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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Apr 05. 2019

식물을 관찰하는 방법 : 빛

식물 사진 찍기 5. 회오리 선인장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떤 빛이 들어오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빛은 피사체가 가진 질감을 드러내 주고 피사체의 색이 어떻게 표현되는 지를 결정하죠. 식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식물 사진을 찍을 때 빛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똑같은 식물도 어떤 빛을 받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게 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식물 사진을 찍는 장소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얼마나 멋있는지 보다 어떤 빛이 들어오는 곳인가입니다. 어떤 스타일의 사진을 찍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지만, 꼭 값비싼 조명장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햇빛만 있으면 충분하죠. 


저는 거실 창 앞의 작은 테이블 위에 식물을 올려두고 사진을 찍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창에는 아이보리색 블라인드가 달려 있어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는 강한 빛이 들어와 식물에 선명한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날 기분과 찍고 싶은 식물의 분위기에 따라 그 강한 그림자가 좋은지 아닌지는 바뀌지만, 대부분의 경우 저는 너무 진한 그림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블라인드를 쳐서 쉽게 부드러운 빛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블라인드 대신 하얀 커튼도 좋고 그런 게 다 없다면 큼지막한 흰 종이를 창문에 붙여도 좋습니다. 그림자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의 성격이 변하면서 식물의 질감은 물론 식물이 가진 색도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게 그날의 빛에 따라 섬세하게 달라지는 식물의 분위기를 읽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JeonghyunLee




식물에 생기는 짙은 그림자가 영 맘에 안 든다거나 식물에 들어오는 빛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면 창문 맞은편에 넉넉한 크기의 흰 종이나 흰 보드를 세워 봅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반사해서 그림자가 생기는 쪽을 환하게 비춰주게 되지요. 흰 종이와 식물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면 그림자 부분이 얼마나 환해지는 지도 달라집니다. 꽤나 섬세한 작업이지만 눈으로도 차이가 분명히 보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이 식물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이 식물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지요. 평상시 보이지 않았던 식물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기도 합니다. 




©JeonghyunLee




사진 속 선인장은 회오리 선인장 또는 퍼베시 선인장이라고 불립니다. 나선형 귀면각이라고도 불리는데 귀면각과 비슷하긴 하지만 같은 속 다른 선인장이에요. 두 선인장을 구분하는 것은 초보로써는 역시나 힘들지만 자세히 보면 가시와 가시자리의 색, 그리고 줄기의 모양과 색도 달라요. 줄기가 구불텅구불텅한 것이 퍼베시 선인장의 특징입니다. 가시도 더 길고 노란빛을 띄어요. Cereus forbesii 대신 C. validus라는 학명도 쓰지만 퍼베시 선인장이 더 잘 알려진 이름이지요. 어찌 됐든 회오리가 휘몰아치는 듯한 모양으로 돌돌 말린 신비한 모습은 회오리 선인장이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리죠. 선인장 중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라 2년에 한 번 정도 분갈이를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2m에서 4m까지 자란다고 하니 대형 선인장의 꿈을 키워볼 수 있지 않을까요.


회오리 선인장을 찍던 날은 제가 사진 찍기 가장 좋아하는 날씨의 날이었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많이 있는 밝은 날이었지요. 구름 없이 해가 짱 한 날도 아니고 구름이 잔뜩 껴 곧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어정쩡한 날씨입니다. 그런 날 생기는 그림자는 부드럽고, 빛은 은근하면서도 넉넉하지요. 저는 그날의 빛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돌돌 말려있는 이 선인장의 줄기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줄기 끝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가시들도, 줄기가 몸을 돌리면서 생긴 깊은 골짜기도, 그리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미묘한 색의 변화를 만드는 울퉁불퉁한 줄기 표면도 이 빛 아래에서 잘 드러났지요. 




©JeonghyunLee




햇빛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풍성하게 보여줄 수 있는 빛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원할 때 내 맘대로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매일매일이 제가 좋아하는 날씨일 수도 없고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변화무쌍하게 성격이 바뀌지요. 아침에 조금만 늑장을 부리면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훅 줄어들고 아무리 흥이 올랐어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해는 뉘엿뉘엿 져서 더 이상 사진 찍기 힘든 시간이 오고 맙니다. 그럴 때는 조명 장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면 그런대로 순순히 카메라를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우리도 식물도 거기에 맞춰 살아가니까요. 다만 아침 햇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나는 노력은 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회오리 선인장 키우기]



빛 : 어릴 때는 살짝 그늘이 있는 곳이 좋고 다 자라고 나면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곳이 좋다고 해요.


물 : 봄에서 가을까지는 흙이 완전히 마르면 물을 주시고 물이 잘 빠지도록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장마철에는 물을 줄이고 과습에 주의해 주세요. 겨울에는 단수하고 건조하게 키우셔야 합니다.


온도 : 0도 정도까지는 겨울에도 괜찮다고 하는데, 그 이하로 너무 추워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JeonghyunLee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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