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현 Feb 26. 2019

어떤 식물을 고르시나요?

식물 사진 찍기 1.





날씨가 살살 따뜻해지면서 봄이 오면 집에 식물을 들이리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계기로 식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는지 혹시 생각이 나시나요? 사진 찍는 일을 하는 저는 식물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식물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조금씩 식물 사진 찍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식물을 고르는지부터 이야기할까 해요. 


식물 왕초보인 저는 어느 날 불쑥 식물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들게 할 만한 일들이 그즈음 제 주변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던 듯합니다. 요즘 들어 식물이 좋아졌다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고 식물을 담은 멋진 사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들에도 알게 모르게 식물이 많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식물을 찍겠다는 생각이 한번 들자 식물이 좋은 피사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JeonghyunLee




다행히 저에게는 친하게 지내는 동생 중 유능한 플로리스트가 있었고 그 플로리스트의 꽃집에는 늘 근사한 식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다짜고짜 꽃집의 식물들을 빌려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고 쿨하디 쿨한 동생은 흔쾌히 언제든지 꽃집에 와서 맘에 드는 식물을 데려가도 좋다고 해주었습니다. 사진을 찍겠다고 수많은 식물들을 살 수도 없고 산다고 해도 식물 키우는 데에 전혀 소질이 없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식물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그 식물의 이름과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그렇게 알게 된 정보와 사진들을 공유하면서 40 plants라는 이름의 식물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식물 사진을 찍는 일은 당연히 꽃집에 가서 식물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어떤 식물을 좋아하는지 만큼이나 플로리스트가 어떤 식물을 가져다 놓았는지도 중요하지요. 취향이 잘 맞는 플로리스트의 꽃집에 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나게 행복한 일입니다. 제가 가는 꽃집의 플로리스트와 저는 둘 다 신기한 식물을 좋아합니다. 잎사귀가 희한한 형태이든 줄기가 오묘한 모양이든 그전에는 쉽게 보지 못한 독특한 식물이 좋습니다. 그리고 방금 농장에서 가져온 싱싱한 모습도 좋지만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기 나름대로 적응해 자라난 모습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




©JeonghyunLee




다행히 저는 식물 초보여서 아직도 대부분의 식물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남의 식물을 빌려와 사진을 찍는 것이기 때문에 식물을 선택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아무리 제 마음을 쏙 뺏는 신기한 모양의 식물이어도 너무 여리여리 해 보이면 선뜻 데려오게 되지 않습니다. 신기한 식물들은 아무래도 예민하고 까다로운 편인 경우가 많고 친숙한 식물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웬만하면 잘 자라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어떤 식물을 찍을지 고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꽃집에서 식물을 고를 때는 식물이 가진 시각적인 매력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이쁘게 생긴 식물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식물과 나 사이에 어떤 케미가 생기는지가 더 중요하지요. 이 ‘케미’라는 단어는 좀 수상한 면이 있지만, 딱 보는 순간 어떤 느낌이 오느냐와 함께 카메라 프레임 속에 식물이 어떻게 보일 지에 대한 예감 정도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떻게 찍고 싶은 지가 금방 떠오르고 상상 속 식물의 모습이 맘에 들면 그 식물과 저의 케미가 좋다고 저는 다소 일방적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물론 언제나 제 상상처럼 사진이 찍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케미라는 것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내 맘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JeonghyunLee





식물과의 만남도 사람을 만날 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외모가 첫눈에 들어오더라도 짧은 만남 뒤 그 사람을 결국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의 눈빛이나 말투, 목소리, 작은 제스처 등 보다 복잡한 요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때가 많죠. 식물이 가진 시각적인 매력도 매우 복합적입니다. 식물도 살아있는 생명이니까요. 첫눈에 예뻐 보이는 잎의 색이나 줄기 모양이 다가 아닙니다. 나와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될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미리 알 수는 없지요. 그래서 식물 고르는 일은 일단은 케미에 맡겨 봅니다. 이만큼이나 심오한 마음가짐으로 북적대는 꽃집에서 식물을 고릅니다. 



©JeonghyunLee




사진 속 식물은 포니테일 그라스 Nassella(Stipa) tenuissima입니다. 포니테일 그라스는 보는 순간 케미가 폭발한 경우입니다. 길게 고민할 필요 없었지요.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실컷 자다 일어난 머리처럼 부스스한 줄기도 그렇고 이름대로 말꼬리처럼 길게 늘어지는 가는 줄기의 끝이 고불고불 말려있는 것도 딱 맘에 들었습니다. 바깥쪽 줄기는 가을 갈대 같은 마른 아이보리색이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가운데에서는 계속해서 청록색의 줄기가 자라난다는 플로리스트의 설명도 초보의 심금을 울렸지요. 농장에서는 커다란 뭉터기로 자라나는데 이렇게 조금만 추려내어 토분에 담아도 사진을 찍는 내내 야생의 향기를 풍겼습니다. 



©JeonghyunLee




사진을 찍는 것은 카메라를 통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피사체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식물은 언제나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 매력을 숨기고 있습니다. 식물 사진을 찍는 것은 그 매력을 발견해 내는 좋은 방법이지요. 찍으면 찍을수록 좋아질 뿐이지 알고 보니 별로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과연 그런 피사체가 또 있는지 아니면 식물만이 가지고 있는 마성인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JeonghyunLee




[포니테일 그라스 키우기]


빛 : 햇빛을 충분히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 : 건조하게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2주에 한번 정도 흠뻑 주시고 나서 물이 잘 빠지도록 주의해 주세요. 특히 겨울에는 흙이 젖어 있으면 안 돼요.


온도 : 온도에 까다롭지 않습니다. 월동도 가능해요.




©JeonghyunLee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들의 겨울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