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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높빛 Dec 15. 2021

납골당에서

양면적인 공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을은 생(生)의 계절인가, 사(死)의 계절인가. 열매가 영글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곧이어 들판이 갈빛을 하고 이내 식물들이 죽음을 맞이 하고 있으니 동전의 양면같은 모습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추석이 껴있는 주간이면 산골짜기에 있는 납골당으로 간다.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산골짜기 한가운데 마치 깔창같은 계단을 껴대며 "나도 고귀하오"라고 건물이 부르짖으며 세운듯한 느낌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납골당은 납골당이라 부르지 않는다. 무슨 납골당이 홍길동도 아니고 납골당으로 안 부르냐는 질문이 들어온다면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 납골당을 검색하면 '동산', '수목원' , '공원'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납골당을 확인할 것이다. 이처럼 인근의 자연을 벗삼은 이름으로 납골당이라는 공간을 소개한다. 

    사람사는 동네일수록, 더 크고 인지도 높은 동네나 시설의 이름을 빌려 쓰곤 한다. 서울대입구역은 서울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일산 바깥 고양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일산으로, 분당과 판교 바깥 성남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분당과 판교로 '퉁'치며 소개한다. 납골당은 반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의 이름을 빌리니, 확실히 산 자와 죽은 자는 반대로 행동한다는 미신이 맞는 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사색을 멈추고 나는 집 앞에서 사들고간 5,000원 짜리 꽃을 들고 납골당 안으로 들어간다. 엄숙한 공간이지만 결국 이곳도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다. 코로나-19로 사람을 적게 받는다고 했지만, 납골당 안에는 조곤조곤 사람들의 이야기가 백색소음을 만들어 냈다.

  안으로 들어서며 QR 코드로 나의 방문기록을 찍은 내 눈에 제일 먼저 보인 장면은 검은 상복을 입은 유족들이 '새 입주자'를 안치하는 장면이었다. 유족들의 모습에는 슬픔의 표정을 넘어 무념과 체념 그 자체의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자리에다가 모셔두는거에요."
납골당 관계자의 말이 내 귀로 흘러온다. 괜찮은 자리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안으로 들어온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은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보신 적이 없으시다. 강원도 한 어촌에서 구멍가게를 하시며, 1층 집에서만 계셨던 두 분. 안치된 자리는 납골당에서 나름 좋은 위치. 아마 2~2.5m 사이에 위치해 계셔서 속된 표현으로 '덜 로열'한 위치에 두 분이 계시지만, 80 평생 단독주택에서 사셨던 당신께 로열층이든 꼭대기나 바닥 층이든 당신들 입장에서는 '로열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념하자."

   아버지의 말씀에 나도 고개를 숙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했다. 아니 사실 내 인생의 비디오테이프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은 오프닝 몇 분이 고작일 것이다. 할머니는 3살 때, 할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셨다. 가물가물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할아버지의 매장식 때다. 추운 겨울, 바리케이트가 쳐진 선산 어느 곳에 주황색 포크레인이 깊게 땅을 파내려가고, 할아버지의 관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 그 구덩이가 깊게만 느껴졌고, 그외의 기억은 나지 않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내 방 한 켠 액자 속 나의 돌잔치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만이 내 머릿속 기억의 전부다.
   으레 묵상을 하면서 이곳저곳에 눈을 흘기는 꼬마동자마냥 내 눈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옆집'을 쳐다보게 된다. 내 또래의 입주자와 한 세기를 살아오신 근현대사의 산증인, 부모님과 같은 세대의 분 등 다양한 입주자가 할아버지, 할머니 옆집에 '쉬고' 계셨다.
   각자의 아련한 사연이 집집마다 구구절절 있다. 납골함 앞에는 그들의 사랑했던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의 글귀들이 빼곡하다. 살아생전 못했던 말들의 그 순수함이 이상하게만큼 내 눈을 팍팍 찌른다. 마치 양파를 눈에 비비는 듯한 아린 느낌의 글귀들이었다. 이런 사연들을 보면 신을 믿고 싶지 않아진다. 물론 나는 종교가 없다.
   아버지와 내가 묵념 하고 있는 사이, 다른 '손님'들이 지나간다. 참으로 망자(亡者) 공간이면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간다. 한편으로는 또 느낀다. 여기서 쉬고 있는 분과 어떤 관계였고, 평소에 어떤 감정을 가졌으며, 이 분이 세상을 떠날 때 평소 느꼈던 감정의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다. 사실 나는 소중한 사람을 평생 떠나 보낸 적이 없고, 떠나 보낸다는 상상을 했지만 차마 가늠이 되지 않아 그런 상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꿔보았다.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생각하는 행위'를 멈추고, 평생 깨어나지 않는다는 상태를 상상해보면서 내 몸이 썩어들어가거나 불태워지는 상상을 했다. 죽어서 주변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랑 10년, 100년, 그 이상이 흐른 뒤에 역사 속에 묻혀간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치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마치 천문학자가 세상의 시작을 알아내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통계학에서는 외삽법(Extrapol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현재의 추세를 통해 머나 먼 과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기법이다. 결국 나의 죽음도, 내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며 더듬어 가야한다. 물론 관혼상제 중 관(어쩌면 취업도 못한 대학생인 나로서는 배움이 끝나 한 사람의 몫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도 못한 것일 수 있다)밖에 못한 나로서는 현재의 삶으로 혼도 상상 못하는데, 상이야 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이런 '이벤트'를 상상할 때는 현재의 삶을 항상 대입하곤 한다. 내 주변 어떤 인간관계의 사람들이 내 식장에 와서 육개장을 먹을 것이며, 내 관짝은 누가들 것인지, 장례식의 규모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국 현재의 인간관계와 나의 능력으로 풀어본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망자의 공간인데, 사람들의 '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본다. 망자의 공간이면서도 '삶'의 요소가 묻어나는 아이러니에 나는 머릿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납골당에서 겉으로 웃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버지와 함께 납골당 밖을 나왔다. 아픈 두 무릎을 쥐며 계단을 오르시는 한 할머님,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무는 아저씨,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 이해를 못하는 중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망자의 공간에서 인생을 생각하는 나. 프리즘에 산란된 빛처럼 다양한 인간군상을 뒤로하고, 하나 둘 낙엽이 지는 산등성이를 차를 타며 내려간다. 
   가을은 참으로 양면적인 계절, 오늘 다녀온 납골당 또한 그럴 것이다. 이런 경계성이 곧 사색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하더니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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