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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Apr 10. 2019

내 식물이 잘 살고 있나 의심스러울 때

사진을 찍어주세요. 떡갈잎 고무나무





멀리 사는 친구가 가끔 아기들 사진을 보내줍니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것 같은데 사진 속 애기들은 쑥쑥 자라 있습니다. 애기가 많이 컸다고 하면 엄마들은 안심하며 좋아하지만, 한켠으로는 조금 쓸쓸한 마음으로 시간이 성실하게 흐르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식물은 아무리 열심히 바라봐도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집에 있는 매일 보는 식물은 더욱 그렇지요. 제가 키우는 식물의 안녕이 항상 걱정되는 식물 킬러로써는 여간 답답하고 불안한 게 아닙니다. 물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많아도, 지금 공기가 답답해도, 살고 있는 화분이 좁아져도, 너무 덥거나 혹은 추워도 식물은 금방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 불편한 상태가 상당히 지속되어도 인내심 강한 식물들은 초보들이 알아챌 수 있을 만한 신호를 잘 보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이 무거운 식물을 보며 지레짐작으로 조치를 취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다 보니 식물의 키가 조금 자랐다거나 새 잎이 나오는 것과 같이 식물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일어나면 굉장히 고맙습니다.




©JeonghyunLee




떡갈잎 고무나무(Ficus lyrata)는 그런 기쁨을 저 같은 식물 킬러도 느낄 수 있게끔 해준 고마운 식물입니다. 탄탄하고 큼지막한 잎 모양이 떡갈나무의 잎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엄연히 다른 나무예요. 바이올린을 닮기도 해서 영어 별명은 바이올린 잎 무화과나무(fiddle leaf fig)입니다. 무화과나무 속이거든요. 떡갈잎 고무나무는 물이 부족하면 다른 식물들처럼 잎이 시들기보다는 잎과 줄기를 연결하는 잎 대가 처지면서 잎이 뒤로 벌렁 뒤집어져요. 이때 물을 흠뻑 주면 잎 대가 금방 꼿꼿이 일어서며 짱짱해져서 모든 게 불안한 초보를 안심시켜 줍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을 뿐 겨울 동안에는 거의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봄이 되자 까만 줄기를 열고 꼭대기에서부터 새 잎을 쑥쑥 올렸습니다. 아직 바이올린 모양을 갖추지 못한 어린잎이 우물쭈물 모양을 만드는 모습이 무척 귀여운데, 빛을 잘 받으면 순식간에 어른 잎으로 자라납니다. 그만큼 키도 자라고요.



©JeonghyunLee




웬만한 식물은 생명 존중의 차원에서 들이지 못하는 제가 잘 키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식물 중 하나입니다. 상당히 의심스러워하시면서도 그래도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마음으로 엄마가 사주셨지요. 저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플로리스트 동생도 ‘이거 쉽지 않은데…’ 하면서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떡갈잎 고무나무는 저희 집의 척박한 환경에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JeonghyunLee





떡갈잎이 자고 나면 자라 있다고 자랑을 하자 엄마는 매일 키를 재서 표시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눈으로 확인하면서 기쁨을 누리라는 의미였죠. 엄마의 얘기를 들으니 어렸을 적 안방 문 뒤에 뒤통수를 붙이고 키를 재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제 키가 자라고 있는 것을 저는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엄마가 벽에 표시해둔 눈금들을 보면 저는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자라고 있었죠.

키를 재는 것과 같이 가끔씩 식물의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말이 없는 식물이 보여주는 작은 변화를 관찰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특별히 잘 찍을 필요도 없습니다. 핸드폰으로 찍어도 충분합니다. 처음 식물을 데려왔을 때 찍어두고 그 후로도 생각날 때마다 찍어두면 더욱 좋지요.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사진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사진 속 식물과 지금의 식물을 비교해 보면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식물을 키우는 기쁨과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저처럼 식물 키우는 일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키워가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 때로는 변하지 않은 채로 건강하게 있다는 것조차도 말없는 식물에게 저 또한 아주 나쁜 친구는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쑥쑥 자라는 아기들의 사진이나 어릴 적 문 뒤에 표시해 놓은 제 키의 눈금들처럼 우리 집 식물 사진은 식물과 함께 성실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성실하게 늘어가는 흰머리를 보면 시간의 흐름이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거의 모든 것이 아름다우니 일단은 열심히 사진을 남겨봅니다.




©JeonghyunLee






[떡갈잎 고무나무 키우기]



빛 : 빛을 많이 받으면 더 잘 자랍니다. 창가나 베란다에 놓아주시면 좋습니다. 빛이 부족하면 금방 시들어요.


물 : 물을 많이 주는 것에 취약합니다. 잎이 검게 변하면서 떨어져요. 겉흙이 마르거나 잎이 뒤로 처지면 흠뻑 주시고 물이 잘 빠지게 해 주세요. 따뜻한 계절에는 전체적으로 물을 뿌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겨울에는 물 주는 간격을 늘려 속흙까지 말랐을 때 물을 주세요.


온도 : 따뜻한 온도를 좋아합니다. 겨울에도 13도 이상되는 곳에 놓아주세요. 실내가 좋아요.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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