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겠습니까

큰집 금줄 너머로 울려 퍼진 고고지성은 온전한 제 울음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가 저인 줄 몰랐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식솔 많던 촌락, 곤궁한 보릿고개 시절, 그렇게 건넛방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가, 고생했다.. 고추다!”

할머니가 방을 나가신 뒤, 고개 돌려 저를 보는 어머님의 그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머님의 속내를 알게 된 건, 제가 스무 살이 되어 가게에 온 아주머니들과 나누는 대화를 어깨너머로 듣고 나서였습니다.

“더 이상 출산의 고통을 넘겨주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그래서 아들만을 갖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님이 물건 하려 부산으로 가시면 제 소임은 둘째 동생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남들 눈이 부끄러워 방 안에서 띠를 둘러매고 보채는 동생을 달래고 또 달래었습니다. 겨우 재워놓고 방을 나서면 제 가슴속 한편에 이해하지 못할 불만이 자리하였습니다.

‘왜 우리 집에는 여동생이 없을까?’

이제는 많은 며느리들이 부르는 시누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어머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까, 생각을 해 봅니다. 대학병원의 복도에서 옷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와 손잡고 있는 여자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여자가 딸인지 며느리인지 제가 유심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병원 현관을 나서며 제가 어머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 우리 형제들 중 누가 딸이었더라면 좋겠어요?”

“아니네, 그래도 아들이 좋은 걸.”

“진짜?”

“그럼..”

바람에 어머니 머릿결이 날리고 숨겨놓은 파뿌리도 드러나 보였답니다. 먼 산을 보며 제가 어머님 손 꼭 잡던 것을 기억하시겠습니까.