonghyunLee




어찌 됐든 저에게 식물은 꽤 오랫동안 할머니의 취미, 할머니의 세상이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엄청 심심했었드랬죠. 그때는 당연히 스마트폰 같은 것도 없었고 하나 있는 텔레비전은 외할아버지 차지였기 때문에 제가 할 일이 암 것도 없었지요. 그때 본 할머니의 식물들은 그때 제가 느꼈던 진한 지루함과 합쳐져 있습니다. 지금처럼 식물에 관심이 있었다면 꽤나 재밌는 시간을 보냈었을 수도 있는데 꼬맹이에게는 무리지요. 그 기억 속의 한 장면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이 소철입니다. 외할머니의 소철은 파란 물감으로 무언가 전통스러운 문양이 그려진 엄청 무거워 보이는 크고 둥그런 하얀 화분에 심겨 있었습니다. 흙 위로는 뚱뚱한 몸통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위에서 솟아난 잎사귀는 꽤 뾰족해서 그 옆에서 놀다가 자주 찔리곤 했지요. 제 기억 속에 할머니는 종종 물뿌리개를 칙칙 뿌리고 정성스럽게 뾰죽한 잎사귀들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꽃집에서 이 소철을 봤을 때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지루한 느낌이 왠지 따뜻하게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외할머니는 벌써 돌아가신 지 꽤 되어서 할머니 정글의 화분들도 이제는 그리운 기억이 되어 버렸네요.




©JeonghyunLee




소철은 중국 동남부 또는 일본 남부 출신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식물들은 대부분 중남미나 아프리카 출신 들이었는데 이 아이는 동양인이네요. 철분을 좋아해서 비실거릴때 철분을 주면 살아나기 때문에 소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철분을 주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철분제를 주는 건 아닐 테고... 비료나 영양제의 세계는 전혀 몰라서 궁금하네용.. 잘만 키우면 50년이고 100년이고 엄청 오래 산대요. 얼마 전에도 중국에서 1360년 된 소철이 꽃을 피워 화제가 되었다고 해요. 1360년 맞아요. 오타 아닙니다. 꽃은 100년에 한 번 필까 말까 한대요. 혹시나 소철에 꽃핀 걸 보게 되면 무조건 인증샷 찍어놔야겠어요. 오래 사는 식물이라 신비한 힘을 가진 건지 약용으로도 많이 쓰고 잎에서 사고(sago)라고 하는 흰 전분 같은 것을 얻어 푸딩도 만들고 동물 사료도 만들지만, 잎을 그냥 먹게 되면 매우 위험하대요. 그래서 어린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에서는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사고야자(sago palm)라고도 부르고 모양도 야자와 비슷하지만, 야자 가족은 아니라고 합니다. 소철은 소철입니다!


간접광을 많이 받는 곳에 놓고 키우시면 된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네요. 햇빛이 넘 강하게 들어오는 창문에서는 좀 떨어뜨려놓는 게 좋구요, 난방기구나 냉방기구 가까이 놓으면 안 된대요. 겨울에는 영하의 온도에 놔두시면 안 되고 실내에 너무 덥지 않은 시원한 곳에 놓으시면 된답니다. 잎이 잘 부러지니까 지나가면서 툭 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답니다. 2주에 한 번씩 화분을 1/4바퀴씩 돌려주면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장기인 봄에는 새 잎들이 쏙쏙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는 건드리지 말고 그냥 내비두어야 한답니다.



©JeonghyunLee




물주는 건 일주일에 한 번씩 흙 속에 손가락을 한마디 정도 넣어봐서 말라있으면 물을 흠뻑 주시고 아직 촉촉하면 2-3일 뒤에 다시 확인해보시랍니다. 특히 처음 데려오셔서 자리 잡을 때에는 물을 충분히 주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그렇지만, 겨울에는 제가 부러워하는 겨울잠을 자니까 물 주는 횟수는 확 줄이는 게 좋답니다. 잘 땐 건드리지 말아야지요. 물 주고 난 후에는 화분 밑에 물받침 접시를 비워서 흙이 물에 잠겨 있지 않게 해야 한답니다. 이건 지금껏 본 식물들과 비슷하지요.


한 달에 한번 정도 잎 상태를 살펴서 노래진 잎들은 몸통에 가깝게 싹 잘라내주시고 부드러운 천으로 잎사귀들을 살살 닦아주시는 게 좋대요. 오오~ 제 어렸을 때의 기억이 맞았네요. 외할머니는 이렇게 살살 닦아주는 게 좋다는 걸 어찌 아셨을까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고 책을 읽으셨을 것 같지도 않은데, 외할머니의 엄마한테 배운 걸까요, 본능적으로 아셨던 걸까요. 신기방기 합니다. 식물 잘 키우는 초록 엄지분들은 오랜 경험에서부터 오는 지식과 함께 본능적으로 식물이 뭘 원하는지 아는 초록 유전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에게는 물려주지 않으셨어요...



©JeonghyunLee




야자를 닮은 모양 때문에 이국적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으시던데 저에게는 추억의 식물인 소철 덕분에 간만에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날씨가 슬슬 추워지니 격동의 사춘기 때는 기피하던 외할머니 스웨터가 그립네요^^




오늘 공부의 출처는 두산백과, wikipedia, plantcaretoday입니다.


제가 찍는 식물 사진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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